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퇴로 열었지만…시장은 요새 구축했다 [심형석의 부동산 정석]
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다주택자들은 양도세 중과 유예 기간 내에 매도하기보다, 향후 가치 상승분이 더 클 것으로 기대되는 강남권 및 한강변 아파트를 자녀에게 증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의하면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연립·다세대·오피스텔 등 집합건물 증여건수는 1385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증여건수는 작년 1월부터 꾸준히 증가했는데 올해 3월의 증여건수는 2022년 12월(2384건) 이후 3년여 만에 가장 많은 수치입니다.
‘세금을 내느니 자식에게 주겠다’는 심리가 강해지면서 매물 출회 효과가 상쇄되고 있습니다. 이달 22일 기준 서울의 매물은 7만5000건대로 줄었습니다. 가장 많이 증여가 일어난 곳이 강남구(82건), 송파구(81건)인 점을 고려하면 다주택자들이 ‘퇴로’를 찾기보다는 ‘자산의 응집’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증여건수가 늘어나는 점은 주택시장에는 악재입니다. 세법상 10년 안에는 다시 매물로 나오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주택자의 갈아타기가 한강벨트의 ‘똘똘한 한 채’를 중심으로 늘고 있습니다. 한 경제신문에서 한강벨트 5개 자치구의 15억원 초과 아파트 매매 중 소유권 이전등기가 완료된 거래의 등기부등본을 전수 조사한 결과 35건 중 15건(43%)이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매수한 갈아타기로 확인됐습니다. 유주택자들의 이동이 활발해지며 특정 단지에서는 오히려 신고가가 나오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강동구의 거래 12건 중 8건이 갈아타기 매수였습니다.
정부는 무주택자가 다주택자 매물을 구입하기를 원했지만, 현실적으로 무주택자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대출규제가 엄청난 상황에서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특히나 정부가 원하는 부동산 안정화가 필요한 지역인 상급지의 경우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면 다주택자 매물은 매입할 수 없지만 유주택자 갈아타기는 오히려 쉬워졌습니다. 중하급지에 있는 내 집은 잘 팔리는데 상급지의 매물은 가격이 조정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부의 기대와는 다르게 유주택자의 갈아타기가 상급지에서는 오히려 더 많이 나타난 겁니다.
세금 부담은 느끼지만 매수세가 붙지 않는 지역의 경우, 매물을 거둬들이고 전세를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해 보유세를 충당하는 버티기 전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시장의 매물 부족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부동산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으로 10일 전과 매물 숫자를 비교해보면 매물은 1.1% 줄었지만 월세 물건은 오히려 조금 늘었습니다. 보유세에 대비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출 규제와 세금 압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15억원 이하 중저가 단지로 수요가 쏠리며, 서민 주거층의 가격 부담이 오히려 커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해당지역에 진입하려는 실제 서민층의 진입장벽이 높아졌다는 점입니다. 대출규제가 덜하다고는 하지만 매매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하면 필요한 자기자본 규모가 커집니다. 자산이 부족한 청년층이나 신혼부부는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지역조차 포기하고 더 외곽으로 밀려나는 이른바 주거난민화가 진행될 겁니다.
주거난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중하급지 단지도 대출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기가 침체되거나 금리가 오른다면 고가주택 보유자보다 훨씬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매매가격이 오르면 전세가격도 동반 상승하는 경향이 커집니다. 특히 중하급지는 전세수요가 탄탄한 지역이 많아 집을 사지 못하고 전세에 거주해야 하는 무주택 서민에게는 직접적인 주거비 압박으로 다가올 겁니다.
주택시장은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시장 참여자들은 정부가 던진 정책이라는 ‘자극’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산을 지키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우회로를 찾는 능동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처방할 때 체질을 고려해야 하듯, 부동산 정책도 시장이라는 유기체의 생리를 정확히 읽어야 합니다.
때로는 ‘수요를 억누르는 정책’이 시장의 에너지를 응축시켜 더 큰 폭발을 야기하기도 하는데, 최근의 ‘자산 응집’으로 표현될 수 있는 현상이 바로 그 전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시장을 통제하려고 하기보다 시장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분산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공급)를 열어주는 것이 유기체적 해법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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