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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에선 스탠더드 앨범이 꾸준히 발표된다. 물론 새로운 창작곡들도 있지만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음악을 더 많이 연주한다. 원래의 것을 변주(variation)하고 변주가 즉흥과 스피드로 전개되는 것이 모던재즈의 기본 공식이다.

이 과정에서 제시된 연주의 창의적인 측면들은 재즈를 일반 팝뮤직과는 다른 차원으로 가져가면서 ‘재즈 감상자’들을 양산해냈다. 즉, 듣는 것과 감상하는 것에 구분이 생긴 것이다. 언뜻 빤해 보이는 스탠더드 넘버가 계속해서 불리는 이유도 또 다른 상상력에 대한 감상자의 기대와 음악가의 도전이 맞물려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재즈는 왜 원래의 것을 비트는가? 변주와 즉흥은 결국 창의를 위함이다. 같은 이야기도 재치 있는 농담을 섞어서 말하려는 이치다. 대개의 즉흥연주는 완전한 백지상태에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주어진 상황 속에서 변화를 추구한다. 나는 이것을 우리의 삶과 연결해서 말한다.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작은 변화를 추구해가는 것이 ‘재즈 라이프’라고.

직업상 많이 듣는 질문 중에 이런 게 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재즈 한 곡을 추천해 준다면?” 그럴 때마다 나짐 히크메트의 시 ‘진정한 여행’에서 한 구절 인용해 얼버무려 버린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어지지 않았지요. 고로 아직도 그런 음악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듣는 사람으로서는 뭐 이런 답답한 소리를 하고 있나 싶을지 모르겠다. 번거롭지 않게 “이게 바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재즈입니다”라고 선언이라도 해준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재즈에서 단 하나의 최고를 꼽지 않는 이유라면 그 곡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변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즈에서 명곡은 없다. 다만 명 버전은 있다. 하나의 완성체로 박물관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 다만 마스터피스로 통하는 레코드를 통해서 오래오래 감상되는 버전들이 있다. 그런 곡들도 스탠더드를 다룬 게 대부분이다. 그것을 넘어서려는 도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재즈는 살아있다.

재즈 초보자가 재즈로 가는 쉬운길을 묻는다면 “스탠더드를 들어라”란 답을 들려주고 싶다. 사실 변화를 추구하는 재즈는 한 번에 다가오는 음악은 아니다. 때문에 익숙한 멜로디를 들을 때 어떤 부분이 색다른지 감지할 수 있다. 애초에 모르는 곡이 자연스레 좋아질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당신은 재즈와 궁합이 맞는 사람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재즈의 재즈감상으로 들어서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악기 소리에 관심을 가져라.

들어볼만한 재즈스탠더드 두곡


최근 국내 뮤지션이 발표한 스탠더드 재즈 중에 귀를 쫑긋하게 하는 게 있다. 재즈가수 위나(Wina)가 부른 ‘베사메 무초(Bésame mucho)’라는 곡이다. 원래 이 곡은 1940년에 멕시코의 여성 피아니스트가 만든 것으로 반세기 넘게 불리어진 스탠더드 넘버다. 영어로는 ‘Kiss me much’, 로맨틱한 노래다. 그런데 위나라는 가수는 이 노래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냈다.

* 추천곡

위나(Wina) - 베사메 무초(Bésame mucho)

원곡의 애잔한 발라드를 떠올린다면 위나의 버전에서 펼쳐지는 악기들의 현란한 퍼포먼스는 도발적인 것이다. 더구나 연주가 노래의 감정 선과 붙어 다니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악기 사운드가 선 굵은 보컬 멜로디와 대비감을 이루면서 긴장감을 연출한다. 이런 자유로운 변주 속에서 하나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이 신선한 스토리텔링으로 다가온다. ‘베사메 무초’는 또 다른 노래가 되었고 이런 게 재즈의 묘미다. 언밸런스적인 악기의 언어와 노래가 이성과 감성의 밸런스를 찾아가는 과정.

한편, 남성 재즈보컬리스트 이대원이 발표한 ‘Look for the Silver Lining’이라는 곡도 눈에 들어온다. 역시 스탠더드 넘버로 트럼피터 쳇 베이커(Chet Baker)의 버전이 유명하다. ‘Silver Lining’이란 비가 그치고 구름사이로 햇빛이 비추는 부분을 말하는데 희망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대원은 오리지널의 나른한 감성을 그대로 살렸다. 그러면서도 요즘 트렌드인 심플한 사운드로 신선도를 높였다. 어쿠스틱 기타만을 반주로 리드미컬하게 노래하는 장면은 햇살처럼 환하고 쳇 베이커의 트럼펫 대신 소리가 둥근 플루겔 혼을 사용한 간주는 더 무디하고 낭만적이다. 고전에 비해 훨씬 파퓰러하게 다가오면서도 악기의 색감과 질감으로 재즈사운드를 디자인했다는 점이 센스다.

*추천곡 2.

이대원 - Look for the Silver Lining



가을은 재즈의 계절이다.

이제 곰탕 같았던 폭염도 저만치 가고 제법 찬바람이 느껴지는 게 가을이 300m 앞쯤 와 있는 듯하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고 재즈는 사색할 수 있는 음악이다. “그래, 재즈를 감상해보자” 의식하고 들어볼만한 것이다. 그렇다고 미간에 힘을 줄 필요는 없다. 경험상 가장 좋은 재즈감상은 알파상태의 느긋한 집중이다. 그리고 경험상 와인 한잔 곁들이면 더 좋다. 재즈는 왜 같은 노래를 비틀어대는지, 스탠더드 재즈를 감상하면서 재즈라이프를 시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