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허무맹랑한 거짓말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존재할수 있는 일을
묘사한 거짓말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문학은 가능한 세계의 기록"이라고 말한 것도
그러한 생각에서 발상된 것이다.
소설이 가능한 세계의 기록이다 보니 필화에 휘말리는 경우가 적지않다.
사회적으로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키는 것은 현실정치문제를 소설의 소재로
다뤘을 경우다.
작가가 소설속에서 묘사한 정치적 이상이나 특정한 정치문제에 대한 역사적
현실적 해석 내지는 은유적 비판이 현실정치의 이데올로기나 기득권층의
이익에 배치되었을 때다.
1965년 박정권 치하에서 일어난 소설가 남정현씨의 "분지" 필화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민족의 주체성 상실, 정권의 부패, 빈부의 격차등 심각한 현실을 고발
하려는" 동기에서 쓰여진 소설이 기득권층에게는 "반미감정과 반정부의식을
고취함으로써 북괴의 대남 적화전략의 상투적 활동에 동조한" 것으로 확대
해석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었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짓밟은 이 선례는 그뒤의 강권통치 정권하
에서도 문화통제를 하는 수단으로 자주 원용되었다.
그러한 풍토는 스탕달이 말한 "독자로 하여금 분개하는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정치소설이 뿌리내릴수 있는 토양을 짓뭉개버렸다.
한편 한국사회에서는 정치소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인물을 소설속에
픽션화하는 것 역시 어렵기 그지없는 여건에 놓여 왔다.
그 인물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킬 때에는 별 문제가 있을수 없으나
부정적인 면을 묘사하고 사실을 가공 내지는 왜곡하는 경우에는 문중이나
유족들로부터 명예훼손이라고 항변을 받거나 법정문제로까지 비화되기
일쑤였다.
명예란 법률상으로 사람의 인격적 가치에 대해 사회가 부여하는 객관적
평가, 즉 외부적 판단이다.
이러한 법익을 침해하는 것이 명예훼손이다.
때마침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작고한 핵물리학자 이휘소박사의 일생을
소재로 다룬 베스트셀러 소설 3종이 사실을 왜곡하여 고인의 명예를 훼손
했다는 이유로 유족들에 의해 법원에 제소되어 판결을 기다리게 되었다.
근년들어 역사상의 인물들에 대한 소설의 출간이 붐을 이루면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점에 비추어 이박사일대기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실명소설
의 픽션화에 있어서 창작권의 한계를 가늠해주는 척도가 될 것임에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