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갖기 시작한 AI…이젠 반도체가 소비재
나는 인공지능(AI)을 일종의 ‘신(新)지성체’라고 생각한다. 전후 산업사회에 독일과 일본이 새로운 경제 주체로 등장했고, 2000년대에는 중국이 글로벌 산업 무대에 새로운 주체로 올라섰다. 이번에는 AI라는 주체가 마치 하나의 새로운 인격체처럼 우리 산업사회에 등장한 것이다.

독일인, 일본인, 중국인이 그랬듯 AI도 생산력을 제공한다. 그리고 생산력을 유지하려면 소비를 해야 한다. 다만 AI는 인간이 아니기에 밥 대신 전기를 먹고, 몸 대신 반도체 위에서 산다. 문제는 이 ‘몸’이 도로처럼 한 번 지으면 끝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먼저 수명이 다르다. 고속도로는 한 번 깔면 30~50년을 쓴다. 반면 데이터센터 서버의 회계상 내용연수는 5~6년 남짓이고, 실제 경제적 수명은 그보다 짧다. 엔비디아가 매년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같은 전기로 더 많은 일을 하는 칩이 나올 때마다 구형 칩은 멀쩡히 돌아가더라도 경제성을 잃는다. 2~3년마다 바꾸는 스마트폰과 오히려 닮았다.

둘째, 수요가 사용량에 비례한다. 우리가 AI에게 일을 많이 시킬수록 그만큼 연산과 메모리가 더 필요하다. 쓰는 만큼 다시 깔아야 하는 구조다.

셋째, 1인당 소비량도 늘고 있다. 질문 하나에 답하던 AI가 이제 스스로 추론하고, 여러 단계 업무를 직접 처리하는 에이전트로 진화하면서 같은 일 하나에 드는 연산량과 메모리가 몇 배로 늘었다.

AI라는 인구가 늘고, 1인당 소비가 늘고, 소비한 재화는 몇 년마다 다시 사야 한다. 이것은 인프라의 수요 공식이 아니라 소비재의 수요 공식이다. 지난달 매뉴라이프는 내부적으로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의 ‘ChatGPT 모멘트’가 이미 도래했다고 판단했다. 로봇이 사전에 가르치지 않은 동작을 스스로 수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AI가 몸을 갖기 시작할 것이라고 본다. 다만 몸을 가지려면 더 뛰어난 두뇌가 필요하다. 환각(hallu

cination)을 일으키는 로봇은 곤란하다. 틀린 답을 말하는 챗봇은 웃고 넘길 수 있지만, 잘못 움직이는 로봇은 사고로 이어진다. 지금은 로봇 모델의 스케일링이 막 시작되는 시점이고, 더 많은 컴퓨팅을 통해 로봇 모델의 정교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더 좋은 AI의 뇌를 만들려면 더 많은 반도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뇌가 몸을 갖고 세상 속으로 걸어 나오는 순간, 반도체는 한 번 깔고 끝나는 도로가 아니라 새로운 지성체가 매일 소비하는 양식이 된다. 반도체를 인프라로 볼 것인가 소비재로 볼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앞으로 AI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건 매뉴라이프자산운용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