그 시구절과 그림을 연결하려는 듯 습인의 두 눈이 반짝였다.

"높은 대들보에 목을 맨 여자가 그려진 그림에 그런 시구절이 붙어
있다면, 정을 주고 받지 않아야 할 남녀가 정을 통하여 끝내 음탕해지고
그 일이 사단이 되어 여자는 목을 매는 것이 아닐까요"

과연 습인의 해석이 그럴듯 하였다.

"정을 주고 받지 않아야 할 남녀라면?"

보옥도 상상력을 발휘해 보았다.

"목을 맬 정도면 아주 심각한 불륜이겠죠"

"불륜? 이 세상에서 가장 심한 불륜은 무엇일까?"

"저어, 흉노족들의 증간과 보간이겠죠"

습인이 조심스럽게 보옥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하였다.

"증간과 보간? 나는 처음 듣는 소리인데"

보옥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설명을 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귀하신 분들은 차마 입에 올리기 힘든 말이라 우리 같은 시녀들의 입에서
나 오르내리는 말이지요"

"글쎄, 그게 뭐냐니까?"

보옥이 대답을 재촉하며 습인의 옆구리께를 오른손으로 한움큼 움켜쥐었다.

살점이 집히는 감촉이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물컹 육감적으로 전해져 왔다.

습인이 으음, 약하게 신음소리를 내면서 상체를 살짝 뒤로 젖히며 틀었다.

습인의 그 모습이 무척 교태스러워 보였다.

"증간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범하는 것을 말하고, 보간은 윗사람이 아랫
사람을 범하는 것을 말합니다"

보옥은 습인이 아직도 말을 돌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입술을 실룩거렸다.

결국 습인이 그 진상을 털어놓았다.

"증간은 아들이 어미를 범하는 것을 말하고, 보간은 어미가 아들을 범하는
것을 말합니다"

습인은 빠르게 말을 하고 얼굴을 붉혔다.

"과연 그게 가장 심한 불륜이 되겠구나. 그 다음은 아비와 딸이 상관하는
것이겠고. 그 다음은 또 무엇일까?"

보옥도 얼른 그 다음이 떠오르지 않았다.

습인도 여러가지 상황들을 생각해 보고 있는 듯하였다.

그러다가 역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상관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 그 그림과 시구절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지어진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상관을 하고 며느리는 대들보에 목을 매고. 아, 누구의 운명인지, 무섭군요"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