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일과 달리 '조건' 거론…대만문제 등 '핵심이익' 갈등관리 요구한 듯
중국 "좋은 분위기 필요"…한중일 정상회의 성사까지 험로 예상
한중일이 지난 26일 부산에서 열린 외교장관 회의에서 다음 단계인 3국 정상회의 준비를 가속하기로 합의했지만 중국이 '조건'을 언급하면서 성사까지는 녹록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번 3국 외교장관회의에선 정상회의 협의에 임하는 한일과 중국의 기류 차이가 드러났다.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 후 한국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은 3국 정상회의를 '상호 편리한 가장 빠른 시기'에 개최하자는 기존 합의를 재확인하면서 이를 위한 준비를 가속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중국 외교부 보도자료에도 준비 가속화라는 말은 들어갔지만 3국이 정상회의를 위해 '조건'을 만들기로 했다는 표현이 새로 추가됐다.

현 의장국인 한국과 차기 의장국 일본은 3국 정상회의를 되도록 빨리 개최하는 데 무게를 실었지만, 중국은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며 조기 개최에는 다소 거리를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중국 측은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위한 조건은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7일 정례브리핑에서 "3국은 정상회의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좋은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팡쿤(方坤) 주한중국대사관 공사도 전날 한 포럼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3국 정상회의는 이미 3국이 합의한 사항"이라며 사견을 전제로 "(조건을 만든다는 게) 좋은 분위기 등을 만드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중국이 요구하는 '좋은 분위기'에는 결국 대만이나 남중국해처럼 자신들이 이른바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는 사안 등에서 한일과 갈등이 고조되지 않는 상황이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3국 외교장관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역사를 직시하고 미래를 향하는 정신에 따라 서로의 발전 경로와 핵심이익을 존중하고, 민감한 문제를 적절히 처리하며, 양호한 양자 관계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전략경쟁이 고조되며 최근 한중, 한일 양자관계에서도 이들 문제를 둘러싼 갈등 수위가 높아졌다.

3국 정상회의가 열리려면 한중, 한일 양자관계에서 갈등이 적절히 관리돼야 한다는 요구를 우회적으로 내민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중국의 이런 입장을 고려하면 앞으로 3국 정상회의 성사까지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변수가 불거질 수 있다.

3국 정상회의 의제를 정하고 결과문서를 협상하는 과정도 아직 남아 있다.

앞서 8차례 개최된 3국 정상회의에서는 매번 공동성명 등 결과문서가 발표됐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전날 KBS 뉴스라인에 출연해 "3국 외교장관이 11월 말에서야 회동하게 돼서 의제 세팅과 공동 문안 조율에 몇 달이 걸린다"며 "내년 초나 상반기 중에 우리나라에서 정상회의가 열릴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한중일 당국은 아직 차기 정상회의 결과문서 작업을 본격화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중국이 이번에 3국 외교장관회의에 응하고 '협의 가속화'에 합의한 것은 중국도 3국 협력 정상화 필요성 자체에는 큰 틀에서 공감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동맹인 한일을 끌어들이면서 동북아에서 나름의 외교적 공간을 창출해야 할 필요도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도 이번에 마련한 합의를 바탕으로 정상회의 성사를 위한 협의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전날 YTN에 출연해 "의장국으로서 구체적인 시기를 빨리 확정할 수 있도록 밀도 있는 협의를 가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왕이 위원은 2년여만에 이뤄진 이번 방한에서 한국과 대놓고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3국 외교장관회의에 앞서 개최된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양자회담에서 대만 문제를 포함해 이른바 핵심이익 사안에 대한 중국 입장을 설명했지만, 중국 외교부는 왕 부장이 대만 문제를 거론했다는 사실을 보도자료에 명시하지 않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