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驛舍)의 잡상
서울역사의 노을과 움직이는 '잡상들' / 사진. © 김현호
서울역사의 노을과 움직이는 '잡상들' / 사진. © 김현호
해 질 녘 서울역에 도착한 기차가 쏟아낸 인파가 출구로 향할 때 그 모습은 마치 추녀마루 위의 잡상 같았습니다. 경사형 승강기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얼굴은 참 아름다웠는데, 이제 집으로 가자고 말하는 듯한 표정, 친구를 만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미소가 번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햇살을 머금은 얼굴과 그림자는 영락없이 익살맞은 잡상처럼 보였습니다.

서울역의 움직이는 ‘잡상들’은 빠른 속도로 출구를 빠져나가며 장소의 전환을 이뤘고, 이윽고 ‘삶의 세계’로 향하는 듯 보였습니다. 수백 년에서 수천 년 동안이나 늘 그 자리에 멈추어 있던 잡상을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바라보게 된 계기가 이 바로 그때였습니다.

잡상의 그림자

우리 궁궐의 지붕에는 사람이나 동물 모양의 조각이 줄지어 놓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붕의 면과 면을 구분 짓는 하얀 추녀마루에 보통 ‘잡상(雜像)’이라 부르는 형상을 올려 장식했기 때문입니다. 잡상은 기와를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흙으로 빚고 불에 구워 올립니다. 주로 궁궐이나 사찰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데, 위엄과 함께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 잡상은 수백 년 동안 추녀마루 위에 멈추어 있었지만 어쩐지 건축물 전체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생물처럼 보이게 합니다. 때때로 궁궐 지붕을 장식하기 위해 사용됐던 용두(龍頭, 용머리 형상의 지붕 장식)와 치미(鴟尾, 솔개 꼬리 모양의 지붕 장식)가 권위와 화려함을 뽐냈던 것과 달리, 잡상은 어딘가 모르게 익살스러움을 담고 있습니다.
창경궁의 잡상 / 사진. © 김현호
창경궁의 잡상 / 사진. © 김현호
그래서 햇살이 눈 부신 날을 골라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잡상을 구경한 일도 있습니다.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같은 장소를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했죠. 언젠가 우고 론디노네의 대형 작품이나 이우환 화백의 야외 설치미술을 촬영하기 위해 같은 장소를 수도 없이 방문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잡상을 감상할 때처럼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멈추어 있는 것이 움직이려면 동력 대신 빛이 필요할 터이니 햇살이 좋은 날에는 늘 그렇게 찾아다녔던 것이죠.

움직일 동(動)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도산공원의 안창호 선생, 남산의 백범 김구와 다산 정약용, 서대문의 유관순 열사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여러 장소에는 독립운동가와 성웅을 기리는 동상이 참 많습니다. 일찍이 유홍준 선생이 그의 역작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등을 통해 설명한 바 있듯이, 원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는 동상이 아니라 비석 문화권에 속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광개토대왕, 진흥왕 등 우리 역사 속에 기록을 남겼던 영웅들은 자신의 모습을 닮은 동상 대신 비석을 남겼습니다. 동상을 세우기 시작했던 건 제국주의 시대 이후였다고 합니다. 원래 동상은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해야만 했던 파시스트들이 주로 활용했던 도구이자 장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우리 곁에 존재하는 비석뿐만 아니라 세월의 때가 묻은 동상에 대해서도 반가움과 그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동상은 빛을 머금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멈추어 있던 것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죠. ‘동상(銅像)’이 아니라 ‘동상(動像)’인 것이죠.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 사진. © 김현호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 사진. © 김현호
세 사람, 음악으로 빚은 잡상

사카모토 류이치가 작곡한 음악 중 ‘파로리브레(Parolibre)’는 ‘이야기 문학’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조어)라고 합니다. 대개 연주곡이 그렇지만 ‘파로리브레’는 특히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연주자들이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들립니다. 자코모 푸치니 오페라의 간주곡을 떠올리며 ‘파로리브레’를 작곡했다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설명을 읽고 나면, 왠지 그런 것도 같습니다. 들을 때마다 마치 오페라 <마농 레스코(Manon Lescaut)>나 <나비부인(Madama Butterfly)>의 간주곡을 마주한 것처럼 벅찬 감정이 일기 때문이죠.

사카모토 류이치가 지난 1996년, 이 곡을 들고 첼로 연주자 자크 모렐렌바움(Jaques Morelenbaum), 바이올린 연주자 에버튼 넬슨(Everton Nelson)과 함께 전 세계를 돌며 공연을 펼쳤던 모습도 꼭 추녀마루 위의 잡상 같습니다. 연주자 세 사람 중에는 세상을 떠난 이도 있어 똑같은 연주는 다시 이뤄질 수 없지만, ‘파로리브레’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빛과 그림자

지난가을엔 세계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인 김인중 신부의 전시가 열린 서소문성지 역사공원에 들러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선생의 작품은 한 차례 채색된 상태로 완전히 멈추었지만 빛과 그림자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고 날갯짓을 하기도 했습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스테인드글라스의 대가 김인중 신부의 전시회 / 사진. © 김현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스테인드글라스의 대가 김인중 신부의 전시회 / 사진. © 김현호
흥미롭게도 김인중 신부의 모든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김인중 신부는 “어떤 선입견, 한계에도 갇히지 말고,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느끼게 하고 싶어서죠. 어떤 사람들은 제 작품을 보고 아무것도 볼 수 없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보면서 행복하다고 해요”라며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습니다. 멈추어 있지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김인중 신부의 작품에 딱 맞는 설명일 듯합니다.

한계가 없는 자유로운 느낌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살아 숨 쉬는 잡상이나 파로리브레처럼, 오늘 저녁엔 오래된 걱정을 모두 놓아두고 가벼운 산책에 나서 보시면 어떨까요? 우연히 멈추어 움직이는 무엇인가를 만나게 될 터이니 말입니다.

김현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