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醫政) 갈등이 더 복잡하게 꼬이고 있다. 정부가 의대 증원 2000명 수치까지 협상 여지가 있다며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데도 전공의 상당수는 ‘전면 백지화’를 고집하고 있어서다. 전공의 대표가 대통령과 대화에 나섰다는 이유만으로 ‘내부의 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등 의료계와 전공의 내부 분열도 커지는 양상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환자를 생각해서라도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尹-朴 합의했더라도 안 돌아가”

대통령실은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의 만남 직후 “대통령은 향후 의사 증원을 포함해 의료개혁에 관해 의료계와 논의할 때 전공의들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와 전공의가 막 대화의 물꼬를 튼 만큼 유연하게 원칙을 지키며 대화하겠다는 의지도 나타냈다. 의대 증원 조정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전공의와 의료계의 반응은 달랐다. 박 위원장에게 “왜 대화에 나섰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부가 ‘2000명 의대 정원 확대’와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전면 백지화하지 않으면 대화를 시작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박 위원장은 “(전공의) 요구안을 재차 강조하는 자리였다”고 해명했지만 전공의들 사이에선 박 위원장 탄핵에 동의해달라는 성명서까지 돌았다. 박 위원장이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대전협에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회의 내용도 공식적으로 공유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박 위원장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수도권 병원을 사직한 한 전공의는 “의견 수렴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대표성 자체를 인정할 수 없는 자리였다”며 “박 위원장이 대화가 아니라 합의를 하고 나왔다고 했더라도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임현택 차기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자도 박 위원장을 ‘내부의 적’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몇몇 내부의 적은 외부의 거대한 적보다 나를 더 어렵게 만든다”고 적었다. 임 차기 회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는 “(대통령과의 대화는) 여러 번 갈 필요가 없는 자리”라며 “잘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하다고 사진 찍으러 가는 자리”라고 했다.

○의료계 내부서 자성 목소리

의료계 내부에서도 전공의와 의협에 대한 비판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필수적인데 전공의와 의협이 고집을 꺾지 않고 있어서다. 한 빅5 병원 의대 교수는 “(전공의들이) 원하는 것을 전부 얻을 수 없더라도 대화에 나서 협상해야 한다”며 “모든 우선순위에 뒤처져 있는 환자들 생각도 해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의대 교수는 “전공의들이 대안 없이 비판만 하고 있다”며 “전국의대교수협의회도, 의협도 본인들을 대표할 수 없다고 하면서 대전협의 대표성까지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면 대화에 나설 수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도 5일 입장문을 내고 정부와 전공의 양측이 대화를 이어나갈 것을 촉구했다. 대통령과의 만남 직후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고 입장을 밝힌 박 위원장도 질타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장기화하고 있는 진료 공백으로 얼마나 많은 환자가 죽어갈지 모른다”며 “정부와 의사단체들은 대화를 이어가면서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최우선 목표로 국민 생명을 살리는 실질적 해법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공의와의 대화가)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않겠냐”며 “정부는 진정성을 갖고 대화 노력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