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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명창] (12) 거문고 이세환씨..선비의 가락찾아 26년

거문고(현금)는 예부터 상류사회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은 악기다. 대중을
위한 공연용악기가 아니라 수신을 위한 선비의 악기였다.

그래서 백악지장이라고 불렸다. 지식인들이 한가로운 생활을 할수 없던
일제강점기 이후 거문고소리를 항간에서 듣기 어려워졌다.

이세환씨(42.국립국악원연주원)는 선비음악의 맥을 잇고 있는 금객이다.
성경린 원광호 두 원로가 각각 정악과 산조부문의 봉우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현역으로서는 이씨의 연주에 대해 가타부타할 사람이 적다.

68년 국악사양성소(국악고교전신) 11기로 입학해 거문고와 인연을 맺은지
26년. 타고난 악재인 그도 국악과의 인연은 가정사정탓이었다.

빈한한 가정은 3남4녀의 장남인 그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상업계학교에
진학하려할때 마침 국악사양성소 5기생이었던 동네형님 한병주씨(돈보스코
음대교수)가 국악사양성소를 소개해 줬다.

40명 동기생 가운데 시립국악관현악단장 김영동씨를 비롯 부산대음대에
재직중인 백혜숙 황의종교수등이 국악계중견으로 활동하고 있다.

"과묵한 선비를 연상시키는 묵직한 모양에 혼자 대화할수 있을 것 같은
음색에 반해 거문고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68년 구윤국씨(경북대음대학장)
에게 거문고정악을, 원영재씨에게서 거문고산조를 배운 뒤 2학년때부터
거문고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69년 국악예술학교에 계시던 신쾌동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정악중심인
국악사양성소와 민속악중심인 국악예술학교의 교류가 적었던 때라 허락받기
가 어려웠죠. 서너달을 쫓아다녀 겨우 배울수 있었습니다" 신선생은 16세때
거문고산조의 창시자인 백악준선생문하에 들어가 평생을 거문고와 함께
살다간 인물. 이씨는 신선생의 작고(77년)때까지 그에게 거문고산조를
고스란히 배웠다.

73년부터는 당시 지방공연을 많이 다니던 거문고산조의 또다른 명인
한갑득선생에게도 거문고산조를 배웠다.

"예전에는 녹음기나 악보가 제대로 없어 잊어버리면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하루 8시간 이상씩 연습을 했지요. 지금은 음반도 있고
좋은 악보도 많은데 학생들의 소리에 대한 집념이 없는 것 같아요" 술대로
인해 굳은살이 배긴 오른손중지와 농현으로 지문이 사라진 왼손 다섯손가락
이 젊은 시절 피터지는 줄도 모르고 매달린 정열을 담고 있다.

지금도 이씨는 공연때마다 신쾌동류산조와 한갑득류산조를 자주 연주한다.
신쾌동류가 장중하고 깊고 꿋꿋한 느낌을 주는 45분가량의 산조인데 반해
한갑득류는 아기자기하고 오묘해 가야금의 맛을 풍기는 25분가량의 짧은
산조이다.

"사물놀이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흥분되죠. 북과 징이 무거운 소리를 내주고
꽹과리 장구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요. 거문고는 이 모든 것을 동시에 낼
수 있는 악기입니다" 거문고는 1현부터 차례로 문현 유현(또는 자현) 대현
목과상청 목과하청 무현등의 6현으로 이뤄져있다. 연필만한 크기인 술대로
퉁겨 큰소리 작은소리를 자유자재로 낼수 있고 롱현도 그 폭이 크다. 그래서
슬픈소리가 특징인 아쟁, 경쾌한 소리가 매력인 가야금에 비해 깊고 무게
있는 남성적 소리가 난다. 슬픈 계면조와 장중한 우조가 함께 담겨있다.

이씨는 국악사양성소를 마친 후 지방연주생활을 하다 부산에 정착, 부산
관현악단의 창단멤버로서 현악악장을 맡아 일했다. 75년 상경해 국립국악원
연주원으로 입단, 오늘에 이르고 있다. 83년에는 서른살을 넘긴 나이로
한양대음대국악과에 입학, 대학원(음악교육전공)까지 마쳤다.

국악당 개관음악으로 작곡한 무용음악 "터" 국수호의 춤에 부친 "학의
발자욱소리" 86아시안게임 부산개막축하음악 "신강강술래" 88올림픽부산
개막축하음악 "여명의 빛"등이 모두 그의 곡이다. 이제까지 무용곡 30곡을
포함 40여곡을 작곡해냈다. 요사이는 고음보를 해독 녹음하는 작업에 열중
하고 있다.

최근 발견된 "금학입문"(기록자미상)에 수록된 "영산회상"을 현재것과
비교해 거문고로 연주해 녹음할 계획.

대학교수로 자리잡은 사람들도 많지만 그는 무대에서 소리로 말하는
연주인의 길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일년에 독주회 20회, 합주 1백50회등
이틀에 한번은 꼭 무대에 나선다.

"예전에는 지방에 명인들도 많았는데 요즘은 너무 서울 중심으로 흐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수준이 너무 높아요" 동호인모임을 활성화해 선비음악
의 전통을 되살려보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이를 위해 90년 한양대
국악과졸업생들로 한음회를, 91년 거문고전공자들과 함께 금율악회를 창단,
해외공연과 정기발표회를 갖고 있다.

부인 조은성씨(43)와의 사이에 2남. 둘째는 성균관대에서 한국무용을 전공
하고 있다.

<권령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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