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이탈 일주일…다른 지역 병원 수소문하다 길바닥서 시간 허비
대체 인력들, 병원서 숙식하며 외래진료·당직 빈도 늘어 피로 누적
"전임의마저 나가면 지방 의료 붕괴"…정부 "전공의, 29일까지 복귀하라"

정부의 의대 증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대거 이탈한 지 일주일째를 맞은 26일 의료현장에서는 이들의 공백을 메우려는 인력의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주말 사이 이송이 지연된 80대 심정지 환자가 결국 사망하는 사례까지 발생하는가 하면 병원 이송에만 2시간가량 걸리는 사례도 발생하는 등 환자와 가족들의 불편과 피해도 쌓여가고 있다.

의대 교수들이 중재에 나선 가운데 정부가 이날 전공의들의 복귀 마지노선을 이달 말일인 '29일'로 못 박으면서 사흘 안에 대립 국면에서 화해·해결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의료현장 '번 아웃'…이송지연 수십건에 심정지 환자 '뺑뺑이'도(종합)
◇ '병원 찾아 삼만리' 언제까지…심정지 환자 사망 사례도
대전에서는 주말 사이 80대 심정지 환자가 응급실 이송 지연을 겪다가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지난 23일 정오께 의식 장애를 겪던 80대 여성 A씨는 심정지 상태로 구급차에 실려 갔다.

그러나 병상 없음, 전문의·의료진 부재, 중환자 진료 불가 등 사유로 병원 7곳에서 수용 불가 통보를 받았다.

53분 만에야 대전 한 대학병원(3차 의료기관)에 도착한 후 A씨는 사망 판정을 받았다.

대전시 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20일부터 이날 오전 6시까지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로 인한 구급대 지연 이송 건수는 모두 23건으로 집계됐다.

이날 오전 1시께에 40대 남성이 경련을 일으켜 구급차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의료진 파업 등 사유로 병원 8곳으로부터 수용 불가를 통보받은 뒤 37분 만에야 한 대학병원에 이송됐고, 전날에는 30대 외국인 여성이 복통과 하혈 등의 증세로 구급차로 병원을 찾았으나 병원 14곳에서 거부당해 3시간 만에야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지난 24일에는 혈뇨와 옆구리 통증, 고열 등 증세를 호소한 70대 여성이 병원 12곳에서 수용 불가를 통보받자 1시간 만에 결국 자차를 이용해 서울 소재 병원으로 간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에서도 현재까지 이송 지연 건수는 42건이 발생했다.

이 가운데 6건은 부산에서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해 다른 시도로 이송됐다.

이송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 경우는 2시간가량이다.

지난 21일 오후 4시 20분께 부산 부산진구에서 다리를 다친 70대 여성은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다가 결국 경남 창원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소방당국은 언제든 이송 지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상황을 면밀히 다른 지역 살피는 한편 의료 현장의 혼란을 고려해 비응급 상황 시 119 신고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의료현장 '번 아웃'…이송지연 수십건에 심정지 환자 '뺑뺑이'도(종합)
◇ 전공의 공백 메우기도 한계…'번 아웃' 호소하는 의료현장
환자들의 불편 사례가 쌓여가는 만큼 현장에 남은 의료진의 체력 역시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이날 오전 9시께 경기 의정부시 금오동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응급실에는 인턴이나 전공의 대신 반백의 교수가 환자를 맞았다.

병원 관계자는 "응급의학과 교수가 20년 전으로 돌아가 수련의 과정 업무를 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때아닌 '땜질' 근무하게 된 교수들의 피로도는 점점 쌓여 가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나이 지긋한 교수들을 맞닥뜨린 구급대원들은 "교수들이 전공의 역할까지 하는 상황이라 그들의 피곤함이 피부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전체 의사 930여 명 중 192명에 해당하는 전공의 상당수가 사직서를 낸 분당서울대병원은 전문의들이 전공의를 대신해 당직 근무에 투입되면서 정형외과 등 주요 진료과의 신규 외래 진료는 아예 불가한 상태다.

분당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전공의의 집단 사직 사태가 점차 길어지면서 이들을 대신해 근무 중인 전문의, 전담 간호사 등의 피로도가 점차 커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충북대병원 응급실과 도내 유일의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선 이탈한 전공의 자리를 전문의 7명이 3∼4일에 한 번꼴로 당직을 서가면서 채우고 있다.

충남 천안지역 대학병원들에서도 교수들이 각 병동에서 숙식하며 입원환자와 외래환자를 돌봐 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전남대병원의 경우 일부 중환자실 전문의들이 피로감에 '번 아웃'을 호소해, 이탈 전공의 일부가 환자를 보살피기 위해 복귀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남 창원 한마음병원은 인턴 4명이 사직해 의료공백이 애초 크지 않았으나 전공의 이탈사태가 수일째 이어지며 주변 지역 병원에서 받지 못한 환자들이 몰려 응급실 등 담당 의사들 업무량이 많아졌다.

한마음병원 관계자는 "특히 응급 파트에서 진료 담당 의사의 고충이 많은 상황"이라며 "이 밖에 중증질환자 비중도 높아지는 등 전공의 사직 여파가 서서히 생기는 추세"라고 말했다.

의료현장 '번 아웃'…이송지연 수십건에 심정지 환자 '뺑뺑이'도(종합)
◇ 인턴·전임의마저 이탈에 "지방 의료 무너질 것" 위기감 고조
전공의 이탈뿐만 아니라 전공의 수련을 위해 병원으로 와야 할 신규 인턴들의 임용 포기, 전공의의 자리를 메우고 있는 전임의들의 재임용 포기 마저 속출하면서 의료현장의 위기감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거점국립대인 전남대병원 A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전공의의 공백을 메워오던 전임의 절반이 3월부터 근로계약 종료로 추가로 이탈하면 사실상 병원 운영이 마비된다"고 밝혔다.

사실상 전임의 100여명이 전공의 약 300명의 공백을 모두 메우고 있는 상황인데, 3월부터는 병원의 버팀목이었던 전임의 절반가량이 추가 이탈할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전공의 이탈 사태로 수술은 30%, 일반병실 가동률은 50%가량 평소 대비 감소했는데, 전공의 공백을 메우던 전임의가 절반가량 빠져나가게 되면 이마저도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에 부닥친다.

A 교수는 "전공의 이탈로 인한 비상 진료는 어렵게 유지하고 있지만, 전임의 절반이 빠져나가게 되면 비상 진료 방안을 수립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며 "의료진 숫자가 많은 수도권 '빅5' 병원보다 의료여건이 열악한 지방 상급종합병원이 더 상황이 힘들어 먼저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와 의사들이 서로 강 대 강으로 맞붙어서는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서로 협의에 나서야 한다"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사태가 악화 일로를 걷는 가운데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복귀 마지노선을 29일로 제시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본부장 국무총리) 회의를 주재하며 집단행동 중인 전공의들에게 "지금 상황의 엄중함을 직시하고 마지막으로 호소한다"며 "29일까지 여러분들이 떠났던 병원으로 돌아온다면 지나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솔 천경환 강수환 백나용 나보배 박철홍 박세진 홍현기 박성제 장지현 정종호 박정헌 박주영 차근호 이성민 박영서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