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은 잘 알려진 명화 속에 그려진 의학적 증세를 발견하고 분석하는 내용으로 컬럼을 진행해왔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의학과 미술 간의 교차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소재로 살펴볼 이미지들은 우선 사진 매체이다. 특히 예술사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일반적 사진(vernacular photography)들로, 19세기 영국의 정신병증을 가진 중산층을 위한 홀로웨이 요양원(Holloway Sanatorium) 의료사례 기록집의 사진들이다. 사진은 매체의 속성상 객관적 진실을 그대로 포착해 전달하리란 기대감을 주는 데다 의학적 기록을 목적으로 한 사진은 객관성을 담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진들에서조차 미술사가들은 의학 혹은 과학적 재현물의 관습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의미를 발굴하기도 한다. 정신병으로 입원 혹은 수용된 환자들의 의료 차트 사진이 환자의 현재 상태에 대한 기록 이상의 어떤 내러티브를 제공할 수 있으며, 그 안에 일말의 미학적 의의가 존재할 수가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해 답하면서 의학과 예술 간의 묘한 관계성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돈 있는 집안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찍힌 사진들
[그림1 복원된 홀로웨이 요양원 내부]
홀로웨이 요양원은 1885년에 런던 외곽 써리 지역에 개원한 곳이다. 여타 정신병 수용소와 달리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는 중상류 계급을 대상으로 하여 수려한 고딕 복고풍(Gothic Revival) 건물과 화려한 내부 장식, 잘 가꿔진 조경, 중상류 계급이 즐길 수 있는 연극, 사교춤, 크리켓 게임, 승마 등을 위한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주요 고객은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가정 출신이었고, 당대 가장 발전된 치료법이나 약물을 사용했다고 평가받는다.

이곳 수용인원의 절반은 문제 행동을 보여 일상으로부터 ‘휴식’을 필요로 하는 자발적 수용자, 절반은 정신병을 가진 것으로 정식 등록된 환자들이었다. 물론 그들의 공통적인 목적은 ‘완치되어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요양원의 의료진은 이러한 환자들에 대한 꼼꼼한 기록을 의료사례 기록집으로 모아 남겨두었다. 일차적으로는 요양소 내부적 사용 목적을 갖는 기록집이지만 이차적으로는 환자 혹은 그 가족들에게 환자의 병세가 호전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기 위한 용도이기도 할 것이다.

의학 혹은 과학적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대상을 미학적으로 다루려 들지도, 혹은 해당 이론에 꿰맞추려 들지도 않는 객관적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19세기 유럽에서 의학적 목적으로 찍는 초상사진은 두 인물이 주도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우연하게도 1850년대 써리 지역 정신병원(Surrey County Asylum)의 의사 겸 여성병동 관리자이면서 런던사진협회(Photographic Society of London) 창립멤버인 휴 다이아몬드(Hugh Diamond), 그리고 프랑스 파리의 살페트리에 병원(Salpêtrière Hospital) 신경과 의사 장-마르텡 샤르코(Jean-Martin Charcot)와 작업한 의학사진작가 알베르 롱드(Albert Londe)이다.

다이아몬드의 경우 본인이 찍은 사진을 환자들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병원에 전시하여 환자들의 상태 개선에 도움이 되길 기대했다. 샤르코는 자신의 논문에 실릴 신경학적 질환의 시각자료 용도로 사진을 찍었다. 따라서 다이아몬드의 사진은 그림 2에서 보는 것처럼 환자의 시선이나 표정이 어떤 점에서 사회적으로 부적합한지 드러내는 데 치중했고, 롱드의 사진은 신체나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특정 신경학적 증세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집중한다. 각기 다른 방식을 채택하지만 이 의학사진들은 공통적으로 사진의 투명성 혹은 진실성, 즉 객관성을 신봉한다. 또한 사진의 모델, 즉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타자화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돈 있는 집안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찍힌 사진들
[그림 2. 휴 다이아몬드, 여성 환자의 초상, 써리 지역 정신병원, 1848–58. 로스앤젤레스 폴 게티 뮤지움 소장]
[그림 3. 알베르 롱드, 히스테리증을 가진 여성의 하품 사진 시리즈, ca. 1890. 장-마르텡 샤르코의 『살페트리에의 새로운 도상학(Nouvelle iconographie de la Salpêtrière)』 논문집, vol. 1. Plate XVIII]
이러한 관습을 따라, 통상적인 의료기록 사진은 홀로웨이와 같은 써리 지역에 있던 유얼 뇌전증 환자수용소(Ewell Epileptic Colony)의 의료기록부의 사례(그림 4)와 같이 부동자세의 개별 환자를 정면에서 찍은 직사각형의 타이트하게 프레임 된 상반신 사진을 사용하며, 그 옆에는 사진에서 식별 가능한 증세나 특이행동, 이 사진이 언제 찍힌 것인지(예를 들어 입원 당시, 몇차 치료 시, 퇴원 시 등등)와 같은 객관적 의료기록을 기록한다.
돈 있는 집안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찍힌 사진들
[그림 4. 써리 유얼 정신병원의 환자 기록부, 1903년]

그런데 홀로웨이 요양소의 의료사례 기록집의 사진들은 그러한 동시대의 여타 의료기록 사진들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여 흥미를 끈다. 홀로웨이 사진들은 다양한 형태의 프레임을 가지며 사진을 찍는 시기에 대한 통일된 지침도 없고 환자들이 카메라를 바라보는 시선 처리와 포즈가 매우 다양하게 드러난다. 또한 종종 단체 사진을 기록부에 남기기도 하고, 일부 환자들의 경우 화려하게 치장하고 사진을 찍는데, 찍힌 장소가 요양소라는 것도 하물며 이 사람이 특정 정신질환을 가졌다는 것도 드러나지 않는 등 일반적인 중산계층의 초상사진으로 여겨질 만한 사진들을 의료기록부에 사용하는 점에서 의료사진의 관습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예를 들어 그림 5는 여러 여성 환자들을 모아 찍은 사진으로 이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반사회적 기질로 인해 입원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부의 경우는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이나 잠옷에서 일상복으로 갈아입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의 심한 증세를 보였다 하니 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병원 스태프들의 상당한 보조와 지휘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결과, (비록 몇몇은 카메라를 똑바로 보지 못하거나 두 손을 억지로 포개어 놓은 티가 나기는 하지만) 마치 외유 나온 일반 여성들이 즐거운 한때를 사진으로 남기기라도 한 듯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기록부에 적힌 그들 개개인의 정신질환 증상에 대한 의학적 소견들과는 달리 그 옆에 붙인 사진에는 타인과 교류하며 정상적 삶을 사는 사교적 여성들로 이미지를 조작한 셈이다.
또 다른 사례인 그림 6은 ‘마리아 W.’로 표기된 여성환자의 기록부 사진으로, 고급 석재의 커다란 기둥을 가진 홀로웨이의 건축물을 배경으로 화려한 머리 장식과 코르셋을 꽉 조이고 러플장식을 강조한 드레스를 입은 마리아의 옆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19세기 말 패션잡지에서 유행하던 모습을 따라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결과 마치 거대한 맨션 안주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듯한 이미지를 준다. 아마도 이 사진들이 이렇듯 객관적 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통상적 의료기록 사진의 관습과 다른 조작된 이미지를 제공하는 면모는 홀로웨이가 정신질환을 가진 부랑자들이 모인 수용소가 아니라 중산계층의 가족이 입원시키는 고급 요양원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진들은 환자의 가족에게 그들이 많은 돈을 투자해 환자가 받게 한 치료가 좋은 효과를 보이고 있고 따라서 본 환자가 곧 원래의 사회적 기능을 회복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게 할 목적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돈 있는 집안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찍힌 사진들
[그림 5. 단체사진. 왼쪽부터 수전 B., 엘렌 M., 에이다 H., 에밀리 제인 B.; 앉은 이들: 루이자 T., 에밀리 고든 B., 의료기록이 없는 여성. 홀로웨이 요양소 의료사례기록집 번호 3473/3/1/1/1. 써리 역사 센터 소장]
[그림 6. 마리아 W.의 사진. 홀로웨이 요양소 의료사례기록집 번호 3473/3/1/1/1. 써리 역사 센터 소장]

홀로웨이의 의학기록 사진들은 객관적 임상자료로써의 성격과 미학적 대상으로써의 성격, 그 사이의 긴장선 상에 존재한다고 하겠다. 온전히 미학적으로 볼 수 없게 하는 아마추어적 성질 즉 조명, 노출, 스테이징 등에 있어서의 미숙함은 의료기록적 사진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구성하는 형식 요소들을 통해 사진 속 모델들의 주체성을 드러내는 내러티브를 형성하고 새로운 맥락에서 의미작용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홀로웨이 의료사례기록집 속 사진들은 명백히 미학적 특질을 갖는다. 의학이 순수하게 객관화된 과학의 차원에 성전화되어 존재한다는 통념은 실은 신화와도 같다. 의학 또한 사회학적, 자본주의적 맥락 속에 존재하며, 따라서 의학적 초상은 그러한 맥락을 매개하기 마련인 것이다.
이번 컬럼은 필자의 은사님이 발굴하고 연구 중이던 자료들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참고자료 Susan Sidlauskas, “Inventing the medical portrait: photography at the 'Benevolent Asylum' of Holloway, c. 1885-1889”, Med Humanities 2013; 39: 2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