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시간을 길게 놓고 보면 의외의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보수 정부도 결국 복지를 확대하고, 진보 정부도 시장의 역할을 인정하게 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누구든 성장 정책을 꺼내 들고, 사회 갈등이 커지면 누구든 안전망 강화에 나선다. 출발점은 달라도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정책은 결과적으로 비슷한 방향으로 수렴한다. 매일 정치 뉴스에 노출될 때와 달리 10년, 20년 단위로 역사를 바라보면 생각보다 극적인 변화는 많지 않다.
정책은 바뀌지만 욕망은 바뀌지 않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이념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일지 모른다. 집값을 잡겠다는 정책이 나오면 사람들은 더 오르기 전에 집을 사려 한다.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정책이 나오면 더 큰 수익을 기대하며 움직인다. 세금이 높아지면 절세 방법을 찾고, 규제가 강해지면 새로운 우회로를 찾는다.정치권은 제도를 바꾸고 법을 만들지만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끊임없이 찾아낸다. 시장은 정책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수많은 개인의 욕망과 기대, 불안과 희망이 빚어낸 결과에 더 가깝다.
부동산 시장도 다르지 않다. 어떤 정부는 규제를 강화하고, 또 어떤 정부는 공급 확대와 규제 완화를 추진한다. 하지만 시장 참여자들이 원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 더 좋은 집, 조금 더 나은 환경, 조금 더 높은 자산 가치를 기대하는 마음은 어느 시대나 비슷하다. 정책의 이름은 바뀌어도 사람의 본능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인간은 반복된다
사람들은 늘 '이번만큼은 다르다'고 말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으며, 새로운 경제 환경이 펼쳐졌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시대는 변한다. 산업 구조도, 기술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진다.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게 반복된다. 시장의 가격이 오르면 영원히 오를 것처럼 낙관하는 동시에 떨어지면 다시는 회복되지 않을 것처럼 비관한다. 탐욕과 공포, 기대와 실망은 수백 년 전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
그래서 경제사를 들여다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사건은 달라졌지만 사람들의 행동 양식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투기의 방식은 달라져도 과열은 반복되고, 투자 대상은 바뀌어도 군중심리는 반복된다. 역사는 완벽하게 되풀이되지 않지만 인간은 되풀이된다. 그리고 그 반복이 시장의 순환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편이 아니라 균형이다
우리는 종종 보수냐 진보냐를 선택의 문제로 여긴다.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복잡하다. 시장만 강조하면 불평등 문제가 깊어지고, 분배만 강조하면 성장의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 어느 한쪽이 완벽한 정답이 되기는 어렵다.그래서 국가도, 사회도, 결국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시장이 과열되면 규제를 강화하고 경제가 위축되면 다시 활력을 불어넣으려 한다. 한쪽으로 기울었던 추가 다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듯이 그렇게 흔들리면서 균형을 찾아간다.
특정 진영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특정 진영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는 비난도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결국 어떤 이념도 인간의 본성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보수는 어느 순간 진보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며 진보는 역시 어느 순간 보수의 논리를 받아들이게 된다. 날카롭게 대립하는 것처럼 보여도 현실이라는 무대 위에서 두 진영은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된다.
우리는 늘 새로운 시대를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정치도 경제도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사람은 어제도 욕망했고, 오늘도 욕망하며, 내일도 욕망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역사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원하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인간의 아주 오래된 본성인지도 모른다.
<한경닷컴 The Lifeist> 명재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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