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허리케인 헐린이 미국 남동부를 강타하자 세계 반도체업계가 숨죽였다. 폭우와 정전, 도로 유실로 노스캐롤라이나주 스프루스파인 일대 광산 두 곳이 멈춰 섰기 때문이다. 인구 20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산골 마을의 광산이 멈췄을 뿐인데 세계 첨단산업은 왜 초조하게 복구 상황을 지켜봐야 했을까.

스프루스파인에서 생산되는 초고순도 석영 때문이다. 석영은 모래의 주성분인 실리카(이산화규소)가 결정 형태로 굳은 광물이다. 반도체 웨이퍼 제조의 핵심 단계인 단결정 실리콘 성장 공정에 쓰이는 초고순도 석영은 세계 공급량의 최대 90%가 스프루스파인 일대에서 나온다. 이 일대 광산 몇 곳의 가동 중단만으로도 반도체 공급망이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세계 첨단산업의 급소가 최첨단 반도체 공장이 아니라 미국 산골의 작은 광산 속 ‘모래’에 숨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래픽=이정희 기자·챗GPT
그래픽=이정희 기자·챗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