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흠 국회부의장이 주최하고 한국경제신문사가 주관한 ‘중국의 반도체 굴기,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가 14일 국회에서 열렸다. 좌장을 맡은 허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왼쪽 세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네 번째는 발제를 맡은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  이솔 기자
박덕흠 국회부의장이 주최하고 한국경제신문사가 주관한 ‘중국의 반도체 굴기,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가 14일 국회에서 열렸다. 좌장을 맡은 허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왼쪽 세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네 번째는 발제를 맡은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 이솔 기자
1980년대 한국 반도체산업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로 도약한 바탕에는 기업의 과감한 투자가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 발판을 마련한 건 정부의 국가적 연구개발(R&D) 및 자금 지원이었다. 그 핵심은 1986년 정부 주도로 국내 대기업과 연구기관이 함께 결성한 ‘4M D램 국가 공동 R&D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업들은 기초·설계 기술을 공동 개발해 공유하면서도 양산 공정은 각 사가 경쟁하는 ‘원팀’ 체제로 운영됐다. 그 결과 한국은 1989년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4M D램 개발에 성공했다.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도 3년에서 6개월로 축소됐다. 이는 1992년 세계 최초 64M D램 개발과 글로벌 1위 등극으로 이어졌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이 격화하는 지금 40년 전의 국가 총력전 전략이 다시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력한 도전자로 떠오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중국 기업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다. 주도권을 지키려면 한국이 국가 주도의 원팀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0년 전처럼 국가 총력전 나설 때"…中 추격 속도에 '화들짝'

◇ “2~3년 내 韓 생산능력 추월할 것”

14일 국회에서 박덕흠 국회 부의장과 한국경제신문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정책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공동 개최한 토론회에선 이 같은 원팀 전략을 촉구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발제자로 나선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과거 반도체 치킨게임의 경우 못 버틴 기업이 망하면 끝났다”며 “지금은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이 끝까지 버티면서 어느 쪽도 승기를 잡지 못하는 퇴출 없는 소모전이 시작된 만큼 국내 기업끼리 싸울 게 아니라 국가 주도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기업의 기술 및 생산능력 추격이 이미 눈앞에 다가온 실체라고 진단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CXMT의 글로벌 D램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2분기 4%에서 올 2분기 10%까지 올랐다. YMTC는 올 2분기 14%의 점유율을 기록해 일본 키옥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특히 중국 내부에서 메모리를 더 이상 넘기 힘든 벽으로 보지 않는 기류가 팽배하다는 점이 가장 큰 위협 요소로 꼽힌다. 백서인 한양대 자율전공학부 교수는 “중국 현지 전문가들은 그래픽처리장치(GPU)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와 달리 메모리는 기술 병목이 없는 시간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며 “막대한 자본과 인력 등 물량 공세로 1년마다 기술 격차가 2년씩 줄어드는 추격을 허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중국 기업이 생산능력 확대에 올인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한국을 따라잡을 것으로 내다봤다. 신창환 성균관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CXMT와 YMTC는 국내 기업이 설비 증설을 멈춘다는 전제하에 불과 2~3년 내에 SK하이닉스 수준의 생산능력까지 올라올 것”이라며 “중국의 물량 공세가 본격화돼 범용 D램 시장에서 치킨게임이 벌어지면 내년 하반기 이후 시장 판도가 거세게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예측 가능한 제도 뒷받침돼야”

전문가들은 중국이 독자 EUV 장비를 완성해 완벽한 자립을 하기 전에 국가 차원의 대전환을 이뤄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팹 증설을 넘어 한국이 차세대 AI 메모리 기술의 국제 표준을 직접 주도할 생태계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전재민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본부장은 “기업이 장기 투자를 집행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예측 가능한 정책과 제도로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벨기에의 세계 최고 반도체 연구소인 아이맥(IMEC)과 같은 글로벌 수준의 공용 R&D 팹 및 산·학·연 공동 연구 플랫폼을 국내에 신설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이날 토론회에는 박 부의장을 비롯해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 주호영·고동진·서지영 의원 등이 참석했다. 박 부의장은 “지난 1월 여야가 뜻을 모아 반도체산업특별법을 통과시켰고 반도체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 인프라 확충을 대폭 늘렸지만 아직 부족하다”며 “지원 속도를 더욱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채연/노유정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