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약한 냉방시설에 선풍기 의지…거동 힘든 어르신 대다수
수도권에 폭염이 닥친 19일 인천 동구 괭이부리마을 쪽방촌.
미로 같은 골목으로 이어진 쪽방촌은 한증막처럼 뜨겁고 습했고, 눈마저 따가운 햇볕이 돌바닥을 데우자 그 열기는 다닥다닥 붙은 쪽방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여름 초입인 6월인데도 낮 최고 기온이 32도까지 오르면서 쪽방촌 곳곳은 가만히 서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를 만큼 무더웠다.

환기도, 냉방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쪽방촌 주민들은 이례적으로 일찍 찾아온 폭염에 근심스러운 모습이었다.

혼자 거동조차 하기 어려운 박용순(78) 할머니 역시 선풍기 1대에 의지해 힘겨운 여름 나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침대와 보행 보조기만으로 꽉 차는 작은 방 안에서 낡은 선풍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갔지만 답답한 열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박씨는 "작년에 허리 수술하고 1년 넘게 누워서만 생활하고 있는데 벌써 더워져 너무 힘들다"며 "정 더우면 주방 시멘트 바닥에 나가서 앉아 있다가 들어오고는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에어컨이 있긴 있는데 언젠가 고장 난 뒤로 고치질 않아서 아예 켜지지도 않는다"며 "사람이 사는 게 아니고 그냥 지금 딱 죽으면 좋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날 군데군데 빈집을 빼고 사람이 사는 쪽방은 대부분 방충망만 치고 현관문은 활짝 열어둔 채였다.

창문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잘 열리지 않는 쪽방에서 이따금 부는 바깥바람으로나마 환기를 시키기 위해서다.

현관을 열고 쉬던 김모(80) 할머니는 "여름에는 밖에 있으나 집에 있으나 온도가 똑같다"며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데 부엌에서 요리라도 하면 뜨거워서 살 수가 없다"고 했다.

역시 혼자 거동이 어려운 김씨는 선풍기 1대와 공기를 순환시키는 소형 서큘레이터 1대를 놓고 생활하고 있었다.

방 바로 옆 좁디좁은 부엌에 손바닥만 한 환풍기가 하나 달렸지만 습기와 열기를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평소 공용 화장실을 쓰는데 걷기가 버거우니까 벽에 달아둔 줄을 잡고 가거나 의자를 갖고 움직여야 한다"며 "더 더워지면 그것조차 힘들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1년째 쪽방촌 주민 2명을 돌보고 있는 요양보호사 문성매(55)씨도 "쪽방은 대부분 화장실이 없어 200∼300m 떨어진 공용 화장실을 써야 하는데 그마저 평지가 아니라 노인들은 '구루마'를 끌고 가야 한다"며 "쪽방은 겨울은 춥고 여름은 너무 더워서 땀이 줄줄 나는데 어쩔 방법이 없다"고 걱정했다.

실제 쪽방촌은 다른 주택보다 냉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고 홀몸인 취약계층 노인이 많아 폭염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 대다수는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해, 요양보호사 도움 없이는 덥고 비좁은 방에서 한 발짝 나서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현재 인천시가 폭염에 대비해 집중 관리 중인 쪽방 주민과 여인숙 거주자는 동구 107세대(144명), 중구 45세대(50명), 계양구 76세대(76명) 등 228가구다.

인천시 관계자는 "작은 방 한 칸이 전부인 쪽방이나 여인숙은 시설이 낡고 취약한 경우가 많다 보니 시의 관리 대상"이라며 "쪽방촌에서 자립해 다른 곳으로 이주한 주민도 취약계층으로 파악되는 경우는 따로 사례 관리를 한다"고 말했다.

시는 지난 1일부터 9월 30일까지 폭염에 취약한 쪽방 주민과 노숙인들의 보호 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기간 시 공동대응반은 노숙인 밀집 지역과 쪽방촌을 주기적으로 순찰하고 긴급 구호 물품을 지급하거나 무더위 쉼터를 안내한다.

앞서 전날부터 서울과 광주를 비롯해 경기·강원·전남·전북 등지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다.

때 이른 무더위에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17일까지 전국에서 104명이 온열 질환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