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016년 미국 전자장치업체 하만 인수 이후 8년 동안 멈췄던 조(兆) 단위 인수합병(M&A)을 재개하기 위해 몸을 만들고 있다. 작년 말 조직개편을 통해 신사업 발굴과 M&A 등을 담당하는 미래사업기획단을 발족한 데 이어 별도 연구조직에 있던 M&A 분야 ‘키맨’도 본사도 불러들였다. 업계에선 삼성이 인공지능(AI), 전장, 가전, 무선통신,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분야를 중심으로 실력 있는 해외 기업 인수에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재시동 거는 삼성 M&A

돌아온 'M&A 키맨'…삼성, 빅딜 시동 걸었다
11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전기·물산·SDI가 공동 출자한 연구조직인 삼성글로벌리서치에서 미래산업연구본부장으로 일하던 안중현 사장이 최근 삼성전자 경영지원실로 자리를 옮겼다. 2022년 삼성전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에서 삼성글로벌리서치로 이동한 지 2년 만에 삼성전자의 경영전략과 M&A 업무를 담당하는 현업 부서로 돌아온 것이다.

안 사장은 삼성의 주요 M&A 실무를 담당한 핵심인력으로 꼽힌다. 삼성의 최대 규모 M&A였던 하만(9조2000억원) 인수와 2015년 삼성의 화학·방위산업 사업을 한화에 매각하는 작업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사장의 삼성전자 복귀에 대해 “제자리를 찾아간 것”이란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삼성전자는 작년 말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대표이사 직속으로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했다. 이 조직 역시 신사업 발굴과 함께 유망 기업에 대한 M&A도 담당한다. 삼성전자의 전체적인 사업을 조율하고 미래 전략을 짜는 사업지원 TF를 중심으로 경영지원실과 미래사업기획단이 머리를 맞대 M&A 타깃을 정하고 실무를 진행하는 구조를 짠 것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본격적인 M&A를 앞두고 ‘몸 만들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메타 등 미국 빅테크만의 전쟁터가 된 ‘AI 패권’ 경쟁에 끼어들려면 M&A가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어서다. 이들 기업도 분야별 실력자들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AI 실력을 단번에 끌어올렸다. 반면 삼성은 국정농단 사태로 M&A 추진 동력을 잃으면서 지난 8~9년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2020년 미국 5세대(5G) 이동통신 업체인 텔레월드솔루션스 등을 인수했지만 이름값 하는 기업은 인수 리스트에 없었다.

○‘빅딜’ 나올까

산업계는 삼성전자가 가장 눈독을 들이는 분야로 AI와 로봇, 전장 분야를 꼽는다. 반도체는 각국이 ‘국가전략산업’으로 보호해 인수가 쉽지 않아서다. 삼성은 그동안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과 차량용 반도체 기업인 인피니언, NXP 등의 인수 후보로 거론됐지만 하나도 성사되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현재 들여다보는 기업은 알려진 것만 2개다. 하나는 존슨컨트롤스의 냉난방공조(HVAC) 사업부. 탈탄소 바람을 타고 전력 효율이 높은 공조기 수요가 늘어나는 걸 감안해 인수 실익을 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가격은 60억달러(약 8조2000억원)로 추정된다. 두 번째는 글로벌 자동차 부품 업체인 콘티넨탈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과 차량용 디스플레이 사업. 이 회사를 손에 넣으면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장 등 삼성이 잘하는 분야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보고 M&A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M&A 키맨이 자리를 옮긴 데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도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M&A와 관련해) 많은 사항이 진척됐다’고 말한 만큼 머지않은 시기에 빅딜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