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콕없고, 빈자리에 알아서 척척"…우리집 '주차해결사'된 이것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주거용 오피스텔. 승용차 한 대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빈자리를 찾는가 싶더니 이내 납작한 물체 위에서 멈추어 선다. 운전자가 내리자 자동차는 스스로 빈 곳을 찾아 주차한다.
삼성물산이 서울 서초구 방배동 ‘래미안 원페를라’에서 선보인 인공지능(AI) 기반의 주차 관리 시스템. 삼성물산 제공
삼성물산이 서울 서초구 방배동 ‘래미안 원페를라’에서 선보인 인공지능(AI) 기반의 주차 관리 시스템. 삼성물산 제공
국민 2명당 자동차 1대를 보유할 정도로 자가용 보급률이 증가하면서 공동주택 내 ‘주차난’이 심화하고 있다. 2000년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에서는 이중 주차가 다반사다. 불편함이 잇따르자 로봇과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한 해법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주차 편의는 물론 공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향후 주거 서비스의 새로운 표준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주차 갈등 민원, 연평균 1.9만건 달해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자동차 누적 등록 대수는 2640만8000대로 집계됐다. 국민 1.9명당 자동차 1대를 보유한 셈이다. 사실상 ‘1가구 2자동차’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반면, 주거지 내 주차장은 부족한 편이다. 서울은 25개 자치구 중 11곳(작년 기준)에서 건축물 부설 주차면 수보다 자가용 승용차 수가 많았다. 아파트, 다세대주택 등에 조성된 주차장이 충분치 않다는 얘기다.

공동주택 주차난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이 발행한 ‘공동주택 주차난, 오토발렛이 해법이 될 수 있을까?’ 리포트에 따르면 2019~2022년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사유지 주차 갈등’ 민원은 7만6000건에 달했다. 주차 시비가 붙어 흉기를 휘둘렀다는 섬뜩한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이 발간한 '공동주택 주차난, 오토발렛이 해법이 될 수 있을까' 리포트에 담긴 기계식 주차 기반 오토발렛 비교표. LH 토지주택연구원 리포트 캡처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이 발간한 '공동주택 주차난, 오토발렛이 해법이 될 수 있을까' 리포트에 담긴 기계식 주차 기반 오토발렛 비교표. LH 토지주택연구원 리포트 캡처
아파트, 오피스텔 등 공동주택에 ‘오토발렛’ 기술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기술은 로봇, 컨베이어벨트 등을 활용해 차량 입출고를 돕는 시스템이다. 공간 효율성이 높지만 추락·갇힘 등 사고 위험이 있는 ‘기계식 주차’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장치다. 리포트를 쓴 배연희 책임연구원은 “기존 기계식 주차는 장치에 차를 올리는 것이 어렵고, 대기 시간도 길어 사용률이 낮았다”며 “오토발렛은 기계식 주차의 진화가 아닌, 도시공간 효율성과 이용자 경험을 동시에 향상하는 새로운 공동주택 인프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이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조성한 주거용 오피스텔 ‘힐스테이트 장안 라보니타’에 적용된 로봇 기반의 오토발렛 기계식 주차장의 모습. 현대건설 제공
현대건설이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조성한 주거용 오피스텔 ‘힐스테이트 장안 라보니타’에 적용된 로봇 기반의 오토발렛 기계식 주차장의 모습. 현대건설 제공
현대건설이 동대문구 장안동에 조성한 주거용 오피스텔 ‘힐스테이트 장안 라보니타’에는 로봇 기반의 오토발렛 기계식 주차장이 도입돼 있다. 리프트 앞쪽에 마련된 승·하차장에서 내리면 높이 99mm짜리 로봇이 차량 밑으로 들어가 들어 올리는 방식이다. 총 8대의 로봇이 배치돼 있어 일반 기계식 주차시스템 대비 입출고 시간을 2배가량 단축했다.

○로봇이 자동차 ‘번쩍’…자동주차 시대 온다


건설사는 한층 더 진화된 주차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현대위아와 함께 자주식(직접 주행) 주차장에 적용할 수 있는 ‘로봇주차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차량을 실은 로봇이 주차장을 돌아다니며, 빈자리를 찾아 차를 내려놓는 방식이다. 주차 후 사람이 내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주차면을 촘촘하게 배치할 수 있다. 전고(지면~지붕 높이)에 따라 주차 층을 분리하게 되면, 더 많은 주차 면적을 확보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현대건설과 현대위아가 함께 개발 중인 ‘로봇 친화 주차장’. 주차 로봇이 차량 밑으로 들어가고 있다. 현대위아 제공
현대건설과 현대위아가 함께 개발 중인 ‘로봇 친화 주차장’. 주차 로봇이 차량 밑으로 들어가고 있다. 현대위아 제공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로봇 발렛’도 가능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주동 출입문, 발렛존 등에서 운전자가 내리면 로봇이 스스로 차를 주차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빈자리를 찾기 위해 헤맬 필요도 없고, ‘문콕’(개문 찍힘 사고)을 걱정할 일도 없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공동주택 주차장과 관련된 법령이 개정돼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이르면 2027년 12월부터 주차 로봇을 운영할 수 있도록 안전 기준 및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삼성물산은 최근 입주한 서초구 방배동 ‘래미안 원페를라’에 AI 기반의 주차 관리 시스템을 적용했다. 핵심은 데이터를 분석해 입주민이 거주하는 주동과 가까운 곳, 자주 주차하는 위치 등 최적의 주차 장소를 추천 및 안내하는 것이다. 빈자리를 찾기 위해 빙글빙글 돌아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DL이앤씨, 한신공영 등도 이와 비슷한 주차 관제 시스템을 선보인 바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이 발간한 '신도시 근린상권 주차난의 해법, 주차장 공동개발' 리포트에 담긴 세종시 새롬동 사례. LH 토지주택연구원 리포트 캡처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이 발간한 '신도시 근린상권 주차난의 해법, 주차장 공동개발' 리포트에 담긴 세종시 새롬동 사례. LH 토지주택연구원 리포트 캡처
로봇·AI를 활용한 자동 주차 시스템이 고도화되면 인접 단지와 지하 주차장을 공유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LH 토지주택연구원은 지난 7월 발간한 ‘LHRI 포커스’ 리포트에서 통합 주차장을 신도시 근린상권 주차난의 해법으로 제시했다. 세종 새롬동에 조성된 행운빌딩과 에스월드빌딩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달 17일 서울시 통합심의를 통과한 서울 중랑구 중화동 일대 모아타운(소규모주택정비사업)에도 비슷한 개념이 적용될 예정이다. 329의 38일대와 329의 28일대 두 구역에서 각각 추진되는 모아주택은 지하층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정비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통합 주차장과 주차 로봇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필지 통합 주차장 개념이 등장한 것은 김포, 광교 등 2기 신도시에서 근린생활시설을 소규모 필지로 공급한 데 따른 주차 문제에서 시작됐다”며 “소규모 부지에 조성되는 모아주택, 오피스텔 등에 오토발렛과 함께 적용한다면 주차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주차 문화로 정착하기 위해선 소방·교통 등 규정을 완화하고, 주택법 등 관련 법령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주형 기자 handb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