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싶은 여성들을 위한 회복 가이드…신간 '재가 된 여자들'
'번아웃'의 진원지 회사…"스트레스 풀려면 쉬고, 웃고, 울어라"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를 만나면 우리의 반응은 둘 중 하나다.

싸우거나 도망가거나다.

두 경우 모두, 몸은 기민하게 반응한다.

호르몬 에피네프린은 근육으로 혈액을 보내고, 심장은 뛰며 집중력이 높아진다.

스트레스 반응이다.

우리 몸은 모든 자원을 동원해 근육에 집중한다.

이 때문에 다른 기관의 기능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소화 기능은 느려지고, 면역 기능도 떨어진다.

생식기능, 재생 기능도 마찬가지로 약화한다.

운이 좋아 사자에게서 도망치는 데 성공할 경우, 우리 몸의 '적색경보'인 스트레스는 서서히 사라지고, 몸은 항상성을 되찾는다.

그런데 만약 사자를 매일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초원이나 밀림이 아니라 도심 한복판에 있는 직장에서 말이다.

미국 작가 에밀리 나고스키와 어밀리아 나고스키 피터슨이 함께 쓴 신간 '재가 된 여자들'(원제 Burnout)은 스트레스가 초래한 '번아웃'을 극복하는 방안을 모색한 책이다.

자매인 두 저자는 남녀 차별이 여전한 사회 환경 속에서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도 조명했다.

'번아웃'의 진원지 회사…"스트레스 풀려면 쉬고, 웃고, 울어라"
◇ 스트레스의 화약고 '회사'…"신체활동 활발히"
어디를 가나 이상한 상사는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스트레스 반응을 부추긴다.

현대 도시인의 스트레스 원인은 사자가 아니라 사람인 셈이다.

가령, 말이 안 통하는 상사가 회의에서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반복하면 당신의 몸속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비롯해 아드레날린과 글리코겐이 샘솟는다.

하지만 회의실에 앉아 상사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모난 돌은 정을 맞을 수 있다.

정 맞지 않으려면 사회적으로 적절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문제는 초원과는 달리 회사에선 그런 상사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몸은 '도망쳐~'라고 말하지만,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

그런 상황은 매일 반복된다.

그 결과물이 만성 스트레스다.

이는 혈압을 지속해 올린다.

졸졸 흐르는 물을 처리하도록 진화한 혈관에 소방 호스를 줄기차게 틀어놓는 것과 같은 상황이 우리 몸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혈관은 점차 마모돼 심장병 위험을 높이고, 소화기관, 면역기능, 호르몬은 비정상적으로 가동한다.

이는 각종 만성질환과 악성질환의 원인이 된다.

저자들은 몸의 언어인 신체활동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느리고 깊은 호흡은 스트레스 반응을 낮춘다.

편안하고 우호적인 사회교류도 일정 부분 도움을 준다.

다른 사람과 함께 웃으면 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가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배우자와 6초간 입맞춤하거나 20초간 포옹하는 것도 안정감을 줄 수 있다.

반려견 산책도 도움이 된다.

진짜 힘들 경우에는 방문이나 화장실 문을 잠그고 엉엉 우는 것도 효과가 있다.

우는 행위가 감정을 정화해 스트레스 지수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적당한 휴식도 스트레스를 줄인다.

저자들은 하루 24시간 중 42%, 그러니까 10시간 정도는 쉬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자들은 "매일 10시간을 지킬 필요는 없다.

일주일이나 한 달의 기간을 두고 일일 평균 10시간 휴식하면 된다"며 "어쨌든 그만큼은 꼭 쉬어야 한다"고 말한다.

'번아웃'의 진원지 회사…"스트레스 풀려면 쉬고, 웃고, 울어라"
◇ 여성의 스트레스 부추기는 '가부장제'
회사생활뿐 아니다.

가부장제라는 사회 시스템 자체가 스트레스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피해자는 주로 여성이다.

여성들은 스트레스를 더욱 많이 받는 환경에서 자란다.

일단 사회적 환경 자체가 여성들에게 불친절하다.

저자들에 따르면 미국 여대생 가운데 대학 재학 중 성폭행 또는 성폭행 시도를 당한 이들은 20%에 달한다.

성범죄자의 95%는 남성이다.

미국에서 남성 또는 소년이 저지른 대규모 총기 난사 사건은 2018년까지 십 여건에 달하며 그중, 여러 명이 여성이나 소녀의 감정적 거부나 성적 좌절, 질투를 범행동기로 뽑았다고 한다.

총기 난사범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자신의 파트너 또는 모친이나 아내, 여자 친구, 자식을 포함한 가족을 살해했다.

불안정한 환경뿐 아니다.

여성의 인권도 오랜 세월 밑바닥 수준이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도 나오듯, 영국 여성은 재산 상속도 받지 못했다.

여성의 모든 소유물은 합법적으로 남편의 재산에 귀속됐다.

여성은 재산을 소유할 권리를 1882년에 처음 얻었다.

이름을 소유할 권리는 1924년에, 남편에게 강간당하지 않을 권리를 얻게 된 건 1991년이 되어서였다.

많은 여성이 사회에 진출했지만, 여전히 가사 노동은 여성의 몫이다.

세계적으로 여성들은 양육 및 가사에 투자하는 시간이 일주일에 40시간에 달한다.

반면 남성이 같은 일에 투자하는 시간은 주당 1시간 30분에 불과하다.

저자들은 여성들이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가부장제가 자리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들은 "게임은 조작됐다.

여성과 소녀, 특히 유색인종 여성과 소녀들은 정부를 비롯한 권력의 제도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고 있다.

그것이 가부장제"라고 말한다.

책읽는수요일. 박아람 옮김. 384쪽.
'번아웃'의 진원지 회사…"스트레스 풀려면 쉬고, 웃고, 울어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