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조건 등 실질적 결정하는 지위…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
택배노조 "역사적 판결, 즉시 교섭 나서야"…CJ대한통운 "상고할 것"
항소심도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 사용자…단체교섭 응해야"(종합2보)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과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이 항소심에서도 유지됐다.

택배기사를 직접 고용한 것은 아니지만, 원청인 CJ대한통운이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작업환경 개선이나 노동시간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택배기사들과의 단체교섭에 직접 응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고법 행정6-3부(홍성욱 황의동 위광하 부장판사)는 24일 CJ대한통운이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라는 재심판정을 취소하라"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을 1심처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는 근로조건 등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포함한다"며 "단체교섭이 근로계약관계 당사자와의 사이에서만 이뤄져야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원고가 사용자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발생하는 구체적 의무는 교섭에 성실하게 응하는 것일 뿐 노조의 요구대로 단체협약을 체결할 의무까지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다"며 "단체교섭이 원고의 기업활동의 자유 등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CJ대한통운이 집배점에 집배송 수수료, 상하차 비용 등을 지원하고 간선차량 수, 출발·도착시간, 당일배송 의무 여부 등 배송 관련 주요 요인에 대해 지배·결정 권한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교섭 의무가 배제된다고 볼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특수고용직인 택배기사들로 구성된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은 2020년 3월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CJ대한통운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택배노조는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냈고 지노위는 CJ대한통운의 손을 들어줬지만, 중앙노동위는 재심에서 이를 뒤집어 부당노동행위가 맞다고 판정했다.

CJ대한통운은 이 판정에 불복해 2021년 7월 행정소송을 냈지만, 1심인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월 "원고가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한 중노위의 재심 판정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CJ대한통운은 1심에서 "집배점 택배기사들과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를 맺지 않아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 의무가 있는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고, 따라서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노동조합법 제81조 1항 3호는 사용자가 노조의 단체교섭을 이유 없이 거부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정하는데, 기존 대법원 판례상 사용자는 '근로자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을 맺은 자'를 뜻하기 때문에 교섭 거부가 부당하지 않다는 항변이었다.

하지만 1심은 CJ대한통운이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기본적인 노동 조건에 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역시 사용자로 봐야 한다며 종전 판례보다 기준을 넓게 해석했다.

대법원 판례는 이같은 사용자의 정의를 '노조 조직 개입'에 의한 부당노동행위를 판단할 때 적용했는데, 이번 사례와 같은 '단체교섭 거부'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외연을 넓힌 셈이다.

항소심도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 사용자…단체교섭 응해야"(종합2보)
2심 재판부 역시 이날 이같은 1심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CJ대한통운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대해 CJ대한통운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반한 무리한 법리 해석과 택배 산업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판결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판결문이 송부되는 대로 면밀하게 검토한 뒤 상고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선고 후 "오늘의 판결은 '진짜 사장 나와라'라며 7년을 넘게 외쳤던 택배 노동자들을 비롯한 특수고용직 노동자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절규와 외침이 옳았다는 것을, 노조법 2·3조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이 법률에 반하는 행위였음을 법적으로 확인받은 역사적 판결"이라고 환영했다.

이어 "CJ대한통운은 시간을 끌기보다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고 오늘 판결을 수용해 즉시 택배노조와의 단체교섭을 진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만약 상고한다면 노조는 즉시 '교섭응낙 가처분신청'을 통해 단체교섭을 강제할 수 있는 적극적 조치를 취하고, 강력한 투쟁에 돌입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