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은밀하고, 개인적인 공간인 침대는 그래서 한 번 사려면 누구보다 신중하게, 비싸더라도 인테리어에 보탬이 되는 제품을 사려 애쓰게 됩니다. 이렇다보니까 측정 불가한 이 욕망을 따라서 가격도 싯가처럼 따라 붙는 시장 중 하나입니다.
171년전 방식 그대로 장인이 한땀한땀 수작업에 천연 재료만 써서 31만 6천달러, 공개된 최고가가 4억 원에 달하는 모델을 파는 침대 회사예요. 헤스텐스가 말이란 뜻인데, 근대 유럽에서 말 안장을 만들어 납품하던 기술을 가져와 침대 제조업에 뛰어든 가족 기업이에요.
그런데 침대 매트리스 시장을 조사하다 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명품으로 등극한 값비싼 제품들이 아니더라도 뭔가 다른 핑계들, 헤리티지, '과학 기술' 등 여러 형태의 요소를 광고에 더하면 더할 수록 가격을 뻥튀기 할 수 있는 마케팅 놀이터 같은 시장이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침대가 남과 다른 지위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는,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14세인데, 이 분이 죽기 이틀 전까지 '군주의 침대'에서 국정을 수행했고, 당시 17세기에 다른 귀족들도 높은 프레임에 기둥을 천장까지 높여 밖에서 안을 잘 볼 수 없도록한 침대를 기본으로 사용했다고 해요.
럭셔리로 여겨지던 침대는 대도시가 더 고도화되고, 인구 집적도가 높아지면서 필연적인 위생문제에 부닥치게 돼요. 고흐가 고갱을 기다리며 그린 '아를의 침실' 속 아담한 침대처럼 방 한 구석에라도 나만의 절대적인 휴식처가 필요해지게 되고, 이런 욕망에 맞춰 내부 부품이나 소재를 개량해가며 점차 대량으로 공급하는 산업화 과정을 진행됩니다.
90년대 추억을 가지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분명 가구인데 '침대는 과학'이라고 하는 광고. 나중에 드라마 '모래시계 검사'로도 활약하게 되는 박상원씨의 대사는 본래 최대 고객인 신혼부부 공략이 너무 치열하다보니까, 허리 통증을 겪는 교체 수요에 눈으로 돌려 만든 광고였다고 해요. 이 대사를 남녀노소 기억할 정도가 되면서 이후에 점유율이 2배 이상 늘어서 지금도 국내 1위죠.
그런데 이렇게 30년째 이 순위가 바뀌지 않는 건, 본고장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템퍼씰리-썰타시몬스 구도의 점유율에 큰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2010년대 이후 한국의 지누스, 미국에 캐스퍼 같은 온라인 매트리스 회사가 안착해서 싸고 배송 편리한 제품을 공급해 점유율을 파고 들지만 시장의 리더는 여전히 100년 이상의 역사에 현금 동원력이 큰 기존 매트리스 기업들입니다.
침대 매트리스 회사들도 연구개발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코일 스프링, 티타늄 등 금속을 혼합해 코일이 잘 꺼지지 않게 받쳐주는 특허를 쓰거나 사람 피부에 직접닿는 섬유 소재, 균일한 품질을 관리하는 것 외에 크게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매트리스시장은 이런 함정 탓에 공개된 점유율 데이터도 흔치 않고, 전체 시장 규모도 매년 5~6% 지루한 성장을 하는 산업이기도 하죠.
이렇게 만들어진 템퍼 페딕은 2013년에 미국 매트리스 원조 기업인 씰리를 인수하면서 썰타-시몬스와 함께 1, 2위로 시장을 과점하게 됩니다. 원조 매트리스 기업인 씰리는 1881년 미국 최대 목화 농장이 있던 시카고에서 탄생했는데, 압축한 면화로 만든 매트리스 품질을 비약적으로 높이게 된 곳이죠. 시몬스가 1870년에 탄생했으니까 미국내 매트리스 시장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지역마다 인수합병으로 지배력을 키워왔다고 보면 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 공급망이 무너지고 이 과정에 대표적으로 석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선을 넘기 시작했죠. 덩치가 큰 매트리스 유통 비용이 자연스럽게 늘어납니다. 여기에 철광석과 원자재 값이 같은 기간 2배씩 뛰면서 침대 매트리스 회사들 수익성에 크게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매트리스 기업이 비상장으로 돌아섰지만, 템퍼씰리 인터내서널은 배당을 꾸준히 진행하고, 남은 돈도 영국 드림스, 매트리스펌 등 인수합병에 쓰고, OEM 라이선스, 메리어트그룹 계열을 포함한 호텔 납품 비중 80%로 비교적 안정적 사업 모델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해까지 팬데믹으로 인한 호텔 납품의 감소, 공급망 악화로 타격을 입었지만 다른 경쟁사들보다 빠르게 실적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도 해요.
물론 마냥 좋은 회사는 역시 없습니다. 할인으로 수익을 부풀리던 시절이 지나고 있기 때문인데요. 대부분의 소매 시장이 그렇듯 미국 내 침대 구매도 디지털이 이제 대세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퍼플닷컴, 캐스퍼 등 저가 온라인 경쟁사에 대한 대응은 아직 더디다는 점은 고려할 요소입니다.
한정된 회사가 점점 독식해나가고, 오래된 나사 기술력, 혹은 멋진 음악과 모델을 내세워 가격을 올려받는 건 마땅한 대안이 없는 소비자들에겐 어쩐지 얄미운 일입니다. 꼭 우주급 기술력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합리적인 가격에 몸을 누일 수 있는 매트리스 시장이 더 뜨거워지기를 조심스레 바라봅니다.
김종학기자 jhkim@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