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유세이씨. 재일교포사회나 금융계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소리
듣기 십상이다. 마쓰모토상사 대표로서 몇손가락안에 꼽히는 한국계 재산가
인 까닭이다. 한때는 그의 재산이 7천억엔은 될 것이라는 설이 나돌 정도
였다. 돈이 남아돌던 일본은행들은 물론이고 한국계은행 도쿄지점장들도
"제발 대출좀 하라"고 간청하기위해 다투어 만나려고 했던 VIP였다. 그만큼
든든한 대출선이자 예금주로 인식됐다.

그런 그가 지금은 한국계 은행들에 몰리는 입장이 됐다. 거품경기의
붕괴로 골프장등 투자한 부동산값이 절반이하로 떨어진 때문이다. 자연히
은행에 제공한 담보물건의 감정가격도 떨어지고 연체대출금이 생기게 됐다.
한국계은행들은 약정기간이 되지않은 대출금을 회수하려하거나 담보부족액을
메우라고 성화다. 국내 금융관행으로 보면 한국계은행 도쿄지점장들의 행태
는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재일교포사회의 시각은 다르다.

마쓰모토씨 얘기가 나오면 교포사업가들은 하나같이 "한국계은행들은
일본은행들만 못하다. 저런 식으로하면 양질의 거래선이 한국계은행을
믿고 거래를 확대해 나갈리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불황의 장기화로 부동산값이 떨어졌어도 일본의 은행들은 추가담보를
넣으라거나 만기에 앞서 대출금을 회수하겠다고 나서지않는 반면
한국계은행들만 들들 볶고 있으니 누가 일본은행을 제쳐두고
한국계은행들과 거래를 확대해 나가겠느냐는 얘기다.

이같은 재일교포사업가들의 주장은 한국과 일본의 금융관행,특히 대출선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다른지를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금융기관들은 기업경영자도 어쩔수 없는 요인,곧 경기침체등으로
기업이 어려울때는 우리 금융관행으로는 극히 이례적일 정도로 관대하다.
그 원인을 가리지않고 대출선이 어려울수록 점차 냉혹해지는 풍토가 절대로
아니다.

돈이 쪼들리는 기업들에 약정기간전에 대출금을 갚으라는 등으로
자금사정을 더 어렵게 만드는 일은 거의 없다. 추가담보요구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는다.

소생 가능성을 따져본뒤 경기가 회복될 경우 되살아날 것으로 여겨지면
연체금리도 매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자율을 낮춰주거나 탕감해주고
추가적인 자금지원까지 해준다. 요즘처럼 부동산과 주가가 모두 내리는
불황일때는 대출선에만 책임을 묻지 않는게 일본은행들의 상식이다.
은행도 거품이 걷히는 과정에서의 "고통분담"에 나선다. 즉 부실채권에
대해 즉각적인 법적절차를 취하지 않고 몇년간 이자를 감면해주는 것이다.

지난해 9월말현재 은행대출잔고의 3%가량은 단기우대금리보다도 금리가
낮거나 이자를 아예 받지 않는 대출이다. 부실채권의 일부를 건지기위해
거래선을 죽이기 보다는 어려운 기업을 살린후 원금과 이자를 회수하는
경영을 하고있는 셈이다.

이토구니오 히토쓰바시 대학교수는 "일본 기업들이 강한 것은 이런
금융관행도 한 몫을 하고있다. 이러한 금융관행은 주거래은행제도와
관계가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도 주거래은행제가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전혀 다르다. 주거래은행
관계가 되기까지는 매우 까다로운 신용조사,주변및 평판조사가 행해진다.
일단 주거래관계가 성립된 후에는 철저하게 뒤를 보살펴준다. 주거래은행이
직접 융자하기 어려울때에는 자회사 또는 관련회사를 통해 지원해주거나
다른 은행에 알선 또는 보증을 해주기도 한다. 또 기업측은 경영권안정을
위해 자사주식을 은행측이 보유토록 한다. 거래선도 그 은행주식을 갖는다.
은행과 기업간의 주식상호보유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은행은 장기간에 걸친
이러한 밀접한 관계로 대출선의 정보를 생생히 입수한다. 누구보다도 대출선
의 사정을 꿰뚫어 볼수 있게 된다.

대출이 부실화됐을 경우에도 담당자의 고의적 배임이나 명확한 판단미스가
없을때는 개인에 대한 인사.금전상의 불이익을 주지않는다. 그만큼 소신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일할수 있는 풍토가 조성돼 있다.

다이이치강쿄은행의 치쿠씨는 "인사고과도 중장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까닭에 인사이동시 거래선들을 몰고다니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

일본의 이런 금융풍토는 은행만의 노력으로 된것이 아니다. 기업들 역시
신뢰감을 쌓도록 애써왔다. 일본기업은 상당수가 임원들이 자기재산을
주거래은행에 담보물건으로 넣는다. 회사와 운명을 같이 한다는 결의의
표시이다.

가나가와식품이라는 회사는 색다른 노력으로 은행의 신뢰를 얻고 있다.
반기결산이나 결산기를 앞두고 경영진과 경리책임자가 미나미간토은행으로
가서 경영상태 사업계획을 브리핑한다. 은행측은 자금시장동향및
부도업체현황등에 대해 설명한다.

서울신탁은행의 문길섭도쿄지점장은 "화를 바탕으로한 가족적인
금융시스템,기업우선의 금융정책으로 일본기업의 힘이 배가 되는것 같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