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우에도 높아진 물가를 잡기 위해 지난해 4월부터 기준금리를 인상해오고 있지만, 미국의 기준금리와 그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어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금리가 빠르게 인상되고 있다는 사실은 동일하므로 기업의 재무 건전성에 대한 관심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자본잠식도 단계가 있다
재무 건전성과 관련된 재무적 지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자본잠식이다. 기업의 자본은 주주가 납입한 자본금과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의 합계인 이익잉여금으로 구성된다. 기업이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경우 이익잉여금이 점점 누적되어 자본총계 또한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경기 침체, 산업의 사양화, 경쟁 심화 등의 요인으로 이익이 아닌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은 곧 이익잉여금이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대규모 혹은 장기간의 손실이 누적되어 이익잉여금이 ‘부(-)’의 금액으로 전환(회계상 미처리결손금)되는 순간, 자본총계가 자본금보다 적어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주주가 납입한 자본금이 기업의 손실로 인해 부분적으로 잠식되었다는 의미에서 ‘부분 자본잠식’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기업이 돈을 벌지 못해 주주의 출자금을 갉아먹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다 손실의 누적 규모가 자본금을 넘어서게 되면 그게 바로 ‘완전 자본잠식’이 되는 것이다. 이때는 자본총계 자체가 부(-)의 금액으로 돌아서게 되고, 자본잠식률은 양(+)의 부호로 산출된다.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고, 그 자금이 사업 초반엔 주주로부터 주로 유입되겠지만, 사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는 사업에서 벌어들인 자금이 주된 재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손실이 발생하는 기업의 경우에는 벌어들인 자금으로 사업을 운영하기는커녕, 그 누적 손실이 주주가 납입한 자본금을 소진하고 있으니 재무 건전성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
자본잠식률 낮추는 일반적 방법은
누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기업은 재무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자본잠식률을 낮출 방안을 고민하게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히 영업 정상화에 따른 이익 창출이겠지만 심화한 경쟁 속에서 단시간 내에 적자를 흑자로 전환하는 일이 녹록지 않을 것이다. 결국 자본잠식률을 낮출 수 있는 다른 방안 모색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첫 번째 방안으로는 유상증자를 떠올릴 수 있다. 이 방안은 주주가 추가적인 자본을 기업에 불입하여 자본잠식률의 분모인 자본금을 증가시킴으로써 자본잠식률을 감소시키는 전략이다. 기업은 주주가 자본을 많이 불입할수록 자본잠식률을 낮출 수 있으나, 주주 입장에서는 지속적으로 손실이 발생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개발비·재고자산으로 변칙 쓰는 업체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사업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준비 과정을 겪는다. 이 때문에 매출이 발생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달리 말하면 영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수익 없이 비용만 지출하는 손익 구조를 꽤 오랫동안 유지하게 된다. 스타트업은 구조적으로 자본잠식의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어찌 보면 자본잠식은 스타트업의 숙명과도 같고, 이는 투자자도 어느 정도 예상하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은 왜 자본잠식률을 낮추고 싶어 하는 것일까?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차입을 통한 자금 조달을 위해서다. 지분 투자자의 경우 기업의 현재 자본 구조상 자본잠식률이 다소 높을지라도, 미래의 성장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그 기업에 투자할 유인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채권자의 경우에는 기업으로부터 대출금과 이자를 지급받는 것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므로 현재의 재무 건전성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로는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한 목적이 있다. 스타트업은 투자자들로부터의 자금 조달 외에 정부 지원 사업을 통한 자금 조달에도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 상당수의 정부 지원 사업에서 일정 수준의 자본잠식률과 부채비율을 자격 요건으로 정하고 있다. 이를 충족하기 위해 스타트업들이 자본잠식률을 낮추고 싶어 하게 된다.
스타트업은 투자 여력이나 회계에 대한 지식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반면, 당장 정부 지원 사업에 참여는 해야 하기에 ‘자본잠식률을 쉽게 낮출 수 있다’는 이야기에 쉽사리 현혹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발비’다. 스타트업이 주로 적용하는 ‘일반기업회계기준’에 따르면 연구단계에서 발생한 지출은 자산으로 인식할 수 없고, 개발 단계에서 발생한 지출 중 일정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에만 자산으로 인식 가능하다.
유사한 사례로 ‘재고자산’을 실제와 달리 과대계상하는 경우가 있다. 재고자산을 자체 생산하거나 외부로부터 매입할 때의 지출금액은 재고자산이 판매되기 전까지 ‘자산’으로 인식되고, 자산이 판매되는 시점에 ‘비용’으로 인식된다. 이 점을 이용하여 실제 재고자산이 판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으로 인식하지 않고, 계속해서 재고자산으로 인식할 경우 개발비의 사례와 동일하게 이익잉여금을 증가시킴으로써 자본잠식률을 낮출 수 있게 된다.
순간의 실수, 투자 유치 난항으로
다른 사례는 보조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부 지원 사업을 통해 수취한 보조금은 사용 목적에 따라 회계 처리가 다음과 같이 달라진다.
스타트업에서 위와 같은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재무 건전성이 위태로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기업도 있을 것이고, 대표의 고민을 전해 들은 세무대리인의 권유를 받아 선택한 기업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스타트업의 재무제표가 회계기준과 다르게 작성되더라도 지금 당장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사람이 없다는 것에 있다. 실제 기업의 규모가 커져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는 시점이 오기 전까지는 정기적으로 회사의 재무제표가 적정한 것인지 확인받아야 할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위와 같은 분식회계의 유혹에 쉽게 현혹될 수 있다.
하지만 달콤한 유혹에는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 특히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투자자가 재무실사나 임의감사를 요구하는 경우에 지금까지의 분식회계가 적발될 수 있다. 지금 당장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그동안 자산으로 인식해 온 개발비와 재고자산이 일시에 비용(전기까지의 누적효과는 이익잉여금의 차감으로 처리)으로 원복되고, 자산 취득 보조금을 수익으로 인식해 온 효과가 제거되면 그동안 숨겨왔던 기업의 악화된 재무 건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투자자는 쪼그라든 기업의 재무제표에 당황할 수 있고, 투자자와 대표 간의 신뢰 관계에 균열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기업이 목표로 했던 자금조달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면 결국 가장 곤란할 사람은 대표 본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앞서 살펴본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 전에 기업의 재무성과를 개선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사전에 모색해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막연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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