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의 움직이는 ‘잡상들’은 빠른 속도로 출구를 빠져나가며 장소의 전환을 이뤘고, 이윽고 ‘삶의 세계’로 향하는 듯 보였습니다. 수백 년에서 수천 년 동안이나 늘 그 자리에 멈추어 있던 잡상을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바라보게 된 계기가 이 바로 그때였습니다.
잡상의 그림자
우리 궁궐의 지붕에는 사람이나 동물 모양의 조각이 줄지어 놓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붕의 면과 면을 구분 짓는 하얀 추녀마루에 보통 ‘잡상(雜像)’이라 부르는 형상을 올려 장식했기 때문입니다. 잡상은 기와를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흙으로 빚고 불에 구워 올립니다. 주로 궁궐이나 사찰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데, 위엄과 함께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 잡상은 수백 년 동안 추녀마루 위에 멈추어 있었지만 어쩐지 건축물 전체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생물처럼 보이게 합니다. 때때로 궁궐 지붕을 장식하기 위해 사용됐던 용두(龍頭, 용머리 형상의 지붕 장식)와 치미(鴟尾, 솔개 꼬리 모양의 지붕 장식)가 권위와 화려함을 뽐냈던 것과 달리, 잡상은 어딘가 모르게 익살스러움을 담고 있습니다.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도산공원의 안창호 선생, 남산의 백범 김구와 다산 정약용, 서대문의 유관순 열사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여러 장소에는 독립운동가와 성웅을 기리는 동상이 참 많습니다. 일찍이 유홍준 선생이 그의 역작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등을 통해 설명한 바 있듯이, 원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는 동상이 아니라 비석 문화권에 속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광개토대왕, 진흥왕 등 우리 역사 속에 기록을 남겼던 영웅들은 자신의 모습을 닮은 동상 대신 비석을 남겼습니다. 동상을 세우기 시작했던 건 제국주의 시대 이후였다고 합니다. 원래 동상은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해야만 했던 파시스트들이 주로 활용했던 도구이자 장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우리 곁에 존재하는 비석뿐만 아니라 세월의 때가 묻은 동상에 대해서도 반가움과 그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동상은 빛을 머금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멈추어 있던 것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죠. ‘동상(銅像)’이 아니라 ‘동상(動像)’인 것이죠.
사카모토 류이치가 작곡한 음악 중 ‘파로리브레(Parolibre)’는 ‘이야기 문학’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조어)라고 합니다. 대개 연주곡이 그렇지만 ‘파로리브레’는 특히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연주자들이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들립니다. 자코모 푸치니 오페라의 간주곡을 떠올리며 ‘파로리브레’를 작곡했다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설명을 읽고 나면, 왠지 그런 것도 같습니다. 들을 때마다 마치 오페라 <마농 레스코(Manon Lescaut)>나 <나비부인(Madama Butterfly)>의 간주곡을 마주한 것처럼 벅찬 감정이 일기 때문이죠.
사카모토 류이치가 지난 1996년, 이 곡을 들고 첼로 연주자 자크 모렐렌바움(Jaques Morelenbaum), 바이올린 연주자 에버튼 넬슨(Everton Nelson)과 함께 전 세계를 돌며 공연을 펼쳤던 모습도 꼭 추녀마루 위의 잡상 같습니다. 연주자 세 사람 중에는 세상을 떠난 이도 있어 똑같은 연주는 다시 이뤄질 수 없지만, ‘파로리브레’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빛과 그림자
지난가을엔 세계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인 김인중 신부의 전시가 열린 서소문성지 역사공원에 들러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선생의 작품은 한 차례 채색된 상태로 완전히 멈추었지만 빛과 그림자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고 날갯짓을 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