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 주요 사업비를 25% 삭감한 예산안을 통보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연구개발(R&D) 카르텔’을 지적한 여파다. 일부 과학기술 협단체는 예산이 많게는 70%까지 삭감돼 내년도 활동에 크게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尹 'R&D 카르텔' 지적에…과기부, 산하기관 예산 최대 70% 깎았다
10일 과학계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NST 산하 25개 출연연의 내년도 주요 사업비로 약 9000억원을 책정했다. 주요 사업비는 전체 출연연 예산(올해 기준 5조8655억원)에서 정부 수탁과제와 인건비, 경상비를 제외하고 순수 R&D 활동에 투자하는 예산이다. 기존 1조3000억원 규모에서 25% 줄어들었다. 과기정통부는 이번주까지 각 출연연으로부터 의견을 받은 뒤 최종안을 마련해 기획재정부와 협의할 예정이다. 전체 출연연 예산에서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정부 수탁과제 사업 예산 손질도 막바지 단계다.

출연연별로 살펴보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주요 사업비로 기존 대비 29% 줄어든 947억원을 통보받았다. 신규 R&D 예산은 모두 삭감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주요 사업비 1340억원에서 26% 빠진 990억원가량을 통보받았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기존 예산안에서 28% 줄어든 475억원을 전달받았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예산은 23% 삭감된 398억원이다.

정부 수탁과제 비율이 낮은 일부 출연연은 주요 사업비에서 10%만 감소해도 적자 운영을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출연연 고위 관계자는 “주요 사업비로 추진하려던 연구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부 수탁과제를 하는 연구팀과 협업 구조를 짜는 등 긴축 재정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 관련 단체의 예산은 더 큰 폭으로 감소했다. 1966년 설립된 국내 최대 과학기술인단체인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정부로부터 받는 1년 예산(120억원)에서 70% 줄어든 40억원을 배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학회지 발간, 포럼 개최 등을 하는 대표 핵심 사업인 학술 활동 지원 예산 76억원이 전액 삭감되며 내년도 기관 운영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과총 측은 세계 한인 과학기술인 대회를 앞으로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을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은 여성과학기술인 지원센터 설치 운영(56억원), R&D 지원사업(189억원) 예산에서 두 자릿수 삭감이 이뤄졌다. 박사급 경력 보유 여성 연구자의 활동 지원 사업에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유럽과 미국의 학술원(아카데미)과 소통·교류하는 창구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도 1년 지원 예산 40억원이 절반으로 깎였다. 해외 노벨상 수상자를 초청하는 학술대회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예산을 심의하는 단계로 출연연 및 기재부와 협의를 거쳐 최종안을 이달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