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사가 양자암호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할 기회를 얻었다. SK텔레콤이 자체 고안한 통신보안 기술인 ‘양자보안통신(QSC)’을 국제 표준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이르면 2년 뒤에 국제 표준으로 최종 승인을 받을 전망이다.
보안·비용 다 잡은 SKT, 양자통신 표준 '승기'
SK텔레콤은 다음달 8일까지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ITU-T 정보보호연구반 하반기 국제회의’에서 QSC를 국제 표준 과제로 개발하기로 결정했다고 29일 발표했다. ITU-T는 유엔 산하 정보통신 전문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통신 표준을 정하는 단체다. 스위스에 본사가 있는 이 단체는 코로나19 이후 첫 해외 회의 장소로 한국을 택했다. 지난 상반기 국제회의에서 SK텔레콤이 표준화 과제로 제안했던 QSC를 ITU-T가 받아들이면서 회의 장소가 한국으로 결정됐다는 설명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QSC를 국제 표준으로 만드는 작업을 한 뒤 ITU 회원국에 동의를 얻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며 “최종 승인 여부는 2~3년이 지나면 판가름 날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세계 양자통신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6886억원에서 2030년 24조5793억원으로 8년 내 14배 이상 커질 전망이다.

QSC는 양자암호 분야를 양분하는 두 기술인 양자키분배(QKD) 기술과 양자내성암호(PQC) 기술을 섞은 것이다. QKD는 별도 장비를 이용해 송·수신자만 풀 수 있는 암호키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상태가 달라지는 양자의 특성을 활용하다 보니 외부인이 암호키 탈취를 시도할 경우 즉각 감지가 가능하다. 해킹 원천 차단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다만 수십 ㎞마다 양자 증폭 장비를 설치해야 해 비용 부담이 크고 무선 적용이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PQC는 양자 컴퓨터가 풀기 어려운 수학 알고리즘을 활용한다. USB 크기만 한 칩을 송·수신 장치에 부착하거나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만 하면 돼 경제적이다. 하지만 양자컴퓨터가 고도로 발달할 경우 수학 알고리즘이 풀리면서 보안이 뚫릴 우려가 있다. 두 기술의 장단점이 다르다 보니 미국은 PQC를, 중국은 QKD를 장려하는 등 국가별로 미는 기술도 다르다.

SK텔레콤은 통신망별로 다르게 접근해 두 기술의 장점을 극대화하기로 했다. 데이터 중요도가 높고 전송량이 많은 유선 구역에선 보안 강도가 높은 QKD를, 그렇지 않은 곳에선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PQC를 활용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데이터센터 사이에선 QKD를, 데이터센터와 인터넷망을 연결하거나 기지국과 스마트폰 등을 잇는 말단 단계에선 PQC를 쓰겠다는 전략이다.

통신업계는 경쟁 관계에 있던 두 기술을 한국 통신사가 공존하려 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아르노 타데이 ITU-T 정보보호연구반 부의장 겸 브로드컴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는 “그간 두 기술 간 결합에 대한 논의가 없었는데 SK텔레콤이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고 평가했다.

고양=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