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전경. 사진=한경DB
서울 여의도 전경. 사진=한경DB
'ETF 새 이름 발표 기자간담회' 'ETF 출시 2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 '미 운용사 CEO 방한 기자간담회' '신규 ETF 상장 기자간담회' 등.

최근 자산운용사들의 기자간담회 제목들만 이렇습니다. 신규 상장 ETF를 소개하는 간담회부터 새 ETF 브랜드를 발표하는 자리까지 콘셉트가 다양합니다. 다달이 새로운 상품이 쏟아지는 가운데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가열을 넘어 과열 수준입니다. 자산운용사들은 전담 디지털 마케팅 인력을 경쟁적으로 들이는가 하면 수십년간 유지해 온 브랜드도 바꾸고 나섰습니다.

22일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18일 기준 국내 전체 ETF 시장의 순자산총액은 76조4953억입니다. 4년 전 같은 기간 시장 규모(38조1563억원)와 비교해 꼭 2배 성장한 겁니다.

시장이 확 커지면서 운용사들의 점유율 변화도 두드러졌는데요. 2018년 전체 ETF 시장 규모의 52%가량을 차지했던 삼성자산운용의 점유율은 이달 현재 44%로 줄었습니다. 반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4년 사이 시장 점유율을 23%에서 37%로 키우며 부동의 1위로 여겨졌던 삼성운용의 왕좌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들 두 선두 운용사의 점유율 합은 2018년 76%에서 현재 81%로 5%포인트(P) 늘었습니다. 보다 많은 운용사들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양대 기업의 독점적인 지위는 오히려 굳건해진 겁니다. 시장의 남은 파이는 이달 기준 KB자산운용(6%)과 한국투자신탁운용(4%)를 비롯해 키움투자자산운용, NH아문디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이 각각 2%씩 나눠가진 상태입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선 운용사들의 ETF 브랜드 경쟁이 불붙었습니다. 브랜드 이름 자체를 바꾸거나 이미지(BI)에 변화를 주는 식입니다.

삼성자산운용은 지난 17일 'KODEX 출시 20주년 간담회'를 열고 리뉴얼한 브랜드를 공개했습니다. 기존 빨간색의 영문 대문자 'KODEX' 로고를 파란색 심볼과 함께 검정색 'Kodex'로 변경한 것인데요. 사측은 지난 4월 출시한 삼성 금융사 공동 브랜드인 삼성금융네트웍스와의 연계성을 강화하고자 파란색을 활용했고, 투자자 친화적 느낌을 살리고자 소문자를 사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17일 삼성자산운용은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KODEX 출시 20주년 간담회'를 열었다. 사진은 간담회에서 발표하는 삼성자산운용 서봉균 대표의 모습. 사진=삼성자산운용
지난 17일 삼성자산운용은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KODEX 출시 20주년 간담회'를 열었다. 사진은 간담회에서 발표하는 삼성자산운용 서봉균 대표의 모습. 사진=삼성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이보다 앞선 이달 13일부터 모든 ETF 상품에 바뀐 브랜드 이름을 적용했습니다. 2008년부터 써온 브랜드 'KINDEX'를 과감히 내려놓고 'ACe'로 새 출발을 시작한 겁니다. 여기에는 '고객 전문가'(A Client Expert)라는 의미가 담겼습니다. 'e'를 소문자로 표현한 것은 '낮은 보수'와 '누구나 쉽게 투자할 수 있는 상품' 등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란 게 사측 설명입니다. 머리글자가 'A'여서 투자자들이 기본 정렬 기준인 알파벳 순으로 상품을 조회할 때 가장 먼저 노출된다는 점도 꼽을 만한 장점일 겁니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기죠. ETF 브랜드에 변화를 주면 단기적으로 ETF 상품들의 수익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요? 한 번에 3000만~4000만원가량이 투입된다는 호텔 기자간담회도 여러 번 열어가며 새 브랜드를 알리는데, 일시적인 효과는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답을 얻고자 해외에 비슷한 전례가 있는가 찾아봤습니다. 작년 하반기 영국 자산운용사인 에버든은 22일 기존의 ETF 브랜드명인 'Aberdeen Standard'를 'abrdn'으로 일괄 바꿨습니다. 이 시기 반에크 글로벌도 미국에 상장된 자사 ETF 상품들의 브랜드명인 'Vectors Vectors'에서 'Vectors'를 뺀다고 발표했습니다. 기존의 'VanEck Vector Gold Miners' ETF에서 'VanEck Gold Miners' ETF로 바뀐 셈입니다. 이들 운용사의 총자산 상위 서너개씩을 골라 거래량 추이를 살펴봤지만 브랜드 변경을 전후로 유의미한 거래량 등의 변화가 포착되진 않았습니다.

한 ETF 전담 애널리스트도 "브랜드 변경 직후 거래량이 오르거나 내리거나 하는 등의 움직임이 나타났다면 이는 사실상 시장 상황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며 거래실적에 대한 리브랜딩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해석될 만한 예도 있습니다. 블랙록이 글로벌 선두 운용사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것은 2009년 당시 세계 1위 운용사인 바클리즈글로벌인베스터즈(BGI)를 인수했기 때문인 데요. BGI가 iShares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데는 '공격적인 브랜드 마케팅'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당시 BGI는 기존 기관 중심의 자사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iShares'라는 ETF 전문 브랜드를 내놓고 전문 ETF 판매팀을 꾸려 초기 인력 30명을 채용했습니다. 그리고 투자자 교육 측면에서 금융전문가와 개인투자자의 수요에 맞는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2011년 논문 'ETF 성공 전략과 바클리즈글로벌인베스터즈의 사례'에서 "BIG는 투자자들 사이의 낮은 인지도를 극복하기 위해 'iShares'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브랜드 전체의 가치를 높이는 데에 주력했다"며 "국내 기업들도 이런 전략을 차용해 ETF 브랜드 안착을 위해 공격적인 전략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한 바 있습니다. 최근 국내 운용사들의 브랜드 변경 행보도 투자자에게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한 시도로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김지연 미래에셋자산운용 ETF운용부문 선임매니저는 "ETF 시장에 뛰어드는 운용사들도 속속 나오고 계속해서 많은 상품들이 신규 상장되는 가운데, 시장 상황은 좋지 않다보니 개별 운용사들이 자사 ETF를 노출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진 것이 사실"이라면서 "자사 상품과 ETF 브랜드를 보다 많이 노출하기 위해 브랜드 변경이나 기자간담회 개최 등의 여러 액션을 취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기존의 브랜드나 바뀐 브랜드 이름을 알리는 '마케팅' 업무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올 들어선 때 아닌 '디지털 마케팅' 인력 경쟁도 치열한 모습입니다. 일부 운용사들은 광고홍보 대행사나 콘텐츠 제작사 출신 인력을 채용해 ETF 마케팅 전담조직을 꾸리기 시작했는데요. 최근엔 두 곳의 운용사가 비금융사 영상 콘텐츠 기획·제작 전문가 1명을 두고 영입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는 후문입니다. 이들 운용사가 비금융권 출신을 고집하는 이유는 비전문가 시선에서 리테일 고객들의 수요를 이해하고 충족시킬 인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