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시절 중국 독자뿐만 아니라 신라인,지금의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감동을 주는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정치를 잘했던 현종은 만년에 사향 수집이 취미였던 양귀비와 사랑에 빠져 정치를 돌보지 않고 패망하게 된다. 현종은 왕후와 여러 후궁들에게서 아들 30명과 딸 29명을 얻었는데,60여세 무렵 스무 살도 안 된 양귀비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양귀비의 본명은 옥환(玉環)이다. 옥처럼 부드럽고 토실토실하고 둥글둥글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귀비는 현종의 사랑을 받을 당시 매비의 질투를 받았는데,항상 '비비(肥婢 · 살찐 종년)'라고 욕을 먹었다. 그러나 양귀비의 발만큼은 작았다고 한다.

이백은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궁중행락사(宮中行樂詞)' 2편에서 '버들은 여린 황금빛/ 배꽃은 향내나는 흰 눈/ 옥루에 비취새 깃들고/ 구슬 누각엔 원앙이 숨었네/ 기녀를 뽑아 어여쁜 가마 따르게 하고/ 명창 데리고 동방을 나선다네/ 궁중에서 그 누가 제일이런가/ 비연이 소양전에 거하고 있네'라고 읊으며 조비연(趙飛然)에 비유했다.

초나라의 미녀 조비연은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며,바람에 날려 가지 않으려고 병풍을 치고 살았을 정도라고 한다. 물론 양귀비의 외모는 조비연과 달리 통통했다.

현종을 몰락시킨 것은 양귀비만이 아니었다. 양귀비의 수양아들인 동시에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또 다른 남자 안록산(安祿山)이 있었다. 안록산의 등장은 당대 체제 변화에 중요한 사건이 됐다. 혼혈아인 그는 성격이 소탈하고 변방 오랑캐 언어에 능통했으며 아부의 달인이었다.

어느날 당 현종이 무릎을 덮을 정도로 늘어진 안록산의 배를 보면서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기에 그리 튀어 나왔소"라고 묻자 "폐하에 대한 일편단심이 가득 들어차 있어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런 그가 현종의 여인을 자주 만나 애정 행각을 벌였다는 것은 인간의 표리부동한 성격을 대변한다.

둘의 관계를 모르는 현종은 변방의 총책임자로 안록산을 신임했다. 안록산의 힘은 양귀비의 오빠 양국충(楊國忠)과 권력투쟁을 벌일 수 있을 만큼 커졌다. 양국충에게 재상 자리를 빼앗긴 안록산은 흩어져가는 민심을 등에 업는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안록산은 이임보,양국충의 전횡으로 민심이 황실에서 떠났다고 보고 군사 15만을 이끌고 장안으로 향했다. 천보 14년(755)의 일이다. 불과 석 달여 만에 장안이 반란군에 함락되고 72세의 현종은 피란길을 떠난다.

이때 현종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촉나라를 통해 달아났다. 이 길은 양자강의 소용돌이치는 협곡이 주를 이루고,육로는 가파른 산길로 이루어진 곳.나무를 깎아질러 박은 잔도(棧道)만이 현종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종은 결국 그해 7월 태자에게 자리를 넘겨주어야 했다.

현종과 양귀비의 망국적 사랑놀음은 당시 시인들의 흥미로운 소재가 되기에 충분했다. 어디 그 시절뿐이랴.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본분을 망각하는 순간 비극이 싹트는 법.최근 색다른 제목의 책 때문에 유명인들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새삼 옛일을 돌아보게 된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