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탈북민 온라인 커뮤니티 '새터민들의 쉼터' 3만8천 회원
"이혼당해 쫓겨난 탈북여성 임시거처도 지원해야"
[탈북人] ⑦박봉선 쉼터 대표 "법률상담 절실…브로커 움직임 재개"
"(탈북민들이) 남한에 와서 사기를 많이 당하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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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탈북민 온라인 커뮤니티 '새터민들의 쉼터'를 운영하는 박봉선(45) 대표는 법률문제가 탈북민의 정착에 가장 어려운 점이라며 최우선으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2년 입국한 박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으로 위축된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자 2021년 5월부터 쉼터 2대 대표를 맡았다.

새터민 쉼터는 탈북민과 한국 관계자, 해외교포 등 약 3만8천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탈북여성의 이혼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며 "살 집도 없이 쫓겨난 탈북여성이 잠시나마 아이와 함께 머물 장소를 정부 기관 등에서 마련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코로나19 발발 이후 가족과 연락이 끊겨 한동안 브로커를 통해서도 연락하지 못하다 작년 9월 큰 언니와 연락이 닿았다"며 "최근 상황이 조금 풀리면서 탈북 브로커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탈북人] ⑦박봉선 쉼터 대표 "법률상담 절실…브로커 움직임 재개"
다음은 박 대표와 문답.
-- 북한에서 생활은 어땠나.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부근 탄광마을인 함경북도 새별군(경원군)에서 살았다.

김일성 사망 이듬해인 1995년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쌀 배급이 중단되면서 아사자가 생겨났다.

63세였던 아버지도 힘없이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셨다.

나도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개암·쑥·도토리 등을 찾으러 산과 들로 다니지 않았다면 나도 아버지처럼 됐을 것 같다.

-- 탈북 이유는 무엇인가.

▲ 오빠와 두 언니가 출가해 늦둥이인 내가 21살에 탄광에서 권양기(지하 갱도로 인부와 석탄을 옮기는 기중기와 유사한 기계)와 펌프 운전공으로 일하며 세대주 역할을 해야 해 힘들었다.

친구 집에서 가루세제를 보고 깜짝 놀라 어떻게 구했는지 물었다가 중국에 가서 한두 달 일하면 1년 동안 죽 대신 옥수수밥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솔깃했다.

어머니께 길주군 삼촌 댁에 간다고 거짓말하고 1999년 10월 두만강을 건넜다.

-- 중국에서 생활은 위험하지 않았나.

▲ 친구의 친척이 있는 광둥성 광저우, 선전 쪽으로 내려가 일했기 때문에 인신매매 위험은 적었다.

에어컨도 없는 대형 완구공장에서 청소를 하다가 온몸에 땀띠가 생기는 등 건강이 나빠졌다.

거래처 한국 사람들을 알게 돼 광저우 A완구로 옮겨 2년 정도 일하다가 우연히 한국 TV 프로그램에 탈북자가 나와서 얘기하는 걸 보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 한국 입국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

▲ 탈북자와 브로커 등 8명이 메콩강을 건너 주태국 한국대사관에 가려다가 태국 경찰에 체포됐다.

현지에서 한 달간 구금됐다가 방콕으로 이동해 난민수용소에서 8개월간 구금됐다.

한국대사관 인터뷰를 거쳐 2002년 월드컵이 열리던 시기에 비행기로 한국에 왔다.

국정원, 하나원 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목사가 된 전 국정원 직원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고 살고 있다.

화장품 사업도 하고 있다.

-- 북한에 두고 온 가족 소식은 알고 있나.

▲ 코로나19로 인해 고향 가족 소식이 끊겨 도움을 줄 수 없었는데 작년 9월 큰 언니와 다시 연락됐다.

코로나19 관련 통제가 약간 풀린 것 같다.

코로나19 여파로 입국을 막았던 중국이 조금씩 문을 여니까 브로커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모셔 오려고 브로커에게 여러 차례 심부름을 보냈는데 계속 실패해 우울증이 생기기도 했다.

광둥성에 같이 갔던 친구는 중국과 북한에 오가다가 잡혔는데 고문을 못 이겨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 인천 남동구에 탈북민이 많이 거주하는 이유는.
▲ 2021년 인천 내 탈북자 2천969명 가운데 남동구에 약 2천명이 거주한다.

남동공단에 휴대전화 부품 공장 등 탈북 여성을 위한 일자리가 많고 교통도 좋아 많이들 이사한 것 같다.

(남동구는 대한민국에서 탈북민이 가장 많이 사는 기초자치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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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人] ⑦박봉선 쉼터 대표 "법률상담 절실…브로커 움직임 재개"
-- 쉼터는 어떤 활동을 하나.

▲ 2008년 5월 개설돼 올해로 15년째다.

탈북민들이 한국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유하고 아픈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김모 전 대표 부부가 주도해 만들었다.

북한에서 함께 탈출했지만, 제3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생이별했다가 쉼터를 통해 다시 만나는 사례가 많았다.

탈북민 사이에서 유명해지면서 현재 회원 수가 3만8천명으로 늘었다.

남북 어르신(65세 이상)에 북한 음식 대접, 비무장지대(DMZ) 평화나눔 사과따기 체험 등 다양한 봉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쉼터 활동 중 재미나거나 기억에 남는 일화는.
▲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면서 회원끼리 연인이 되고 남남북녀 커플로 결혼까지 골인하기도 했다.

탈북 모자가 제3국을 거치는 탈북 과정에서 헤어졌던 딸을 애타게 찾고 있었는데 4년 만에 쉼터를 통해 찾은 사례도 있다.

먼 지역이 아닌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다.

-- 탈북민 중 여성이 70%에 달하는데 정착에 어려움은 없나.

▲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기간에 남성들 일을 못 하게 되면서 여성들이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여성들이 장사하기 위해 두만강 건너 중국을 왔다 갔다 하다가 북한 밖 세계를 알게 되면서 탈북을 많이 했다.

일부 여성은 인신매매로 팔려 갔다.

한국에 와서 결혼한 뒤 문화적 차이나 경제 사정 등으로 이혼하는 탈북 여성이 많다.

쫓겨나다시피 나와 아이들 데리고 갈 데가 없는 탈북 여성을 위해 임시 거처할 공간이 마련되면 좋겠다.

-- 한국 당국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 한국 법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이 사기를 자주 당하는 것이 가장 열악한 부분이다.

탈북 여성이 남편에게 명의를 빌려줬다가 이혼당한 후 빚더미에 앉게 되는 사례도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법률 상담과 피해 지원 등을 해주기를 바란다.

법적 지식이 있는 분들이 쉼터 홈페이지에서 글을 남겨주거나 질문에 답도 해주면 좋겠다.

[탈북人] ⑦박봉선 쉼터 대표 "법률상담 절실…브로커 움직임 재개"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