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거짓말하지 마! 이럴 때 우리는 농담처럼 말한다. ‘구라’치네!

그런데 일본 오카야마현의 작은 도시 구라시키(倉敷市)는 정말로(?) 거짓말처럼 아름답다.
일본 구라시키 미관지구 / 출처. 구라시키관광 홈페이지
일본 구라시키 미관지구 / 출처. 구라시키관광 홈페이지
미관지구(倉敷美観地区)라 불리는 구시가지에 들어서면, 하얀 벽의 전통 창고들이 운하를 따라 줄지어 서 있고, 물살을 가르는 나룻배와 늘어진 버드나무, 그리고 조용한 골목마다 자리 잡은 소규모 갤러리와 찻집들이 이어진다.
미관지구 운하와 거리 / 사진. © 최영식
미관지구 운하와 거리 / 사진. © 최영식
이곳 구라시키는 한때 쌀과 목화, 기름이 오가던 상업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문화도시로 변모했다.

그 변화를 이끈 단 한 사람, 오하라 마고사부로(大原 孫三郎, 1880~1943)를 기억한다. 성공한 사업가 오하라는 좋은 문화는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믿음을 자신의 땅에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심어낸 사람이었다. 돈이 아닌 예술로 기억되기를 바랐던, 시대를 앞선 문화의 실천가였다.

이런 오하라 마고사부로에게 코지마 토라지로(児島虎次郎, 1881~1929)는 동료를 넘어서, 예술을 함께 꿈꾸던 평생의 친구였다.

오하라는 코지마를 유럽으로 유학 보내며 이렇게 당부했다. “그대의 눈으로 진짜 예술을 골라 일본에 보내주게.” 이 짧은 한마디엔 후원을 넘어선 오하라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코지마는 파리와 런던을 돌며 모네와 마티스, 고갱, 로댕, 시냐크의 작품을 수집했고, 오하라는 그것들을 혼자 간직하지 않았다. 1930년, 그는 그 모든 작품을 시민과 나누기 위해 미술관을 열었다. 수집은 시작이었고, 진짜 목적은 공유였다. 예술은 엘리트의 사유물이 아니라 모두의 삶과 호흡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구라키시의 오하라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차례대로] 오귀스트 로댕의 <칼레의 시민>과 <세례자 요한>(1878) / 사진. © 최영식
[차례대로] 오귀스트 로댕의 <칼레의 시민>과 <세례자 요한>(1878) / 사진. © 최영식
미술관 입구에는 로댕의 청동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정적인 동작 속에서도 단단한 생명력이 전해지는 로댕의 조형감은 미술관의 시작을 강렬하게 알린다.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작품은 르누아르의 <샘 위의 소녀(Woman by Spring)>이다. 오하라가 르누아르에게 직접 제작을 의뢰해 만든 작품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의 여성이 봄의 정취 속에서 관람객을 마주한다. 이 작품은 일본에 서양 회화의 진수를 소개한 상징적인 작품으로, 1951년 제12회 태평양회화전에서 공개된 이후, 일본 미술계에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클로드 모네 <수련>(1906) / 출처. Google Arts & Culture
클로드 모네 <수련>(1906) / 출처. Google Arts & Culture
그 맞은편엔 모네의 <수련(Waterlilies)>이 놓여 있다. 이 작품은 코지마가 유학 시절 직접 모네에게서 구입한 것으로 고령의 모네가 자신이 평생 몰두했던 수련 연작의 정점을 향해 나아가던 시기, 한 달 만에 완성한 것이다. 노년의 모네가 남긴 이 작품은 그의 인생의 응축이며, 작품 속 붓 터치와 색의 흐름은 마치 미관지구를 흐르는 운하처럼 시간과 감정을 실어 나른다.
폴 시냐크 <오버스키의 운하>(1906) / 출처. Google Arts & Culture
폴 시냐크 <오버스키의 운하>(1906) / 출처. Google Arts & Culture
모네의 작품을 지나면 폴 시냐크의 점묘화 <오버스키의 운하(Canal of Overschie)>가 모습을 드러낸다. 시냐크는 점묘법의 창시자인 쇠라와는 다르게, 붓의 방향성과 색의 변화를 더해 한층 감성적이고 생동감 있는 장면을 구성했다. 그의 후기작답게 구름이 흐르는 하늘과 잔잔한 물결이 교차하며 시각의 리듬을 만든다. 시냐크 작품 속에서 정물의 세계를 살아있는 풍경으로 탈바꿈시킨다.

2층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장면들이 펼쳐진다.

고갱의 <즐거운 대지(Delightful Land)>에서 타히티의 여인은 악마의 속삭임에 고개를 돌리고, 손에 들고 있는 꽃 한 송이는 유혹과 결단의 상징처럼 빛난다. 로트렉의 화려한 색채는 강렬하면서도 자유롭고, 보는 이로 하여금 몽마르트르의 밤거리를 상상하게 한다.
엘 그레코 <수태고지>(1590-1603) / 출처. 한경DB
엘 그레코 <수태고지>(1590-1603) / 출처. 한경DB
3관에서는 특별한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엘 그레코의 <수태고지>다. 코지마가 유럽 화랑에서 발견하고 오하라에게 전보를 보내 함께 사들인 작품으로, 고전주의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오하라 컬렉션에 포함된 명작이다. 천사의 출현에 놀라워하는 마리아가 대각선상에 배치돼 있고, 그들 사이를 비둘기가 비행하는 구도는 화면 전체에 약동감을 불어넣는다. 배경의 형태가 되는 빛의 표현과 어우러져 이 중요한 성서의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연출한다.
[좌] 잭슨 폴록 <컷 아웃>(1948) [우] 루치오 폰타나 <공간개념, 기대>(1961) / 출처. 오하라미술관 도록
[좌] 잭슨 폴록 <컷 아웃>(1948) [우] 루치오 폰타나 <공간개념, 기대>(1961) / 출처. 오하라미술관 도록
4관으로 향하면 공간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먼저 보이는 것은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이다. <컷 아웃(Cut Out)>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검정, 흰색,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색이 겹치며 강한 운동감을 표현한다. 특히 눈 중앙이 크게 잘린 듯한 형상은 페인트의 중첩이 만들어낸 농밀한 세계를 파열시키는 시도처럼 보인다.

이어지는 폰타나의 <공간개념, 기대(Spatial Concept, Expectations)>는 전통적인 캔버스 회화를 거부하는 선언이다. 캔버스에 구멍을 뚫는 행위 자체가 회화의 틀을 부수려는 공간주의 예술가의 저항이다. 폰타나의 말처럼 이 작품은 그림을 만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을 열어 보인다.
기시다 류세이 <소녀의 춤>(1924) / 출처. 오하라미술관 도록
기시다 류세이 <소녀의 춤>(1924) / 출처. 오하라미술관 도록
이 전시실의 마지막은 기시다 류세이의 일본 근대 회화가 담당한다. 서양화 기법을 수용하면서도 일본적인 감성과 현실주의를 담아낸 그의 회화는, 서양미술과 일본미술이 한 공간에서 조화를 이루는 이 미술관의 지향을 반영한다.

5관에는 ‘코지마의 집’에 대한 설명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과거 코지마 토라지로가 실제로 거주하던 집은 현재 젊은 작가들을 위한 ARKO(Artist in Residence Kurashiki, Ohara) 프로그램의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18명의 작가가 이곳에서 생활하며 작품을 창작했고, 그 결과물은 다시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ARKO는 예술의 순환과 지역문화의 재생을 상징한다. 오하라미술관의 예술이 지역과 만나고, 다시 지역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통해 ‘현재형 예술공간’으로 자리 잡은 대표적인 사례다.
[좌] 클로드 모네 <건초 더미>(1885) [우]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잔 에뷔데른 초상화>(1919) / 출처. 오하라미술관 홈페이지
[좌] 클로드 모네 <건초 더미>(1885) [우]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잔 에뷔데른 초상화>(1919) / 출처. 오하라미술관 홈페이지
6관에서는 또 다른 만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모네의 <건초 더미(Haystacks)>와 모딜리아니의 <잔 에뷔데른 초상화(Portrait of Jeanne Hebuterne)>, 그리고 쿠사마 야요이의 평면작품이 그것이다.

모네의 <건초 더미>는 수확이 끝난 들판의 정경을 인상주의 색채로 담아낸 작품이며, 모딜리아니의 초상화는 긴 목과 단순화된 선의 미학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좌] 쿠사마 야요이 <No. RED. Z.A>(1960) [우] 츠가미 미유키 <View Cycle ‘26Feb-10Apr, 05: Places>(2005) / 사진. 오하라미술관 도록
[좌] 쿠사마 야요이 <No. RED. Z.A>(1960) [우] 츠가미 미유키 <View Cycle ‘26Feb-10Apr, 05: Places>(2005) / 사진. 오하라미술관 도록
그리고 쿠사마 야요이… 그녀의 호박 조형물로 익숙한 관람객이라면, 이곳에서 만나는 평면 회화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반복되는 점의 리듬과 밀도, 그리고 공간감이 어우러진 평면작품은 쿠사마 야요이의 세계가 단지 호박 조형물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조형의 틀을 넘는 쿠사마 야요이의 회화적 사유는, 오하라미술관에서 마주한 작지만 인상 깊은 발견이자 기쁨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전시실에서 만난 ARKO 작가 츠가미 미유키의 작품은 과거를 품은 이 공간이 현재형 예술로 호흡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마침표였다. 이는 오하라미술관이 과거와 현재를 유기적으로 잇는 살아 있는 예술의 순환 구조 안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나오시마 섬의 지추미술관 / 출처. 지추미술관 홈페이지
나오시마 섬의 지추미술관 / 출처. 지추미술관 홈페이지
이제 오하라미술관을 떠나기 전, 우리는 한 걸음 더 시선을 확장해볼 수 있다. 오하라미술관에서 불과 30킬로미터 떨어진 바다 건너 나오시마에는 또 하나의 문화실험장이 있다.

후쿠다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郞, 1945~). 그는 일본 최대 출판사 베네세 그룹의 회장으로, 예술이 지역의 풍경과 교육,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오랫동안 실천해왔다. 그가 나오시마 섬에 만든 지추미술관과 베네세하우스는 섬 전체를 예술의 무대로 만든 프로젝트이며, 지역 재생과 예술교육, 환경과 공간의 조화라는 철학을 담고 있다.

오하라 마고사부로와 후쿠다케 소이치로. 두 사람은 시대도 다르고 삶의 배경도 다르지만, 예술을 개인의 수집이나 치장용으로 보지 않고, 지역과 시민에게 돌려주려는 같은 열망을 품었다. 한 사람은 1930년대에 구라시키에서, 다른 한 사람은 1990년대에 나오시마에서, 예술을 매개로 공간과 사람, 공동체를 연결한 것이다. 이 두 미술관의 물리적 거리는 30킬로미터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바로 이웃이라 할 수 있다.
오하라미술관 홈페이지에 있는 후원회 모집 안내
오하라미술관 홈페이지에 있는 후원회 모집 안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또 하나의 힘, 바로 후원자들이다. 오하라미술관의 2층 복도에는 기업인, 예술가, 교육자 등 수많은 후원자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 전시돼 있다. 그것은 단순한 기부자 리스트가 아니다. 지역 예술과 세계 예술을 연결하는 가교로서, 후원자들이 어떻게 미술관의 현재를 지탱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억의 벽’이자 ‘문화적 연대의 기록’이다.

이러한 후원자 모델은 한국 미술계에도 큰 질문을 던진다. 단발적 후원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문화 생태계를 위한 후원 구조. 전시회 하나를 위한 일회성 협찬이 아니라, 예술가와 지역, 미술관의 성장에 함께하는 동반자 모델. 특히 기업이 단순한 이미지 홍보 차원이 아니라 문화적 비전을 갖고 예술에 접근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지금 한국에서 더욱 필요한 논의다.

지금 한국에서도 지역 공공 미술관, 기업 메세나, 창작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 중심에 예술의 가치와 시민의 삶을 연결하려는 철학이 존재하는가? 단지 공간을 마련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하라미술관과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보여주는 것은, 예술이 어떻게 지역의 문화자산이 되고, 예술가가 지역과 어떻게 호흡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해답이다.

오하라는 일본 첫 서양화 미술관을 넘어서, 문화적 기업가정신이 어떻게 도시를 변화시키고, 미술관이 어떻게 지역의 심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미술관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름다운 미관지구에서, 오하라 마고사부로의 숨결이 아직도 이어지는 이유다.

최영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