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 관광산업 병폐 고칠 기회 못살려 시간 허비
"비싸다" vs "아니다" 논란 재확산…"내실 다져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지나 맞이한 엔데믹(풍토병화) 시대.
[줌in제주] "코로나19 지나도 변한 게 없다"…잃어버린 제주관광 4년
해외여행이 재개되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다시 제주를 찾고 있지만, 아웃바운드(내국인의 해외여행)에 비해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관광) 회복세가 더디게 이뤄지며 다시 위기감이 감돈다.

2020년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제주관광의 위기였다.

하지만 저가관광, 불친절, 중화권 위주의 외국인 관광 등 고질적인 관광산업의 병폐를 고칠 기회이기도 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간 제주관광의 체질 개선은 이뤄졌을까.

◇ 내우외환에 빠진 제주관광
지난 8월 31일 668명의 관광객을 태운 중국발 크루즈가 제주를 찾았다.

당시 언론은 6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제주를 찾은 중국 크루즈 단체관광객을 대서특필했다.

제주는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와 코로나19라는 악몽 같은 침체기를 지나 관광산업이 다시 활기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당일 관광객들과 관광업계 관계자를 포함한 일각에서는 볼멘소리와 우려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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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잠시 기항(寄港)한 크루즈 단체 관광객들의 행선지가 제주시 용두암과 화장품 가게, 면세점 등 무료 관광지와 쇼핑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이 탓에 전통시장 등 지역 상권에 미치는 영향 역시 크지 않았다.

당시 연합뉴스와 인터뷰 한 관광객 위키(26)씨 등은 "중국에도 면세점이 있다.

일단 면세점에 왔기 때문에 식품 코너 등을 둘러보며 한국 식품을 샀다"면서도 "중국에서도 살 수 있는 것 외에 (SNS에서 찾아본) 동문시장과 같은 전통시장 등에 들러 한국적인 것, 제주만의 모습을 느끼고 싶었다"고 말했다.

관광업계 관계자들도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달라진 게 없다"며 "소위 말하는 저가 관광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이를 벗어나야 하는데 계속해서 반복되는 듯 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코로나19 위기 동안 저가 관광, 불친절, 중화권 위주의 외국인 관광 등 제주의 고질적인 관광산업의 병패를 고칠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음을 꼬집은 것이다.

외국인 단체관광 재개에도 기대했던 단체관광 특수는 현재까지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를 전후해 제주 관광을 둘러싼 잡음은 계속해서 불거졌다.

올해 초 성수기를 앞두고 벌어진 한 대형 렌터카 회사의 예약 강제취소 논란은 제주 관광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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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제주 여행을 준비하던 관광객들이 렌터카 예약을 하고 대금까지 지급했지만, 업체의 일방적인 취소로 기존에 지급한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다시 렌터카 예약을 해야하는 불편을 겪게된 것이다.

관광객들은 '업체가 더 비싸게 예약을 다시 받으려고 의도적으로 취소한 일종의 꼼수'라고 주장했고, 결국 해당 업체는 과징금 등 행정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 등으로 인해 제주 관광 만족도는 크게 떨어졌다.

지난 10월 여행 리서치 전문기관인 컨슈머인사이트가 실시한 올해 여름 휴가지 만족도 조사에서 부동의 1위이던 제주도는 부산·강원·전남 등에 밀려 4위로 내려앉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컨슈머인사이트는 제주의 경우 먹거리와 쉴 거리 점수가 낮아졌고 물가와 상도의(商道義) 평가가 전국 최하위로 떨어져 고물가 논란의 여파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한 달 뒤에는 '주례 여행행태 및 계획조사'를 통해 올해(1∼10월) 3박4일 기준 여행자 1인당 지출 금액을 공개하며 제주 관광에 대한 비판을 더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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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지 전체 평균 비용은 33만9천원, 제주는 이보다 1.56배 비싼 52만8천원, 해외는 3.41배인 115만7천원으로 조사됐다.

컨슈머인사이트는 "소비자는 해외여행이 제주도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돈이면 (제주대신) 해외 가겠다'는 소비자 얘기는 '제주도가 반값이더라도 가지 않겠다'는 심리의 표현"이라고 직격타를 날렸다.

코로나19를 지나 엔데믹(풍토병화)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제주 관광은 내우외환의 위기에 직면했다.

국내 관광객은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는 반면, 외국인 관광객의 회복세는 더디다.

올해 제주를 찾는 누적 내외국인 관광객 수는 1천33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내국인 관광객은 역대 최다 내국인 관광객을 기록했던 지난해 1천380만3천58명과 비교해 120만명(약 9%) 가량 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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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모적인 바가지 공방…"내실 다져야"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 제주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제주도와 제주도관광협회는 제주관광을 둘러싼 고비용·바가지 논란과 같은 오해를 풀기 위해 최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2022년 국민여행조사'와 '제주 방문관광객 실태 조사'를 근거로 제주관광 설명회를 열었다.

설명회 내용을 요약하면, 제주 여행 비용에는 항공기 또는 선박, 렌터카 등 이동수단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기 때문에 전체적인 비용이 전국 평균보다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국민이 여행할 때 이동수단은 자가용이 전체의 85.3%를 차지하지만 제주도는 렌터카 이용이 77.8%에 달하고, 제주도를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항공기 또는 선박을 이용해야 하며, 숙박시설을 선택할 때도 제주에선 비교적 비용이 많이 드는 호텔 이용률이 높다는 설명이다.

제주도와 제주도관광협회는 추가로 글로벌 렌터카 플랫폼 '카모아'가 올해 6∼8월 서울을 제외한 지역별 렌터카 예약 현황을 분석한 자료를 통해 "해당 기간 제주가 전체 렌터카 예약의 82%를 차지하며, 제주도만 유일하게 하루 평균 렌터카 이용료가 5만2천원 수준으로 전년(8만6천원)과 비교해 39% 줄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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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조례를 개정해 관광지 물가안정과 물가 실태조사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객관성 확보를 위한 관광 분야 데이터를 자체 분석·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해 주기적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연말연시를 맞아 관광객 유치를 위한 그랜드 감사 세일 행사를 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제주도와 관광협회가 고물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팩트체크' 식의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지만 또다른 논란을 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같은 대응에 맞서 조사기관은 "'제주도가 비싸지 않다'고 항변하는 것은 공허할 따름이다.

'반값이라도 제주도는 가지 않겠다'는 말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소비자 의견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것이 우선"이라고 맞받아 치는 모양새가 됐다.

일부 언론은 제주도와 조사기관이 통계·조사를 근거로 '고물가·바가지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일각에서는 "관광지에서 숙박비, 음식값, 각종 서비스 비용 등이 적절한지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가격을 둘러싸고 진위를 가리는 것은 소모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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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러한 논란이 계속될 경우 장기적으로 제주 관광 이미지 하락과 안정적인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만큼 제주관광 품질 개선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관광시장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단체관광에서 개별여행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했다.

해외 여행의 큰손인 중국인들 역시 기존 단체관광에서 MZ세대(1980년대초∼2000년대초 출생) 중심의 개별여행으로 바뀌고 있다.

단체관광 중심의 쇼핑이나 인기명소 중심 여행수요는 감소하는 반면, 맛집투어·지역관광 등 로컬 체험 중심의 관광이 대세로 떠올랐다.

서비스 수준을 개선하고 다양한 여행상품을 개발하는 등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국내외 관광객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없다.

문성종 제주한라대학교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해외여행으로 눈을 돌린 내국인 관광객을 돌아오게 하려면 제주가 안심하고 안전하게 관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질 좋은 다양한 관광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제주 관광을 둘러싼 논란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 없다. 묵묵히 제주가 내실을 다져나간다면 관련 통계 지표가 다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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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