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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혼자 서성이지 않는 학문의 길: 신진 연구자와 함께 여는 경영학의 내일
학위를 마치고 처음 강단과 연구실에 서는 신진 연구자들은 여전히 ‘각자도생’이라는 말부터 배운다. 연구비 신청서는 매번 혼자 채워야 하고, 논문의 방향성을 깊이 상의할 선배 학자도 마땅치 않으며, 학술대회에 가도 이미 공고하게 자리 잡은 기성 인맥의 틈바구니에서 겉돌기 일쑤다. 이는 개인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뼈아프다.
사회학자 다이애나 크레인이 제시한 ‘보이지 않는 대학(invisible college)’ 개념은 이 현실을 정확히 짚어낸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미공개 데이터, 결정적인 학술 기회는 정식 논문이 출간되기 훨씬 전, 주로 저명한 학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비공식 네트워크 안에서 먼저 공유되고 발전한다. 즉, 한 연구자의 초기 경력이 얼마나 순조롭게 안착하는가는 개인의 역량만큼이나 이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에 얼마나 일찍, 공정하게 접속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채용 문호가 좁아지고 학문 후속세대의 자립이 어려워질수록, 이 비공식 네트워크는 소수의 학연과 인맥을 중심으로 한 폐쇄적 카르텔로 변질되기 쉽다.
해외의 성숙한 학문 공동체는 이 접속의 통로를 오래전부터 공식 제도화해 왔다. 미국경영학회(Academy of Management)는 매년 연차총회에서 각 분과별로 박사과정생과 신진 교수진을 위한 ‘닥터럴 컨소시엄(Doctoral Consortium)’과 ‘주니어 패컬티 컨소시엄(Junior Faculty Consortium)’을 정례화하여 운영한다. 각 분과의 원로·중견 석학들이 공식 멘토로 참여해 신진 연구자의 연구를 검토하고 학술 네트워크의 문을 열어준다. 실력만으로는 닿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대학’의 문턱을 공적 프로그램으로 낮춘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세대 간 연결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관계 자체를 구조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조직심리학자 캐시 크램은 1985년 저서 『Mentoring at Work』에서, 발전적 관계가 후배의 경력을 실질적으로 견인하는 ‘경력 기능’(스폰서십, 코칭, 노출 기회)과 정서적으로 지탱하는 ‘심리사회적 기능’(역할 모델링, 수용, 상담)의 두 축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신진 학자가 최신 방법론과 정교한 데이터 분석 역량을 앞세워 연구의 방향을 주도하고, 원로 학자가 축적된 이론적 식견과 학술 네트워크로 뒷받침하는 협력은 이 두 기능이 완벽히 맞물리는 모델이다. 이를 상설 공동연구위원회나 시니어-주니어 연구매칭 프로그램 같은 공식 제도로 정착시켜야 한다. 정부 역시 단순히 재원을 N분의 1로 나누는 지원을 넘어, 세대 간 협업 연구과제에 별도의 연구비 트랙과 평가 가산점을 부여함으로써 시니어 학자의 참여 유인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 발전적 관계의 원리는 대학원 단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대학원생은 정기 공동세미나와 공저 논문 작성 가이드라인, 연구 윤리 및 방법론 교육을 포함하는 공식 멘토링 체계 안에서 지도교수와 함께 경력 기능과 심리사회적 기능을 경험하며 성장해야 한다. 이를 지도교수 개인의 성향이나 온정에 맡겨두지 않고 대학 및 학과 평가 지표에 반영할 때 비로소 제도로서의 실효성을 얻는다.
여성 연구자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은 단순한 형평성 차원을 넘어선다. 박사급 인재 중 여성 비율이 크게 늘었음에도 조교수, 정교수, 연구책임자로 올라갈수록 비율이 급감하는 ‘누수 파이프라인(Leaky Pipeline)’ 현상은 학문 생태계의 막대한 손실이다. 육아와 가족 돌봄으로 인한 연구 공백을 보완할 피어(Peer) 멘토링, 유연 연구 참여 모델, 여성 주도 연구과제 지원 트랙은 연구 인력 풀의 다양성과 국가적 연구 생산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길이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호주(SAGE), 미국(SEA Change) 등으로 확산된 ‘아테나 스완(Athena SWAN)’ 인증제는 유연근무와 경력 단절 복귀 지원, 멘토링 체계를 갖춘 기관에 인증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지원을 표준적 기준으로 안착시켰다.
결국 ‘보이지 않는 대학’이 소수의 특권이나 장벽이 되지 않으려면, 대학·정부·학회가 각자의 자리에서 그 문턱을 낮추는 제도적 다리를 놓아야 한다. 신진 연구자가 고립된 채 각자도생의 길에서 서성이지 않고, 학문 공동체의 든든한 일원으로 연구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이제는 제도로 응답해야 할 때다.
글=이동원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