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이스트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영화 '어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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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거장' 크리스티안 페촐트 연출…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수상작
레온(토마스 슈베르트 분)은 대다수의 사람이 가까이하고 싶어 하지 않을 법한 남자다.
그는 그다지 잘난 것도 없으면서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 사람들을 깔본다.
이를 제대로 숨기지도 못해 좀스러움이 눈에 훤히 보이는 캐릭터다.
이런 그에게도 친구가 있다.
예술학교 진학을 꿈꾸는 펠릭스(랭스턴 우이벨)다.
펠릭스는 레온을 데리고 한적한 해변 마을에 자리 잡은 어머니 집으로 간다.
레온은 이곳에서 집필 중인 소설을 마무리할 요량이다.
그러나 첫날부터 계획은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가는 길에 차가 고장 나 짐을 둘러멘 채 진창을 헤쳐 겨우 집에 도착한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집에는 처음 보는 여자 나디아(파울라 베어)가 있다.
레온의 발작에 가까운 신경질은 날이 갈수록 늘어간다.
비대한 자의식으로 가득한 에고이스트(이기주의자) 작가는 이곳에서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독일의 거장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어파이어'는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진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예술가 레온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가 낯선 곳에 떨어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 이후 소설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올해 열린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전작 '운디네'(2020)에서 물을 매개로 사랑에 빠진 연인을 그린 페촐트 감독은 이번 영화에선 불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레온과 펠릭스, 나디아가 사는 집에서 수십㎞ 떨어진 곳에서 난 산불이 그것이다.
불은 조금씩 세력을 확장하며 세 사람을 위협해온다.
하지만 이들은 불이 난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 평소와 다름없는 나날을 보낸다.
특히 레온은 소설을 끝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
그의 기벽은 며칠 안 되는 짧은 기간에도 튀어나와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호텔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나디아를 슬며시 멸시하고, 인명구조요원인 그의 남자친구 데비트(에노 트렙스)에게는 "얼마나 버냐?"며 대놓고 무시한다.
레온의 진짜 문제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의 진실이나 변화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맥락을 읽을 줄도, 진정한 인간관계를 다질 줄도 모르는 그가 허접한 소설밖에 쓸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디아는 레온이 쓴 '클럽 샌드위치'라는 제목의 글을 읽고서 형편없다 일갈한다.
하지만 레온은 그의 비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이스크림 판매원인 나디아는 레온의 기준으로는 자격 미달인 사람이다.
출판사 사장이 소설에 줄을 죽죽 긋는 것을 보고서야 레온은 자신의 헐거운 필력을 인정한다.
영화는 페촐트 감독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피닉스'(2014), '트랜짓'(2018), '운디네' 등보다 훨씬 더 가벼운 분위기를 띤다.
곳곳에 유머도 많아, 페촐트 감독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음악이나 카메라의 기교 없이 오직 스토리만 따라가도록 담백하게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어파이어'가 표층의 이야기에만 집중한 영화는 아니다.
은유가 가득해 눈에 보이는 스토리를 한 꺼풀 벗겨야 비로소 속살을 마주할 수 있다.
불이 온 산을 다 태운 뒤에야 좋은 소설을 쓰게 된 레온과 마찬가지다.
전개를 예상하기 어렵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또 관심도 없는 레온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따라가기 때문에 반전은 더 크게 다가온다.
레온을 연기한 슈베르트는 살면서 한 번쯤은 마주쳤던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호연을 펼친다.
질투와 욕망으로 가득하지만,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원치 않는 미묘한 연기를 훌륭히 소화했다.
페촐트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춘 베어 역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레온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의도치 않게 응징도 하는 나디아를 보면 꽉 막힌 속이 조금은 트일 듯하다.
9월 13일 개봉. 102분. 12세 관람가.
/연합뉴스
그는 그다지 잘난 것도 없으면서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 사람들을 깔본다.
이를 제대로 숨기지도 못해 좀스러움이 눈에 훤히 보이는 캐릭터다.
이런 그에게도 친구가 있다.
예술학교 진학을 꿈꾸는 펠릭스(랭스턴 우이벨)다.
펠릭스는 레온을 데리고 한적한 해변 마을에 자리 잡은 어머니 집으로 간다.
레온은 이곳에서 집필 중인 소설을 마무리할 요량이다.
그러나 첫날부터 계획은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가는 길에 차가 고장 나 짐을 둘러멘 채 진창을 헤쳐 겨우 집에 도착한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집에는 처음 보는 여자 나디아(파울라 베어)가 있다.
레온의 발작에 가까운 신경질은 날이 갈수록 늘어간다.
비대한 자의식으로 가득한 에고이스트(이기주의자) 작가는 이곳에서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독일의 거장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어파이어'는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진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예술가 레온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가 낯선 곳에 떨어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 이후 소설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올해 열린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전작 '운디네'(2020)에서 물을 매개로 사랑에 빠진 연인을 그린 페촐트 감독은 이번 영화에선 불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레온과 펠릭스, 나디아가 사는 집에서 수십㎞ 떨어진 곳에서 난 산불이 그것이다.
불은 조금씩 세력을 확장하며 세 사람을 위협해온다.
하지만 이들은 불이 난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 평소와 다름없는 나날을 보낸다.
특히 레온은 소설을 끝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
그의 기벽은 며칠 안 되는 짧은 기간에도 튀어나와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호텔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나디아를 슬며시 멸시하고, 인명구조요원인 그의 남자친구 데비트(에노 트렙스)에게는 "얼마나 버냐?"며 대놓고 무시한다.
레온의 진짜 문제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의 진실이나 변화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맥락을 읽을 줄도, 진정한 인간관계를 다질 줄도 모르는 그가 허접한 소설밖에 쓸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디아는 레온이 쓴 '클럽 샌드위치'라는 제목의 글을 읽고서 형편없다 일갈한다.
하지만 레온은 그의 비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이스크림 판매원인 나디아는 레온의 기준으로는 자격 미달인 사람이다.
출판사 사장이 소설에 줄을 죽죽 긋는 것을 보고서야 레온은 자신의 헐거운 필력을 인정한다.
영화는 페촐트 감독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피닉스'(2014), '트랜짓'(2018), '운디네' 등보다 훨씬 더 가벼운 분위기를 띤다.
곳곳에 유머도 많아, 페촐트 감독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음악이나 카메라의 기교 없이 오직 스토리만 따라가도록 담백하게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어파이어'가 표층의 이야기에만 집중한 영화는 아니다.
은유가 가득해 눈에 보이는 스토리를 한 꺼풀 벗겨야 비로소 속살을 마주할 수 있다.
불이 온 산을 다 태운 뒤에야 좋은 소설을 쓰게 된 레온과 마찬가지다.
전개를 예상하기 어렵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또 관심도 없는 레온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따라가기 때문에 반전은 더 크게 다가온다.
레온을 연기한 슈베르트는 살면서 한 번쯤은 마주쳤던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호연을 펼친다.
질투와 욕망으로 가득하지만,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원치 않는 미묘한 연기를 훌륭히 소화했다.
페촐트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춘 베어 역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레온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의도치 않게 응징도 하는 나디아를 보면 꽉 막힌 속이 조금은 트일 듯하다.
9월 13일 개봉. 102분. 12세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