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마저 열연하는 메소드 연기의 끝판왕 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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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여배우 열전
궁시렁 연기의 최고봉
삶의 굴곡을 담은 연기력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진정성
'기생충'부터 '용길이네 곱창집'까지
앞으로 더 기대되는 배우
궁시렁 연기의 최고봉
삶의 굴곡을 담은 연기력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진정성
'기생충'부터 '용길이네 곱창집'까지
앞으로 더 기대되는 배우
한국에서 궁시렁 연기의 최고봉은 단연 이 여자, 이정은이다. 그냥 툴툴대는 스타일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궁시렁댈 때는 입을 거의 벌리지 않는다. 대체로 낮은 계급의 사람들, 함부로 불만을 표시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 그럼에도 상대의 갑질이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때 뭔가를 얘기하고 싶을 때는 입술에서 바람 소리가 나올 정도로 뭐라 뭐라 중얼거린다. 이럴 때 궁시렁댄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정은만큼 이런 연기를 잘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럴 때의 표정과 흘깃거리는 눈, 실룩대는 뺨 등등 모두가 종합예술이다.
사람이 궁시렁댈 때는 대체로 등을 돌리고 있기 마련인데 이정은의 ‘등판’은 중얼대는 소리가 잘 안 들리더라도 이 여자가 지금 무슨 불만의 표시를 하려는지 충분히 알아듣게 만든다. 이런 등판, 이런 등짝도 여배우 중에 이정은이 단연 압권이다. 이정은은 연기파 배우로서 천부적인 몸매이자 외모를 지닌 셈이다.
사람들은 이정은을 ‘동백꽃 필 무렵’이나 ‘우리들의 블루스’ 같은 드라마로 얘기할 것이다. 이의가 없다. 이정은은 한국과 같은 지독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실로 사연이 많은 여자의 굴곡진 인생을 연기하는 최고봉의 배우이다. 억척같은 여자. 눈물 많은 여자. 툭하면 대거리를 붙고, 심지어 머리채를 잡거나, 주먹질 발길까지 서슴지 않을 여자인데, 그게 알고 보면 다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을 때가 거의 태반이다. 혼자서 생선가게 장사를 하면서 동생들을 대학 교육 시키다 얼굴 주름이 바글바글해지고 손마디도 다 굵어져 버린 여자의 마음속에는 칼질을 하는 내내 여러 단상과 잔상들이 오갈 것이다. 시장 거리의 다른 장사치들의 드잡이 소리도 귓가에 들릴 것이다(‘우리들의 블루스’). 그녀에게 삶은, 아주 어릴 때부터, 전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딸을 위해 딸을 떠나거나 버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한번도 누구에게 속시원히 얘기를 못했을 것이다(‘동백꽃 필 무렵’). 그래서 늘 궁시렁궁시렁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속 시원하게 제대로 한번 울지도 못한다. 참는 울음의 소리를 내기 일쑤다. '욱', '쿡', '꺽' 소리를 낸다. 이정은은 그럴 때, 굵은 닭똥 같은 눈물을 소리 없이 줄줄 흘리는, 고난도의 기술을 보인다.
이정은이 TV드라마에서 보여준 여성상은 못난 자식들이 꼭 돌아가시고 나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어머니상이다. 살아생전 갖은 못된 말과 못된 짓을 했던 자식들이 꼭 그런 어머니가 보고 싶다며 나중에 징징댄다. 대체로 자식들이 기억하는 ‘이정은 표 엄마’는 헝클어진 머리에, 주름진 얼굴에, 더듬거리는 말투에, 남들 앞에서 쭈뼜거리는 태도에, 돈 아낀다며 궁색하게 구는 데다, 더운밥 대신 찬밥이 좋다 하기 일쑤고, 식당에서 자식들이 창피하다며 싫어한다 해도 남은 음식은 꼭 주섬주섬 싸가는 늙은 여자이다. 이정은은 꼭 그런 이미지를 닮아있다. 이정은이 TV드라마에서 이런저런 연기를 할 때마다 시청자들, 대중들이 그녀에게 감탄하는 것은 사실, 그녀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죄의식과 죄책감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생전의 어머니에게 못했던 미안함을 이정은의 드라마 연기를 보면서 눈물로 대체시키려 하는 셈이다. 그것도 비겁한 노릇이지만 이정은이 너무 연기를 잘하니 어쩔 수가 없다. 이정은의 연기로 깨닫는 진리는, 자식이란 늘 철이 없는 법이라는 것이다. 철든 자식이라는 말은 형식 논리의 모순이다. 자식이 철이 들면 이미 더 이상 자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정은의 영화에서 스스로가 최고로 내세우는 것은 물론 ‘기생충’일 것이다. 국내에서 천만이 넘는 관객이 봤고, 미국 아카데미 상까지 탔다. ‘기생충’에서 이정은은 ‘지하실 여자’로 나온다. 밤만 되면 서재의 비밀 문을 열고 나와 살금살금 먹을 것을 뒤져서는 그걸 가지고 자신의 남편인 지하실 남자를 먹여 살리는 여자. 충격적인 캐릭터였다. 영화의 마지막 비극의 피날레에서 이정은의 최후 역시 참혹했다. ‘기생충’에서 이정은은 온몸을 다해 연기를 한다. 이정은은 늘 투신하듯 모든 작품에서 영혼의 연기를 펼친다.
‘기생충’은 너무 유명한 작품이니 그렇다 치고, 그녀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뛰어난 것 중 하나가 ‘내가 죽던 날’이다. 이정은은 극 중 배역 이름이 이럴 때가 많은데 ‘내가 죽던 날’에서도 어김없이 순천댁이다. 순천댁은 극 중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내가 죽던 날’이 펼치는 모든 미스터리의 클루(clue : 단서, 실마리)를 쥐고 있는 존재다. 주인공 형사 반장 현수(김혜수)는 외딴섬 절벽에 유서를 남기고 행방이 묘연해진 부잣집 딸아이 세진(노정의)의 실종사건을 추적한다. 세진의 마지막 모습은 순천댁이 목격했다고 진술한 상태다. 현수는 고립된 섬마을 폐가에 머물면서 주변을 탐문하고 다닌다. 현수는 순천댁 집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죽던 날’을 보고 있으면 이 순천댁이 범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녀는 음습한 표정에 말이 없다. 이 여인네에게는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불길한 기운. 공포스럽다. 순천댁에게는 적어도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다. 세진의 어릴 때 유모였을까, 세진의 집안, 아이의 탐욕스러운 아버지와 망나니 오빠에게 무슨 원한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죽던 날’의 이정은을 보고 있으면 저런 이미지를 어디서 봤는데, 봤는데 하는, 가물 가물의 심정이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되는데 ‘미저리’의 캐시 베이츠 이미지가 그것이다. ‘미저리’에서 남자를 가둬두고 다리 한쪽 한쪽을 차례로 부러뜨리는 여자, 애니 윌킨스 역의 캐시 베이츠. 순천댁은 세진을 가둬두고 사육을 하는 중이 아닐까. 이정은은 그렇게 한국의 캐시 베이츠로 등극한다.
닮은 꼴 배우를 찾으라면 조금 더 있다. 이정은은 연기 면에서 메릴 스트립을 따라간다.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살인 면허 첩보요원 더블오세븐(007)의 상관이자 영국 첩보기관 MI6의 국장인 M을 닮아 갈 것이다. 주디 덴치 같이 될 것이라는 얘기이다. 이런 비유가 이정은 개인에게 어떻게 들리지는 모르겠다. 연기파 여배우로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는 평가의 한 축으로 들어주면 좋겠다.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정은은 김상호와 함께 일본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에 나왔다. 1960년대가 배경인 작품이고 오사카에서 살아가는 이민1세대 용길이와 영순이 부부의 얘기다. 용길이는 태평양전쟁에서 한 팔을 잃었고 일본인 전처와의 사이에서 두 딸을 가졌는데(시즈카와 리카) 영순이는 영순이 대로 일본인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미카라는 이름의 딸이 있었고 둘은 그런 상태에서 재혼한 후 늦둥이 아들인 토키오를 낳았다. 그러니까 3남 1녀를 두고 한국식 곱창집을 해서 먹고 살아간다. 첫째 딸은 착하고 둘째 딸은 우여곡절 끝에 한국 남자하고 결혼하지만 순탄치 않고, 셋째는 유부남을 사귀고 있어서 난리법석이며 애지중지하는 아들은 학교에서 교포2세라는 이유로 학교폭력을 당하는 중이다.
곱창집을 하며 먹고 살기에 정신이 없는 영순, 곧 이정은은 자신을 가꾸는 데는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늘 머리를 빠글빠글하게 볶고 팔 하나 없는 남편 챙기랴 애들의 끼리끼리 싸움과 갈등을 지켜보고 한숨쉬랴, 하루하루 주름이 늘어 간다. 이정은은 기른 정이든 낳은 정이든 한결같이 자식을 바라보고 챙기는 우악스러운 한국 엄마 역을 여기서도 척척 해낸다. 일본문화, 재일동포들의 이주민 문화가 워낙 생경하게 전개되느라 한국 개봉 당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정은의 연기, 김상호와의 앙상블 연기만큼은 눈에 띄게 두드러진 작품이었다. 언젠가 재평가되거나 재해석될 만한 작품이다.
이정은은 출연 영화만 조·단역 포함, 36편에 이른다. 드라마는 거의 50편이다. 전쟁과 굴곡의 정치 사회적 풍파를 이겨낸, 끈덕진 생명력을 가진 여자의 뒷모습을 지녔지만, 때론 귀여운 역할도 한다. 이준익 감독의 2019년 영화 ‘자산어보’에서 이정은은 흑산도(자산)의 허름한 아낙네로 나와 귀향 온 정약전의 수발을 든다. 정약전의 꼬질꼬질한 ‘선비스러움’, 그 까탈스러움에 여지없이 궁시렁대다가도 둘이 언제 저렇게 됐대, 하는 놀라움을 줄 만큼 어느 날 정약전의 애를 안은 채 그의 옆에서 살며시 기대어 앉는 뒷모습을 연기한다. 이정은의 ‘등짝’은 이때만큼은 귀엽다. 그것도 아주.
이정은만큼 30년이 보장된 연기자도 드물다. 그녀는 40대 초반 나이 때에도 5, 60대 역할을 했다. 이런 연기자들은 노년에는 그냥 내추럴하게 노인 연기를 하면 된다. 더 숙성돼 있을 것이다. ‘전원일기’ 때의 김혜자를 생각하면 된다. 이정은은 제2의 김혜자이다. 그녀는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며 주디 덴치이다. 그 이상의, 찬사의 수식어는 없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