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가 최정화가 전남대, 목포대, 조선대 학생 26명과 3개월간 수거한 해양쓰레기들이 샹들리에처럼 엮여 광주시립미술관에 걸렸다.  김보라 기자
현대미술가 최정화가 전남대, 목포대, 조선대 학생 26명과 3개월간 수거한 해양쓰레기들이 샹들리에처럼 엮여 광주시립미술관에 걸렸다. 김보라 기자
지난달 23일 광주시립미술관. 로비에 들어서자 화강암 덩어리로 쌓아 올린 육중한 돌탑들이 천장에 닿을 듯 줄지어 서 있다. 파도가 깎고 바닷바람이 쓸어간 흔적들이 마치 수십만 년 동안 바다에 있었을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대체 이 돌들은 누가 어떻게 옮겨와 쌓아둔 걸까’ 궁금해하는 찰나,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남도의 해양 쓰레기 모아…'찌그러진 부표'도 보석이 되다
“그거 돌 아니에요, 이 근처 바닷가에서 모아온 스티로폼입니다.”

세계적인 현대미술작가 최정화(52)의 목소리였다. 버려진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찌그러진 양철 그릇 등 ‘쓰레기’로 ‘진주’를 빚어내는 작가, 세계적인 기업과 미술관으로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는 그 작가, 맞다. 이 작품은 그가 제10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특별전으로 광주시립미술관 ‘생태미술 프로젝트’에 내놓은 것이다. 지난여름 조선대·전남대·목포대 미술 전공 학생 26명과 함께 3개월 동안 모은 바다 쓰레기를 그럴듯한 작품으로 변신시켰다. 전시의 제목은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여름 내내 전남의 서쪽 남쪽 해안을 샅샅이 훑었어요. ‘여기 있는 쓰레기를 다 치우자’는 마음으로 모은 뒤 작품에 쓰일 것들을 골라 씻고 닦았죠.”

그렇게 모은 대형 스티로폼 조각들은 바닷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모양도, 그 안에 새겨진 문양도 제각각이었다. 최 작가에겐 플라스틱과 콘크리트도 자연에서 얻은 재료와 똑같다. 플라스틱은 ‘자연을 구하기 위해’ 쓰이는 재료란 이유에서다. 코끼리 상아를 보호하기 위해 당구공을 플라스틱으로 제작하고, 거북이 등껍질을 덜 쓰기 위해 안경과 머리빗을 플라스틱 합성 재료로 만든 것처럼.

‘최정화 예술’의 재료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빨래판, 양철 냄비, 리어카와 플라스틱 의자는 보통 사람 눈엔 그저 생활용품이지만, 최정화에겐 예술의 재료로 보인다. 누군가 쓰다 버린 바다 쓰레기에 그가 눈을 돌린 이유다. 그래서 그는 대학생들과 작업할 때도 “쓰레기 수거” 대신 “보물 채집”이란 말을 썼다.

이번 전시의 부제는 ‘홀로바이온트(Holobiont)’다. 우리말로 ‘온생명체’ ‘통생명체’로 해석되는, 서로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커다란 생태계 전체를 일컫는 생물학 용어인데 그는 이를 ‘김치’에 빗댔다. “배추 홀로 어떻게 김치가 되겠습니까. 배추에 각종 양념과 시간, 공기가 더해져야 비로소 맛깔나는 김치가 되죠.”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제2 전시장에 들어선 거대한 부표 설치물들이다. 고기잡이배들을 안내했을 노란색 부표들, 양식장이나 경계선에 쓰였을 주황색 부표들, 알 수 없는 검고 파란 플라스틱 부표들이 엮여 천장에서 늘어진 모습이 거대한 샹들리에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그가 해양 쓰레기로 작업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 있는 부표로도 작품을 빚었고, 남해의 해양 쓰레기로는 성게 조형물을 만들기도 했다. 일본 가고시마 온천 지역에선 폐타이어를 재료로 썼고, 벨기에에선 버려진 강아지집들을 활용했다. 아이디어가 기발한 데다 취지도 좋다 보니, 세계적 기업들이 앞다퉈 그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일본의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 메쉬는 그와 함께 ‘가방 탑’을 3년간 쌓았고, 네스프레소는 버려진 커피 캡슐로 그에게 거대한 꽃을 피우는 작업을 의뢰했다.

이러다 보니 최정화를 ‘환경운동가’로 아는 사람도 많다. 그럴 때마다 최정화는 손사래를 친다. 그는 “나는 모든 종류의 ‘운동’을 싫어한다”며 “그저 환경과 예술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람, 다르게 보도록 이끄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최정화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올바른 편견’과 ‘객관적 실천’으로 표현했다. 맹목적인 쏠림이 아니라 현상의 본질을 파고들어 올바른 믿음(편견)을 찾은 뒤 작은 일상부터 변화를 실천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날 전시 오프닝에 이어 콘퍼런스에 참석한 학생들은 “생각을 깨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배운 것들에 대한 자기반성의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유난히도 더웠던 올여름 남쪽으로 향했던 걸까.

“플라스틱 같은 속칭 ‘환경파괴 물질’은 과연 없어져야 할 존재인가,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어요. 플라스틱이 사라지면, 이를 대체하기 위해 더 많은 환경파괴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다들 알고 있는 건지…. 선과 악, 필요한 것과 버려야 할 것,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광주=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