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응준.
소설가 이응준.
"고백하자면 그동안은 거짓말이었는데요, 이번에는 진짜입니다."

소설가 이응준(53)은 지난 28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자신의 신간 산문집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에 대해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써왔다"며 "그간 '제 책이 사람들에게 도움과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면 거짓일 텐데, 이번 책만은 믿을 수 있는 친구의 편지처럼 읽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990년 시인으로, 1994년 소설가로 등단한 이 작가는 30년 넘게 수많은 글을 써왔다. 시, 소설, 산문, 시나리오를 넘나들었다. 통일 이후 삶을 조망한 장편소설 <국가의 사생활>은 영국 '가디언'지가 특집면을 할애해 소개하기도 했다. 신문 지면에 싣는 매서운 시사평론으로 그를 기억하는 독자들도 많다.

이번 책은 이 작가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내 상처를 가감없이 드러내 타인을 위로하는' 작가의 면모다. 책을 여는 첫 글은 16년간 삶을 함께 한 반려견 '토토'를 떠나보낸 일을 담은 '명왕성에서 이별'이다. 이 작가는 토토의 죽음 앞에서 이십대 중반, 3년간 암에 걸린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간호하고 끝내 잃었던 경험을 떠올린다. "죽음도 암기과목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죽음을 잊지 않으면 삶의 허튼짓거리들을 그만하게 된다."

2016년 민음사의 계간지 '릿터'에 실렸던 이 글은 소셜미디어에 퍼지며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이들, 떠나보낸 이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한 독자는 이런 감상을 남겼다. "이번 릿터는 이응준 작가님의 '명왕성에서 이별'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이 작가는 "그 글을 발표하고서 어느 변호사의 편지를 전달받았는데,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고 했다. 독자는 14년 10개월간 단둘이 함께하던 비글을 암으로 잃고서 집 안의 불상을 뒤로 돌려놓을 정도로 세상을 비관했다고 했다. "그분이 '명왕성에서 이별'을 하루에도 스무 번 넘게 되풀이해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고 해서,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작가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나를 위한 글을 써 놓고도 남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은 사람이다. 가장 이상적인 세상이란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정답도 얻었다."
산문집 출간한 소설가 이응준 "문학의 시대 끝나도...당신을 위해 글을 씁니다"
그러나 작가로 사는 일이 늘 아름다울 리는 없다. 이 작가 스스로 "문학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 오늘날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는 "언젠가 TV에서 영화 '서편제'를 틀어주는데, 이미 본 영화인데도 어느 순간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며 "왜 이렇게 슬픈고 하니 영화 속에서 축음기가 나오고 음반이 유행하는데도 여전히 창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고 했다. 독자들이 하나둘 영상매체로 떠나가는 와중에 문학을 하는 일이 덧없이 느껴졌다는 고백이다.

이 작가는 "하지만 이제는 그 나라 잃은 유민 같은 슬픔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독자들과 위로를 주고 받은 경험과 더불어, 문학의 시대가 지나간 덕에 소위 '문단권력'이 약해지고 '좋은 문학'에 대한 담론을 독점하던 사람들이 힘을 잃었다는 깨달음 덕분이다. 또 그는 "인터넷에 글이 너무 많으니 오히려 글을 제대로 쓰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글쓰는 사람들의 무대는 더 넓어졌다"고 말했다.

표제작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에서 그는 "희망은 쓸쓸하기에 귀하다"고 말한다. "세상이 아름답다면 글 같은 건 왜 쓰겠는가 말이다. 세상이 아름다운데 아름다운 예술이 왜 필요하겠는가 말이다. (…) 어둠이 있어야 빛이 드러난다. 그래야 우리는 빛과 어둠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작은 촛불도 아름다운 것은 어둠 때문이다."

책에는 이처럼 글 쓰는 일에 대한 단상도 녹아있다. '무장시론'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그는 선하면서 악하고 서정적이면서 과격한 자신의 '모순'에 대해 말한다. 모순은 그에게 글쓰기 동력이자 무기다. 이 작가는 "예전엔 이런 모순 때문에 인생의 여러 부딪힘도 겪고 인간적으로 괴로웠다"며 "이제는 모순을 받아들이면서 창조적 에너지가 됐던 것 같다"고 했다.

이쯤 되면 '논객' 이응준이 내놓은 서정적이고도 고백적인 이번 산문집은 투항이나 변심이 아니라 또 다른 항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이미 새로운 책에 대한 계획도 세워뒀다. "신문 지면에 실었던 시사평론을 모아 시대를 정의하고 지성사를 정리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이 작가는 "작가라는 건 인간학자이고 근본적으로 사회학자가 아닐 수 없다"며 "작가가 깨어있다면 여러 분야를 섭렵하고 그 중에서 독자들에게 절실한 부분을 대신 울어주기도, 싸워주기도, 화해하기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