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사람들] 전 세계를 사로잡은 목소리 소프라노 조수미
재능을 타고난 음악 신동
초등학교 4학년이던 조수미(어릴 때 이름은 조수경)는 한 방송국이 주최한 어린이 노래자랑 대회에서 2등을 차지했어요. 그리고 합창단에도 들어가게 됐죠. 조수미는 어려서부터 한두번 들은 노래를 정확히 따라 부르고 연주해 ‘음악 신동’이라고 불렸어요.대회가 끝나고 한 남자가 다가왔어요. “아주 독특하고 귀한 목소리를 가졌구나. 그런데 다른 아이들 소리에 맞추다 보면 너의 개성을 잃어버릴 수 있지. 너는 합창보다 성악이 더 어울리겠다.” 그분은 당시 선화예술중학교에서 노래를 가르치던 음악가 유병무 선생님이었어요. 어려 서부터 하루에 몇 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하며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우던 조수미가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였어요.
방황으로 떠난 유학
조수미는 선화예술중학교과 선화예술고등학교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었어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도 역대 최고점으로 수석 입학했어요.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걷게 된 셈이에요. 하지만 대학에 간 조수미는 친구와 놀면서 공부와 연습을 게을리하기 시작했어요. 학교도 빼먹기 일쑤였죠. 결국 대학교 2학년 때 성적이 꼴찌로 떨어지면서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어요. 그곳에서 조수미는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외롭고 낯선 외국에서 그녀는 노래하고 또 노래했어요. 클래식 음악은 원래 유럽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노래를 잘하려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같은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어요.세계적인 소프라노의 탄생
1985~1986년 조수미는 유럽의 유명 콩쿠르(경연 대회)에서 여섯 차례나 우승했어요. 1986 년 데뷔한 이후 세계적 인기를 얻었죠. 맑으면서도 화려하고, 가사를 서정적으로 전달하는 그녀의 노래는 세계 각지에서 찬사를 받았습니다.라 스칼라 극장(이탈리아 밀라노), 코벤트 가든 (영국 런던), 빈 국립극장(오스트리아 빈), 바스티유 극장(프랑스 파리), 메트로폴리탄 극장(미국 뉴욕) 등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에 모두 선 최초의 동양인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조수미는 온 마음을 다해 최고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공연이 끝나도 놀지 않고, 연습에 집중했어요. 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 했고,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고 찬 음료도 마시지 않았대요.
음악으로 사랑과 슬픔을 나누다
2006년 4월 4일, 프랑스 파리의 샤틀레 극장에서 조수미가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을 할 때 일입니다. 20곡이 넘는 노래와 앙코르까지 모두 부른 뒤 그녀는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오늘 아침 한국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여러분의 사랑을 받는 걸 하늘에서 기뻐하실 거예요.” 미리 공연 표를 예매한 관객들, TV 방송국과의 촬영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슬픔을 억누르고 공연했던 거예요. 그녀는 마지막으로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부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관중도 함께 울었어요.
그녀는 오페라뿐 아니라 한국 가곡·가요·팝· 드라마 주제가 등 많은 노래를 부르고, 음반으로 녹음했어요. 자신의 목소리와 음악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선사하기 위해서예요. 올해 프랑스에선 자신의 이름을 딴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를 처음 개최했습니다. 젊은 성악가 후배를 육성하고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해요.
40년 동안 세계 최고의 음악가로 활동할 수 있는 건 재능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음악이라는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한 그녀의 의지야말로 가장 큰 성공 비결이 아닐까요?
by 문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