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풍련의 무리는 모두 1백74명이었다.

그들은 10월 24일 꼭두새벽에 후지사키 신사에 모여 참배를 한 다음 행동을
개시했는데, 한 부대는 현청을 습격했고, 다른 부대는 진대를 공격했다.

현청으로 간 패거리들은 관사를 덮쳐 야스오카 요시스케 현지사를 살해
했고, 대항하는 관원 넷을 죽였다.

진대로 향한 패거리들도 먼저 사령관 관사로 쳐들어가 육군소장인 다네다
마사아키의 침실로 뛰어들었다.

다네다 사령관은 애첩인 고가쓰와 함께 자고 있었다.

"누구야!"

놀라 잠을 깬 다네다는 냅다 소리를 지르며 뛰어일어나 머리맡에 놓인
육혈포를 집어들었다.

그는 잠잘 때 언제나 머리맡에 육혈포를 놓아두는 터였다.

"다네다, 이놈아!"

"칼 받아라! 에잇!"

어둠 속에 대검이 번갈아 휙! 휙! 바람을 일으켰다.

"으악-"

다네다는 손에 쥔 육혈포의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벌렁
나가 떨어졌다.

탕! 총소리는 울렸으나, 그 탄환은 천장을 뚫었을 뿐이었다.

"아이고-"

질겁을 한 고가쓰는 이부자리 속에서 튀어나와 냅다 방밖으로 내달았다.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하얀 알몸이었다.

벌거숭이로 뛰어나간 고가쓰는 살았고, 다네다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사령관을 죽이고, 포병영을 점령한 신풍련의 무리들은 그곳을 본거지로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도 잠깐이었다.

날이 새자, 진대군의 맹렬한 반격전이 시작되었다.

기관총을 비롯해서 대포까지 동원한 관군의 공격 앞에 그들은 속수무책
이었다.

신군을 자처하여 일어섰던 무리들은 그날 하루를 지탱하지도 못하고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우두머리인 오호다는 총상을 입고 자결했는데, 그의 나이 42세였다.

그렇게 신풍련의 봉기가 너무나 허망하게 진압된 사흘 뒤인 27일에는
마치 그 뒤를 잇듯이 후쿠오카현의 옛 아키쓰키 번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 역시 큰 성과 없이 관군의 화력 앞에 무너졌다.

아키쓰키에서 거병을 한 이튿날인 28일에 이번에는 야마구치현의 하기에서
또 불길이 올랐다.

하기의 옛 번교인 명륜관의 뜰에 커다란 모닥불이 밤하늘을 태울 듯
피어오르고, 사족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