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잔. 우리나라 성인 한 명이 1년 동안(2018년 기준) 마시는 커피 양이다. 세계 평균치인 132잔보다 3배가량 많다. 최근 몇 년간 커피 소비 추세를 감안하면 조만간 ‘연간 소비량 400잔 고지’를 넘을 전망이다. 글로벌 커피업계가 대한민국을 ‘신흥 커피 대국’으로 꼽는 이유다. 커피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커피의 효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커피를 마시면 암·당뇨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커피를 언제 마시느냐, 원두를 어떤 방식으로 추출하느냐에 따라 효과는 천차만별이다. 커피의 성분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 커피의 효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살펴봤다.

커피는 ‘노화 억제’ 음료

"고지혈증 있으면 드립커피, 간 나쁘면 아메리카노 드세요"
커피는 카페인 음료의 대표주자다. 중추신경계 자극제인 카페인은 적정량을 섭취하면 집중력을 높여주고 피로를 줄여준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권고량은 성인 기준으로 하루 최대 400㎎이다.

일반적으로 에스프레소 한 잔에 들어 있는 카페인 양은 35㎎이다. 에스프레소는 볶은 커피 원두에 뜨거운 물을 넣고 높은 압력으로 뽑아내는 방식이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아메리카노 한 잔에 담긴 카페인 양도 마찬가지다. 다만 아메리카노에 에스프레소를 두 잔 넣었다면 카페인 양은 70㎎으로 뛴다. 종이 여과지에 원두가루를 담은 뒤 뜨거운 물을 부어 추출하는 드립커피 한 잔에는 에스프레소보다 많은 60~100㎎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다른 카페인 음료를 섭취하지 않는다면 아메리카노든, 드립커피든 하루 3~4잔 마셔도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이보다 많은 카페인을 섭취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과도하게 높아진다. 두통, 가슴 두근거림, 속쓰림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커피에는 카페인 외에도 1000여 가지 물질이 들어 있다. 항산화물질인 ‘폴리페놀’이 대표적이다. 인체는 과다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활성산소(유해산소)를 만든다. 활성산소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정상세포를 공격해 노화 등을 촉진한다. 폴리페놀은 이 활성산소와 결합해 노화를 억제한다. 커피는 다른 카페인 음료인 녹차와 홍차보다 폴리페놀이 최대 9배 많이 함유돼 있다. 커피가 ‘노화를 막아주는 음료’로 불리는 이유다.

간질환·치매·당뇨병 예방 효과도

커피는 ‘간 건강 지킴이’ 역할도 한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커피는 만성 간질환이 간암으로 악화하는 걸 일부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커피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의 한 종류인 클로로겐산이 간세포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면 지방간이 생길 확률이 40%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꾸준히 마시면 치매 예방 효과도 있다.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팀은 매일 200㎎ 이상 카페인을 섭취한 집단이 이보다 적게 섭취한 집단보다 치매에 걸릴 위험이 36% 낮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커피의 폴리페놀 성분이 뇌의 노화를 방지해 치매를 예방해준다는 설명이다.

당뇨병 예방 효과도 있다. 강릉아산병원의 오미경·김하경 가정의학과 교수팀은 2003년부터 11년간 이 병원 건강검진센터에서 ‘당뇨 전 단계’ 판정을 받은 3497명을 평균 3.7년간 관찰했다. 그 결과 크리머나 설탕이 들어 있지 않은 블랙커피를 매일 두 잔 이상 마신 집단의 당뇨 발병률은 9.9%였다. 커피를 아예 마시지 않거나 매일 한 잔 정도 마신 집단의 당뇨 발병률(12.1%)보다 낮았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 역시 커피를 하루 한 잔 이상 마신 사람은 2형 당뇨 발생 위험이 11%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커피는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커피에 대사를 촉진하는 성분이 들어 있어 체지방 감소를 돕는다. 노상규 창원대 식품영양학과 교수팀은 매일 커피를 1~2잔 마시면 소장에 흡수되는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을 30%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노 교수는 “커피는 혈중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를 떨어뜨려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유산소 운동을 하기 전 카페인을 섭취하면 지방 대사를 촉진해 운동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콜레스테롤 수치 높으면 드립커피로

이런 긍정적인 효능 덕분에 커피는 ‘현대인의 생명수’로 불리지만, 무턱대고 마시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고지혈증 환자라면 커피에 들어 있는 지방 성분인 ‘카페스테롤’을 최대한 걸러낸 뒤 마셔야 한다. 커피에는 포화지방산과 콜레스테롤이 없지만 카페스테롤이 간에 들어가면 콜레스테롤로 바뀐다. 이런 사람은 가능한 한 드립커피를 마셔야 한다. 커피를 여과하는 과정에서 카페스톨, 카페올 같은 오일 성분이 걸러지기 때문이다.

반면 간에 문제가 있다면 커피의 오일 성분이 도움이 된다. 이들 성분은 간에 생기는 염증을 억제해준다. 종이 여과지를 쓰지 않는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는 게 좋다. 단 너무 많이 볶지 않은 원두를 사용해야 한다. ‘간세포 보호’의 주역인 클로로겐산은 열에 약해 너무 많이 볶으면 사라질 수 있어서다.

골다공증이 신경 쓰인다면 커피에 우유를 넣은 카페라테가 좋다. 일반적으로 카페인을 과다 섭취하면 칼슘 배출량이 늘어나면서 골밀도가 감소한다. 줄어든 칼슘을 보완하려면 커피에 우유를 넣으면 된다. 우유 대신 크리머를 넣는 것은 좋지 않다. 크리머는 식물성 오일의 불포화지방을 인위적으로 포화지방으로 바꾼 것이다. 많이 섭취하면 체내에 콜레스테롤이 쌓인다. 당뇨 환자 역시 크리머, 시럽 등을 넣지 않은 블랙커피를 마시는 게 좋다.

아침 공복 섭취는 피해야

‘커피 건강학’에 대한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몇몇 지점에선 건강에 좋은지, 나쁜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임신부가 대표적이다. 미국 국립의료원(NIH)에 따르면 하루 평균 커피 반 잔에 해당하는 카페인을 섭취한 임신부는 다른 임신부보다 더 작은 아기를 낳았다. 하지만 카페인을 하루 200㎎ 이내에서 섭취하면 태아의 건강에 위협적이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백유진 한림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임신했다는 이유로 커피를 완전히 끊을 필요는 없다”며 “다만 임신 중에는 모든 약물을 조심해야 하는 만큼 권고량 이내에서만 카페인을 섭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침 공복에 마시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다. 카페인은 위산 분비를 촉진하는데, 위가 비어 있는 상태에서 위산이 나오면 위염이나 위궤양, 역류성 식도염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아침에 정신을 깨우기 위해 ‘모닝커피’를 자주 마시면 카페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 정신을 맑게 해주는 코르티솔 호르몬은 오전에 가장 많이 분비된다. 이때 카페인을 섭취하면 과도한 각성 작용으로 인해 두통, 속쓰림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선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