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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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던 호스니 무바라크는 국가인구회의에서 한국과 이집트의 상반된 운명을 말했다. 1960년 2600만명 수준으로 동일하던 양국 인구가 2008년 한국은 4800만명, 이집트는 8000만명으로 차이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뤘지만 이집트는 정치적 불안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빈곤을 해결하지 못했다. 이를 근거로 회의에서 무바라크는 "성공적인 한국의 가족 계획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로즈칼리지의 정치학 교수인 제니퍼 스쿠바가 쓴 <80억 인류, 가보지 않은 미래>는 인구문제와 관련해 여러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인구감소는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선진국이면 도달할 수밖에 없는 종착점이다. 여전히 세계적으로는 인구감소보다 인구 증가에 따른 빈곤과 정치적 불안정이 더 큰 문제다. 이민을 통해 인구감소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비극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구 증가가 더 큰 문제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합계출산율 2.1명을 밑도는 국가는 2020년 기준 87개에 이른다. 유엔은 이번 세기말에 선진국의 70%와 개발도상국의 65%가 인구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경제 발전과 인구 감소는 필연에 가깝다. 인구 구성이 경제발전의 기회가 되는 '인구 배당'은 출산율 하락으로 어린이는 전체 인구의 30% 미만, 65세 이상 노인은 15% 미만일 때 발생한다. 생산가능 인구가 증가하는 가운데 줄어든 아동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고, 이는 인적자원 가치의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회 성숙도와 고령화도 비례한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자유국가에 해당하는 나라는 중위연령이 25세일 때 30%, 35세일 때 75%, 45세일 때 90%로 점차 높아졌다. 반면 중위연령이 25세 미만인 국가 중에 자유국가 지위를 10년 이상 유지한 나라는 거의 없었다.
"인구가 줄어 걱정이라지만 사실 인구 증가가 더 큰 문제" [책마을]
세계적으로는 통제되지 않는 인구 증가가 더 큰 문제다. 새로 사회에 진입하는 청년 집단의 크기가 앞선 세대보다 많을 때 충분한 일자리를 얻기 힘들어 사회 불안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급격히 늘어난 청년 인구가 테러 집단으로 유입되고 있는 소말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이 대표적인 예다. 인구 연령 구조가 젊은 나라에서 내전이 발발할 가능성은 고령화된 나라보다 평균 2.5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히틀러가 득세한 1930년대의 독일, 이슬람 근본주의 혁명이 일어난 1970년대의 이란도 늘어난 청년 인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저자는 "저개발국가의 인구 증가 자체만을 놓고 인구 배당 등 희망적인 신호로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민도 답은 아니다"

많은 선진국이 인구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추진하는 이민정책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이민의 경제적 효과가 부각되고 있지만 정치·사회적 비용이 기대보다 크다는 이유에서다.

카카오 수확을 위해 적극적으로 수십년간 노동 이민을 받아 특정 지역에서는 이주민의 수가 1980년대에 50~60%에 이르렀던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이민자와 기존 주민 사이의 충돌 끝에 2002년 내전이 발발했다. 영국의 EU(유럽연합) 탈퇴도 이민 증가에 따른 사회적 반동의 결과였다. 1991년부터 20년 동안 영국에서 백인이 아닌 인종의 비율이 7%에서 14%로 급상승하자, 영국인들은 예상되는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EU 탈퇴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프랑스와 북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민을 둘러싼 갈등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

이 같은 중장기적인 리스크와 비용을 감안하면 이민을 최소화하고 늙어가기를 택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은퇴 연령을 늘려 고령화에 대응하고 있는 일본이 대표적인 사례다. 추산에 따르면 EU 역시 정년을 10년 늘리면 이민 1억명을 받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노동 인력 측면에서 누릴 수 있다.

인구 통계를 둘러싼 고정관념들

저자는 인구통계의 해석을 놓고 지나치게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과 중국의 생산인구 감소다. 과거와 다른 고령자의 신체활동 능력을 감안하면 은퇴 연령을 높이는 것만으로 생산인구 감소 폭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은퇴 연령을 60세로 잡으면 2050년 기준 중국인의 37%가 고령자지만, 기준을 70세로 높이면 해당 인구는 21%로 줄어든다.

젊은 인구가 책임져야 하는 노인인구를 나타내는 '부양비' 개념도 지나치게 과대 평가됐다고 지적한다. 65~69세 노인 43%가 고용돼 일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해당 나이를 넘었다고 해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육 등 돌봄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노인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인구와 고령화 등을 주제로 한 책이지만 파괴적인 인구감소에 직면한 한국의 현실을 타개할 아이디어를 책에서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현재의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이민청 설립 추진 등으로 속도를 내고 있는 이민정책과 관련해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