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들 애증하는 '나만의 주식'이 왜 없을까요. 놓고 싶어도 놓지 못하고, 팔았어도 기웃거리게 되는 그런 주식 말입니다. 내 인생을 망치기도, 내 인생을 살리기도 하는 그런 주식. 사람들은 어떻게 하다가 '내 인생 종목'을 만나게 됐는지 [노정동의 어쩌다 투자자]에서 '첫 만남',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들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아래 기자페이지 구독을 눌러주세요. [편집자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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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위기였던 우리 부부 HLB(에이치엘비) 덕분에 이제는 아이 영어유치원까지 보냅니다."

인천에 거주하는 한 40대 제약회사 영업사원은 지난 5년간 보유한 항암 신약 개발기업 HLB 주식 덕분에 인생이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회 생활 초기 주식 리딩방에 발을 잘못 담갔다가 신혼집 준비 자금의 80%를 날려 이혼 직전까지 갔었다"며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부모님께 손을 벌려 아내 몰래 3000만원을 '몰빵(분산하지 않고 한 종목에 몰아서 투자)'했던 주식이 HLB"라고 떠올렸습니다.

그가 벼랑 끝에선 인생에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고른 주식이 왜 HLB였을까요. 신약 개발 기업 만큼 주가 등락 폭이 큰 종목이 많지 않아서입니다. 그는 "5년 간의 익절과 급락시 재투자를 거듭한 끝에 원금의 10배가 넘는 평가이익을 올린 상태"라고 했습니다.

투자자 생활의 시작은 돌이켜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합니다. 2017년 주식리딩방을 통해 추천받은 비트코인 관련주, 줄기세포 치료제 관련주 등으로 큰 실패를 본 그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 테마주에 '올인'했다가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가뜩이나 아내는 남편이 주식 투자를 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부부간의 신뢰에 금이 갔다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부모님께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더니 과거 대기업에 다니셨던 아버지가 보유하고 있던 우리사주를 처분해 생활자금을 마련해주셨다고 합니다. 그는 "부모님과 아내에게 절대 주식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그는 2019년 관심종목에 넣어두었던 HLB 거래량이 폭발하기 시작하면서 해당 종목을 눈여겨보기 시작했습니다. 표적항암제인 '리보세라닙'이 글로벌 임상 3상에서 실패하자 주가가 30% 가까이 폭락했던 시기였습니다. 이 투자자는 "주식공부를 같이 하던 동아리 지인들과 내린 결론은 이대로 끝이 아니라 성장통으로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HLB(에이치엘비) 주봉 차트. /키움증권
HLB(에이치엘비) 주봉 차트. /키움증권
5년 전만 해도 HLB의 리보세라닙은 글로벌 임상에서 1차 목표치도 도달하지 못하는 등 '모멘텀'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진양곤 회장이 리보세라닙 글로벌 임상 3상 결과 발표를 앞두고 돌연 사퇴, 그리고 3개월 만에 복귀를 하는 등 알 수 없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2021년에는 '임상 결과 허위 공시 의혹' 등으로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자 시장에선 '선박회사'로 출발한 HLB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 아니냐는 멸시를 받기도 했습니다. HLB는 2009년 리보세라닙을 연구하던 미국의 LSK바이오(현 엘레바)에 투자하기 전 울산의 한 외진 바닷가에서 구명정을 만들던 회사였기 때문입니다.

제약업계에 종사자였던 그만이 알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을까요. 그는 "리딩방에서의 실패로 얻은 교훈은 제약주의 경우 경영진조차도 신약 허가가 이뤄질지 예측하기 어려워 개미(개인 투자자)들이 투자를 장기간 이어가는데 확신이 없다는 것"이라며 "악재가 발생하더라도 주주들 앞에서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최대주주의 모습에 투자를 시작하고 장기간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진양곤 HLB그룹 회장. /HLB그룹 제공
진양곤 HLB그룹 회장. /HLB그룹 제공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HLB는 지난 8일 전일 대비 2900원(3.83%) 떨어진 7만2800원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HLB는 올해 들어서만 48%가 오르는 등 주가가 '불기둥'을 세우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연휴를 앞두고 일부 차익실현 매물이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HLB을 향한 모든 관심은 오는 5월로 예정된 '리보세라닙'과 중국 항서제약의 '캄렐리주맙' 병용투여에 대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에 쏠려 있습니다. HLB는 이 요법으로 FDA 1차 간암 치료제 허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국 제약사 제품과의 '병용투여' 방식인 만큼 미국 FDA의 중국 신약에 대한 '신뢰'도 중요합니다.

HLB의 간암 신약이 승인될 경우 이 분야 글로벌 9호 신약이자 한국 제약·바이오 120년 역사상 첫 글로벌 항암제가 탄생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HLB의 리보세라닙에 대한 첫 투자 이후 16년 만의 일입니다.

HLB는 리보세라닙이 2027년 간암치료제 시장에서 점유율 50%를 차지하고, 연매출 2조4000억원, 영업이익 2조원을 가져다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리보세라닙은 경구용 합성신약(화학물 배합 신약)으로, 원가율이 매출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수익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오병용 한양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미 FDA가 최초로 중국기업이 개발한 PD-1 항체 '록토르지'를 허가하면서 중국 신약의 허가 기대감도 더 커졌다"며 "리보세라닙과 캄렐리주맙은 이미 중국에서만 수천억원 이상 팔리고 있는 만큼 글로벌 신약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을지 기대감이 무르익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HLB는 FDA 허가와 더불어 유가증권시장으로의 이전상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HLB는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코스닥시장 조건부 상장 폐지 및 유가증권시장 이전 상장 승인의 안건이 가결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HLB는 FDA로부터 신약 허가를 받은 뒤 본격적인 이전 상장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투자자는 "이미 HLB를 통해 실현한 수익으로 평생 꿈이었던 내 집 마련과 자녀 영어 유치원 보내기에 성공했다"며 "신약 허가를 받던 받지 못하던 계속 주주로 남아 국내 기업의 글로벌 1호 항암제 탄생을 기다리겠다"고 말했습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