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출신 마리오 벤자고 지휘
넘치는 생동감, 명확한 대비 돋보여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 협연
긴 호흡으로 완성도 높은 연주 선사

올해 KBS교향악단은 전례 없을 정도로 과감하고 참신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번 공연도 예외는 아니어서, 별로 혹은 거의 연주되지 않는 곡들 위주로 선곡했다. 첫 곡은 슈베르트가 쓴 오페라 <피에라브라스>의 서곡이었는데, 슈베르트가 오페라를 꽤 많이 썼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이도 적지는 않을 듯하다.
<피에라브라스>는 슈베르트가 특히 심혈을 기울여 쓴 오페라였지만, 그의 다른 오페라들과 마찬가지로 인기를 끌지 못하고 머잖아 그대로 묻혀 버린 작품이다. 그나마 서곡은 콘서트 무대에 오를 때가 있지만, 이마저도 자주 연주되지는 않는다. 두 번째 곡 버르토크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은 말할 것도 없고, 마지막 순서인 슈만의 ‘교향곡 제2번’ 역시 지명도는 조금 더 있을지언정 자주 연주되는 곡은 아니다. 이런 곡들을 연주할 때는 명확하고 일관된 접근법이 필요한 법이다.

이들의 연주는 큰 놀라움으로 다가왔는데, 연주 수준 자체도 그렇지만 KBS교향악단이 이런 연주도 들려줄 수 있구나 싶어서였다. 먼 옛날 드미트리 키타옌코가 상임지휘자이던 시절의 호쾌하고 강렬하지만 거칠고 투박했던 연주나, 한층 최근인 요엘 레비 시대의 기능미만 추구하던 연주와는 사뭇 달랐다.
현 상임지휘자인 피에타리 잉키넨 체제에서 KBS교향악단은 지휘자의 요구에 더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이번 공연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겠으나, 이 연주는 큰 그림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는 잉키넨의 스타일과도 좀 달랐다.
이 차이점은 슈만의 ‘교향곡 제2번’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 곡은 특히 현악 파트를 중심으로 유난히 현란한 대목이 많고, 웅장하고 성대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대목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적잖은 지휘자가 이 효과를 십분 살리려고 애쓰곤 한다. 하지만 벤자고는 눈부신 빛으로 감상자를 현혹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곡 구석구석을 은은하게 비춰주는 쪽을 택했다. ‘이 곡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운지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야기의 흐름 때문에 마지막에 언급하게 됐지만, 버르토크의 협주곡에서 독주를 맡은 일본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 역시 이번 공연의 완성도에 적잖이 기여했다. 미도리는 가능한 한 긴 호흡을 유지하면서 일관되게 정성스러운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오케스트라와 세심한 반주와도 멋지게 어우러졌다. 앙코르로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 제3번’ 중 ‘전주곡’ 역시 아주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상쾌하고 생동감 있는 연주였다. 잊을 수 없는 밤이 이렇게 또 하나 추억에 덧붙게 되었다.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황진규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