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포함한 서울 강남 일대 전경.  /연합뉴스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포함한 서울 강남 일대 전경. /연합뉴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투자 확대가 구리 가격을 끌어올리면서 건설 현장의 ‘전선값’이 새로운 공사비 부담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전선업체들이 사용하는 전기동 가격은 t당 2100만원을 넘어섰고, 주요 업체의 나동선 판매가격은 1년 새 40% 넘게 뛰었다. 철근과 시멘트 등 전통적인 건설자재뿐 아니라 건물 내부 곳곳에 들어가는 전선과 케이블까지 가격 상승 압력이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전기동 t당 2107만8000원

28일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이달 국내 전기동 고시가격은 t당 2107만8000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1월 1560만3000원과 비교하면 9개월 만에 35.1% 상승했다. 올해 1월 1772만7000원과 비교해도 18.9% 높은 수준이다.

오름세는 올해 들어 특히 가팔라졌다. 전기동 고시가격은 1월 1772만7000원에서 2월 1986만1000원으로 한 달 만에 12.0% 뛰었다. 3월 1958만6000원, 4월 1938만6000원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5월 1998만5000원, 6월 2094만8000원, 7월 2157만5000원으로 다시 치솟았다. 이달에는 환율 하락 등의 영향으로 전월보다 2.3% 떨어졌지만 여전히 t당 2100만원을 웃돈다.
LS전선 직원들이 525kV 초고압직류송전(HVDC) 케이블의 품질을 검사하고 있는 모습.  /LS전선 제공
LS전선 직원들이 525kV 초고압직류송전(HVDC) 케이블의 품질을 검사하고 있는 모습. /LS전선 제공
국내 전기동 고시가격은 런던금속거래소(LME)의 전월 평균 가격에 국내 프리미엄과 환율을 반영해 산정한다. 이달 가격 산정에 적용된 LME 평균은 t당 1만3525.17달러, 원·달러 환율은 1512.05원이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국제 구리가격 상승에 원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국내 업체가 체감하는 원재료 부담이 더 커진 셈이다.

국제 가격도 다시 사상 최고 수준에 접근하고 있다.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지난 25일 LME 구리 현물가격은 t당 1만4425달러였다. 지난 18일에는 현물가격이 장중 t당 1만4912달러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LS전선이 공시한 올해 상반기 LME 구리 평균가격도 1만3083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9432달러보다 38.7% 상승했다.

원재료 40% 뛰자 전선 가격도 40%대 상승

구리값 상승은 시차를 두고 실제 전선 가격으로 넘어가고 있다. 전선산업은 제품 원가의 70~80%가 전기동과 알루미늄 등 원재료로 구성돼 원자재 가격을 제품 판매가격에 연동하는 구조다.

LS전선의 경우 올 상반기 국내 전기동 평균 매입가격은 t당 2000만1000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9.2% 올랐다. 같은 기간 전선의 중간재인 나동선 내수 판매가격은 t당 1453만7000원에서 2110만8000원으로 45.2% 상승했다. 원료값 상승분이 실제 판가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는 의미다.
"철근·시멘트만 오른게 아니네"…'전선값'에 공사비 초비상 [프라이스&]
올 1분기만 놓고 봐도 나동선 내수 판매가격은 t당 1975만2000원으로 지난해 연평균 1453만7000원보다 35.9% 높았다. 전력선 내수 판매가격도 지난해 t당 2592만7000원에서 올 1분기 3015만2000원으로 16.3% 올랐다.

소비자가 체감하기 어려운 t 단위 가격을 일반 옥내 배선으로 바꾸면 상승폭이 더 쉽게 드러난다. 건물 내부에서 사용하는 단면적 2.5㎟짜리 구리 도체 100m에는 약 2.24㎏의 구리가 들어간다. 이달 전기동 고시가격을 적용하면 구리 원재료 가격만 약 4만7000원이다. 지난해 11월 가격을 적용했을 때 약 3만5000원보다 1만2000원가량 늘었다. 여기에 절연재와 가공비, 물류비 등이 추가돼 실제 전선 가격이 결정된다.

국가통계포털(KOSIS)의 생산자물가지수에서 ‘전선 및 케이블’ 지수는 지난해 4월 197.27에서 올 4월 237.44로 20.4% 상승했다. 구리와 알루미늄 등 주요 원료 가격 상승이 제품 가격으로 전가된 영향이다.

가격 부담이 커지자 공공 발주처까지 계약가격을 다시 조정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지난 5월 전선업체들로부터 접수한 물가변동분 반영 요청 26건을 검토해 계약금액을 총 140억원 증액했다. 당시 한전은 전선 원자재 가격이 평시보다 30~40% 이상 오른 점을 고려했다. 수급 차질이 우려되는 전선의 납기도 일괄적으로 30일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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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데이터센터가 구리 빨아들인다

구리가격 상승의 배경에는 공급 차질뿐 아니라 구조적인 수요 증가가 있다.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에 이어 최근에는 AI 데이터센터가 새로운 ‘구리 먹는 하마’로 등장했다. 인공지능(AI) 열풍이 반도체 가격을 넘어 전력을 전달하는 ‘구리선’ 가격까지 밀어 올리면서 건설·설비 현장의 원가 구조를 바꾸고 있는 셈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2024년 수준에서 2030년 약 945TWh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서버뿐 아니라 이를 가동할 발전설비와 변압기, 송·배전망, 건물 내부 배선까지 막대한 전력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S&P글로벌은 세계 구리 수요가 지난해 2840만t에서 2040년 약 4200만t으로 50%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신규 광산 개발과 재활용 확대가 수요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면 2040년에는 연간 1000만t가량의 공급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AI와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노후 전력망 교체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관세 정책도 가격을 자극하고 있다. 미국이 정제구리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가능성을 내비치자 미국 내 재고 확보 수요가 증가하면서 구리가 미국으로 몰리고 있다. 미국 COMEX 창고의 구리 재고는 최근 사상 최대인 67만5185t까지 늘었다. 반대로 미국 이외 지역의 가용 재고가 줄면서 LME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구리가격의 충격은 건설비에도 반영되기 시작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6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38.22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5.5% 상승했다. 5월 지수도 137.67로 당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전선·케이블 가격 상승 등이 공사비 증가 요인으로 작용했다.

전선은 아파트와 상가, 공장 등 모든 건축물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자재다. 특히 전기 사용량이 큰 데이터센터와 첨단공장일수록 전력케이블과 배전설비 투입량이 많다. 구리값 상승이 전선업체의 매출 증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전기공사업체와 건설사, 공장 설비업체의 원가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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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