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에 먹 겹겹이 얹어 '산' 완성
가장자리 태워 그을음 만들기도
이강승·캔디스 린 2인전도
전시의 백미는 이강승 '피부'
80세 퀴어 무용가의 동선 담아
캔디스린, 국내 갤러리 첫 전시
갤러리현대 신관서 만나는 ‘산’
김민정은 지난 30여 년간 한지, 먹, 불을 통해 동양철학을 담은 현대적 추상화를 발표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그는 한지 가장자리를 촛불이나 향불로 태우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검은 그을음의 선을 쌓아 하나의 화면을 만든다. 불이라는 우연이 개입한 덕에 결과물은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림을 보고 정서적인 치유를 받았다”고 말하는 관람객이 많은 이유다.
수묵화 느낌이 강한 산 연작과 달리 전시장 1층에 걸린 ‘집’ 연작에서는 다양한 색이 조화를 이룬다. 염색한 색색의 한지를 반듯하게 배열해 완성했다. 작가는 “옷의 지퍼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며 “지퍼를 채웠을 때 안정감과 따뜻함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계적 작가들의 2인전
갤러리현대 구관에서는 이강승과 캔디스 린의 2인전 ‘나 아닌, 내가 아닌, 나를 통해 부는 바람’이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영국 작가 D H 로런스의 시구에서 가져온 문구다. 갤러리 관계자는 “역사에서 소외되고 잊힌 이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전하겠다는 작가들의 의지가 담겼다”고 설명했다.이강승은 지난해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 축제인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한 작가다. 그가 주목하는 ‘잊힌 이들’은 퀴어(성소수자) 예술가와 인권 운동가들. 흑연으로 정교하게 그림을 그리거나 전통 삼베에 금실로 수를 놓는 등 오랜 시간이 걸리는 수작업을 통해 그들의 삶을 애도하고 기렸다. 세련된 미감과 탁월한 완성도 덕분에 현대미술이나 퀴어 문화에 익숙지 않은 관객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함께 전시를 여는 캔디스 린은 미국과 유럽 미술계의 여러 상을 휩쓸며 미술계에서 각광받는 작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예술·건축대학 교수인 그는 국내 갤러리에서 전시를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인종차별과 성차별 등 다양한 사회 모순의 희생자를 재기발랄한 설치작품과 회화로 조명한다. 전시는 10월 5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