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의원 배지. / 사진=뉴스1
제21대 국회의원 배지. / 사진=뉴스1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야심한 시각 술자리를 가졌다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했던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의원 면책특권'(이하 면책특권)을 근거로 불송치되면서 여당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고 있다. "면책특권을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가운데, 이제는 국회가 면책특권의 남용을 방지할 합리적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 논의가 착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수사한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24일 해당 의혹을 허위로 판단하고, 의혹을 제기한 유튜브 매체 '시민언론 더탐사' 대표 강진구(56)씨를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같은 혐의로 고소·고발된 김의겸 의원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했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면책특권이 검찰에 넘겨지지 않은 이유다. 검찰은 경찰에 김 의원 재수사를 요청할지 검토하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한 장관을 향해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공개 질의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지도 않고 의혹 제보자의 녹취를 그대로 공개하기도 했다. 녹취에는 "한동훈, 윤석열까지 다 와서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등 적나라한 대화가 고스란히 담겼다. 하지만 제보자가 허위 제보임을 시인하면서 이는 가짜뉴스로 판명이 났다. 그런데도 김 의원은 "그날로 돌아간다면 같은 질문을 다시 할 것"이라고 '심심한 유감'만 표명했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은 일제히 반발했다. 일반인이라면 처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목소리다.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지난 25일 페이스북에서 "청담동 술자리 운운하는 저질 가짜뉴스로 명예훼손을 한 게 인정됐지만, 면책특권 덕분에 불송치 처분을 받은 김 의원에게 살인 면허 007도 아니고 '가짜뉴스 면허'를 국회의원에게 발급해준 꼴"이라고 직격했다.

장 최고위원은 이어 "세상에 이렇게 막 나가는 특권이 어디 있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대선 공약으로 면책특권 폐지를 주장했다고 한다. 이제 공약을 지킬 시간"이라며 "군사정권 시절 만들어진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면책특권이 의미가 변질돼 저질 정치의 면죄부가 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보수·진보, 여당·야당 할 것 없이 저질 정치를 추방하는 의미에서 면책특권 폐지를 함께 추진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지난 2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께 신뢰받는 국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하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가짜뉴스 문제"라면서 "악의적 목적을 갖고 명확한 근거나 진위에 대한 확인 절차 없이 책임지지 못할 허위·가짜뉴스를 유포하는 행위에도 지금과 같이 면책특권을 적용해야 할지에 대해선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가 됐다. 이 경우 면책특권 적용을 하지 않는 방안을 논의하자"고 공식 제안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불체포특권뿐만 아니라 면책특권 역시 국민들께서 보시기에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의회민주주의 복원을 위한 차원에서라도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행위는 국회의원이 면책특권 뒤에 숨지 않고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병언 기자
사진=김병언 기자
국회의원은 헌법 제45조에 따라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표결에 관해 국회 외에서 책임지지 않는 면책특권을 가진다. 이는 불체포특권과 함께 입법부의 독립·자주적 기능을 보호하고, 의원이 양심과 소신에 따라 자유롭게 의정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한 장치다. 이는 제헌헌법에서부터 인정된 권리로, 1962년 제5차 개헌 때 '직무상' 요건이 추가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불체포특권은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쳐 무력화할 수 있지만, 면책특권 제한 사유는 헌법에 규정돼 있지 않아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해외 주요국들은 의회 의원에게 면책특권을 어떻게 부여하고 있을까.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달 발간한 연구보고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국내·외 비교와 쟁점'에 따르면 면책특권이 최초로 명문화된 영국은 1689년 '의회에서 행한 발언, 토론, 의사의 자유는 의회 외의 재판소나 어떠한 장소에서도 소추·심문받지 않는다'라고 규정해 면책특권을 명문화했다. 미국과 프랑스도 헌법을 통해 면책특권을 규정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도 각각 면책특권을 정립하고 있지만, 주목할 점이 있다. 기본법으로 의원의 면책특권을 규정하고 있는 독일은 관련 조항에 단서를 달아 '중상적 모욕'은 면책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국회의원이 갖는 재량과 자율은 그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라는 취지에서 인정되는 것인 만큼, 직무와 무관하게 '굳이 허위 사실을 적시해 개별 국민의 명예나 신용을 훼손하는 행위'는 면책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에 조사처는 면책특권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장치라고 짚으면서도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특권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을 설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사처는 "면책특권의 기원인 영국에서도 최근에는 의회의 핵심 기능을 보호할 때 특권이 유효하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며 "(한국은) 행정부를 견제·감독해야 할 국회의 본질적 책무와 직접 관계되지 않은 '중상 모욕적 발언' 등에까지 면책특권을 내세우는 남용 문제가 줄곧 지적돼온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면책특권을 제한하려는 개헌에 관한 장기적 구상과는 별개로 의회가 스스로 의원의 책임을 물어 제재하고 있는 주요국 사례를 참고해 국회가 자율적으로 사안의 시비를 판단하며 적절히 조치하려는 노력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면책특권의 남용을 방지하면서도 의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할 합리적 기준을 설정하려는 논의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