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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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공공투자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논의하는 시민대표단이 표결에 부칠 의제에 국민연금을 공공임대주택, 어린이집, 노인시설 등에 투자하는 안을 포함하면서다. 국민연금의 공공투자는 복지 확대를 중시하는 진보 진영의 숙원으로 꼽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회적 부조인 국민연금이 정치권의 ‘쌈짓돈’처럼 활용돼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국회 등에 따르면 공론화위는 13일부터 2주간 주말마다 열리는 500명의 시민대표단 숙의토론회 의제에 ‘국민연금이 공공투자를 해야 하는지’를 포함시켰다. 현재 국채 투자로만 제한한 국민연금의 공공 목적 투자 대상을 공공임대주택,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 노인요양시설 등으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국민연금의 공공투자 확대는 참여연대와 노동조합 등 진보 단체의 오랜 과제로 여겨진다. 2024년 1월 말 기준 1049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 적립금을 활용해 임대주택 등 공공 인프라를 확충함으로써 출산율 및 고용률 등을 높일 수 있고, 기금 재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국민연금 공공투자, 수익성·안정성 운용원칙 위배 논란…文정부도 포기
미래 세대 위한 투자라지만 수익 못내면 부담만 키우는 꼴

국민연금 '정치권 쌈짓돈' 되나
국민연금의 공공투자 확대 방안은 2016년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에 포함되면서 한층 구체화됐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보육시설, 임대주택 등과 관련된 국공채를 발행하면 국민연금이 공공투자 차원에서 사들이고, 정부는 최소 수익률을 보장하는 형태로 10년간 10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공약은 최종적으로 성사되지 않았다. 국민의 노후 자금을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은 정부 사업에 동원하는 것은 국민연금기금이 운용의 제1, 2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는 ‘수익성’과 ‘안정성’에 위배된다며 기금운용 전문가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투자는 결국 정부의 쌈짓돈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컸다.

공공투자를 의제로 추진한 공론화위원회 내 진보 계열 학자들은 ‘세대 간 형평성’을 공공투자를 확대해야 하는 이유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론화위가 제시한 두 가지 모수개혁안 가운데 기금 고갈 시점을 더 늦출 수 있는 ‘더 내고 그대로 받는 안’(보험료율 12%, 소득대체율 40%)을 채택하더라도 국민연금은 올해 출생아가 40대에 접어드는 2063년이면 고갈된다. 고갈 직후 국민연금이 유지되려면 가입자들이 내는 보험료율이 31.6%로 높아져야 한다. 이처럼 잠재적 부담이 큰 미래 세대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국민연금이 이들의 주거와 보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일반 시민에겐 언뜻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당장 세금을 더 걷거나 해외에서 돈을 빌려 복지 인프라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발행한 국공채를 국민연금이 매입하고 정부는 국채 수준의 수익률을 보장하니 시민도, 국민연금도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주장이다. 국민연금은 전체 자산의 30.7%인 322조원가량을 한국 국채로 채우고 있다.

하지만 공공투자가 충분한 수익률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한 재정 부담을 미래 세대가 떠안는 것은 동일하다는 반박이 나온다. 어린이집이나 노인요양시설은 공공목적으로 운영 시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인구 감소로 부동산 경기가 장기 침체 국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임대주택 투자 수익률을 좌우하는 매각 차익 기대도 과거보다 줄어들었다.

한 전직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정부가 약속한 수익률을 내지 못하면 결국 그 빚은 세금이나 국채 발행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며 “기금을 끌어쓴 혜택은 현세대가 누리고 재정 부담은 미래 세대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