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기다림이 아닌 다가감의 차례다.
어딘가에서 자꾸만 커지고 있을 외딴섬을 향해. 어쩌면 어렸던 나의 섬을 향해."
김가영(32) 씨가 근위축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세 살 때였다.
조금씩 근육이 위축되고 쇠약해지는 질환이었다.
딱히 치료법도, 약도 없었다.
횡격막 등 호흡근까지 위축되면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도 있는 무서운 병이었다.
안정을 취하기 위해 김씨는 주로 누워 있었다.
움직이고 싶을 때는 휠체어에 의존했다.
집 밖에 잘 나가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졌다.
동화와 수필집, 소설과 시집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8살 때는 사업하는 아버지를 따라 우즈베키스탄으로 가 그곳에 정착했다.
한때 소비에트 공화국에 속했던 그곳에서, 그는 러시아 문학에 깊이 빠졌고, 차츰 작가의 꿈을 키워갔다.
몸은 비록 휠체어에 속박됐지만, 상상력에는 족쇄가 없었다.
그의 상상력은 저 먼 데까지 날아다녔다.
상상 속에서 그는 우주를 유영했고, 깊은 바닷속에서 고래와 이야기를 나눴다.
김씨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장애의 고통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10년의 습작기를 거치며 그가 써온 수많은 작품 가운데 12편을 골라 책에 담았다.
글을 쓸 때 기본이 되는 '썼다 지우는' 작업조차 그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온몸이 굳어 노트북 자판을 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스마트폰을 활용해 검지 두 개만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두 손가락으로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햇살에 반짝거리는 만년설, 저물녘 붉게 물드는 바다.
셔터만 누르면 작품이 되는 대자연의 풍경이 그의 글에 스며들었다.
"오후의 노란빛이 보라색 하늘로 바뀌는 저녁 시간이 되면 나무 위의 아들을 올려다보는 아줌마의 눈빛에서는 체리보다 달큰한 꿀이 떨어질 것 같았다.
"
표제작 '책장 속 그 구두는 잘 있는, 가영'은 스무살 된 기념으로 하이힐을 한번 신고 싶었던 저자의 진솔한 자기 고백이 담긴 글이다.
이 외에도 이웃과 나눈 일상, 고향에 대한 기억, 팬데믹에 대한 생각 등 다채로운 내용이 책에 실렸다.
232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