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나의 축소기. 제작 목표 항공기를 약 1/5 크기로 줄였다. 사람이 탑승하지 않는 무인기 버전이다. 이시은 기자
플라나의 축소기. 제작 목표 항공기를 약 1/5 크기로 줄였다. 사람이 탑승하지 않는 무인기 버전이다. 이시은 기자
미래항공모빌리티(AAM)는 도심 내부뿐만 아니라 도심과 도심을 연결할 수 있는 항공 모빌리티의 새로운 개념입니다. 기존까지 시장에 대두해 온 도심항공교통(UAM)과 지역 간 항공교통(RAM)을 모두 포괄합니다. ‘하늘을 나는 택시’로 유명한 미국 조비 에비에이션처럼, 국내에도 미개척 하늘길을 열겠다는 업체가 나타났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AAM 분야 국내 최초 스타트업인 플라나의 R&D센터 현장을 직접 찾아, 토종 AAM 기체의 미래 전망을 엿봤습니다.

서울에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거리, 한적한 도로를 지나자 3000평 부지의 플라나 R&D센터가 나타났다. 지난해 말 경기 이천시 마장면에 마련된 이 센터엔 40명 상당의 엔지니어가 항공기 시제품 조립을 위해 바쁘게 오갔다. 항공기 몸체를 들어 올리는 크레인, 운항 시뮬레이션을 위한 가상현실(VR) 기기, 열을 가해 탄소섬유 소재를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낼 수 있는 거대한 압력솥(오토 클레이브)은 한 공간에 얽혀 상상 속 기체 모습을 실제로 구현하고 있었다. 국내 최초로 도심 내부, 그리고 도심 간 ‘에어택시’에 쓰일 수직이착륙 항공기를 만들고 있는 스타트업 플라나의 심장부 모습이다.

압력솥에 ‘굽는’ 6인승 비행기의 등장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UX 목업, 오토 클레이브, 조립동 내부, '샌딩 부스' 등 특수 목적 공간. 엔지니어 약 40명이 상주하고 있다.  /플라나 제공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UX 목업, 오토 클레이브, 조립동 내부, '샌딩 부스' 등 특수 목적 공간. 엔지니어 약 40명이 상주하고 있다. /플라나 제공
2개 동으로 이루어진 플라나 R&D센터에 들어서면 입구의 ‘사용자경험(UX) 목업’이 가장 먼저 시선을 훔친다. 약 6m 길이의 목업은 플라나가 2028년 만들어낼 항공기의 내부 구조를 본떴다. 플라나는 15m 길이에 6개의 소형 프로펠러 날개를 가진 6인승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공항이 필요하지 않고 소음이 적어 서울 중심에서 탑승객을 태울 수 있으며, 전기와 항공유를 동시에 쓰는 하이브리드 형태를 기반으로 시간당 300㎞ 거리를 비행하는 첫 기체다. 배터리 기술과 항공기 제조 기술의 발달로 기체 패러다임도 변화하는 셈이다.

항공기 꼬리 부분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목업은 실제와 제원이 비슷하다. 좌석엔 4개의 의자가 비치되어 있고, 조종사 자리엔 각종 계기판의 사진이 붙어 있다. 내부 공간 크기는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으며, 여닫을 수 있는 문을 부착해 사람이 실제 타고 내리는 과정을 시험할 수 있게 했다. UX 조직 책임자인 이재현 플라나 이사는 “플라나가 만드는 6인승 수직이착륙 항공기는 자동차와도, 일반 여객기와도 공간의 UX가 다르다”며 “탑승자가 가장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구조를 직접 찾아내고 있다”고 했다.

왼편에 위치한 오토 클레이브는 항공기의 외형을 만드는 핵심 장치다. 고온과 고압을 가할 수 있어 탄소섬유의 형상을 빚거나 단단히 하는 용도다. 플라나 현장 관계자들은 이를 “탄소를 굽는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사람 키보다 두 배가 높은 원통형의 장치로, 자동차나 항공기 제작사에서 자주 쓴다. 멸균을 위해 제약 회사에서도 사서 쓴다. 도자기 공방으로 치면, 일종의 거대한 가마와 같다.

현장에는 오토 클레이브를 통해 만들어진 다수의 항공기 파츠가 엔지니어들의 미세 정비를 받고 있었다. 플라나는 올해 말 국토교통부의 한국형 도심상공교통 실증사업(K-UAM 그랜드챌린지) 참가를 위해 3m 길이의 축소기를 제작하고 있다. 실제 기체의 1/5 정도 크기로 무인기를 만들어 성능을 검증받는 것이다. 붉은색 크레인은 시제기 부품을 옮긴다. 뒤편엔 각종 공구가 모인 ‘머신 샵’, 정밀한 커팅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샌딩 부스’, 오토 클레이브보다 작은 부품을 제작해 내는 ‘드라이 오븐’, 도색 작업을 하는 ‘스프레이 부스’ 등 공간이 설치돼 있다. 전투기나 항공기 제조사에서 일하던 플라나 엔지니어들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전체 인력의 70%가 연구원 출신 석·박사로, 한국 최초 초음속 비행기 ‘T-50’을 개발한 류태규 전 국방과학연구소 국방첨단과학기술연구원장도 플라나의 부사장으로 합류한 상태다.

두 번째 조립동은 기체가 하늘로 향하기 위한 전초기지다. 시제기 전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대형 크레인을 중심에 놓고, 전후방엔 항공 운항을 위한 VR 기기를 설치했다. 첫 번째 VR 목업은 가상의 비행장을 구현해 이착륙을 테스트할 수 있다. VR 기기와 조이스틱 형태의 조종간을 연동했는데,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HMD)를 쓰면 회색 활주로 위에서 기체를 직접 띄워볼 수 있다. 맞은편엔 원형 디스플레이와 태블릿 PC를 통해 조종사 입장에서 펼쳐지는 상공을 재현했다. 조종석을 디스플레이가 감싸는 구조인데, 마찬가지로 조이스틱 형태의 조종간을 통해 가상의 기체를 움직일 수 있다. 크레인은 시제기 테스트 때 활용한다. 크레인을 매달고 정상적으로 구동하는 기기가 R&D센터 뒤편 공터에서 비행을 할 수 있다.
두 번째 조립동에는 비행 시뮬레이션을 위한 기기가 설치되어 있다. 가상현실(VR) 기기를 조종사 좌석 및 조종간과 연동시켰다.  /이시은 기자
두 번째 조립동에는 비행 시뮬레이션을 위한 기기가 설치되어 있다. 가상현실(VR) 기기를 조종사 좌석 및 조종간과 연동시켰다. /이시은 기자

日 유학·MIT 거쳐 현대차 UAM 책임자로

플라나를 창업한 김재형 대표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1983년생인 그는 고교 시절 한일 공동 장학생 프로그램 3기로 선발돼 일본 나고야대에서 유학했다.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 그는 2007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로 건너가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로켓은 남자의 로망”이라는 그는 4년 반 동안의 미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2012년 병역특례제도를 통해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김재형 플라나 대표
김재형 플라나 대표
4년간 자동차 연구개발을 하던 그는 현대차가 UAM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며 해당 신사업을 전담하게 됐다. 사내에서도 귀한 항공과 출신에다, 그 역시도 전공 분야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조직을 꾸리며 해외 기업 탐방도 다녔다. “지금 UAM으로 제일 잘나가는 미국 조비 에비에이션을 35명 정도인 초창기 때 방문했어요. 플라이카 회사인 테라퓨지아, 슬로바키아의 에어로모빌 등 해외 업체를 참 많이 만나고 다녔던 시기였습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영화 ‘제5원소’와 ‘아바타’를 떠올렸다고 했다. 1997년 개봉한 SF영화 제 5원소에는 도심지를 누비는 다양한 비행선과 공중 운행 차량이 등장한다. 지구형 행성 ‘판도라’를 개척하는 아바타에서도 수직이착륙 비행기를 찾아볼 수 있다. 기체개발팀장으로서 UAM 사업부를 직접 구축했던 김 대표는 대기업보다 더 빠른 속도감으로 일하고 싶었고, 이는 2020년 퇴사로 이어졌다.

플라나는 이듬해인 2021년 창업했다. 대학 후배인 안민영 부대표와 현대차 동료인 이진모 부대표가 함께했다. 이들이 개발하는 하이브리드형 전기수직이착륙기(eVTOL)는 헬리콥터보다 100분의 1 정도로 소음이 적고 연료를 더 적게 쓰며 비행한다. 이착륙 단계서 수직으로 움직이던 프로펠러가 공중에선 방향을 틀기 때문이다. 최대 속력은 시속 350㎞, 1회 급유에 500㎞까지 움직일 수 있다. 김 대표는 “공항이 필요 없어 사실상 어디도 갈 수 있는 비행기가 처음 나오는 것”이라며 “목포에서 강릉까지, 서울에서 남해까지도 1시간에 오갈 수 있다”고 말했다. 2025년 시험비행을 거쳐 2028년 상용화가 목표다.

상용화까지 '2조'…사고의 '완전 무결성' 과제

플라나 비행 이미지컷. 6인승으로, 최대 500km를 한 번에 비행한다.  /플라나 제공
플라나 비행 이미지컷. 6인승으로, 최대 500km를 한 번에 비행한다. /플라나 제공
사업의 리스크 요인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금액이다. 김 대표는 “기체 한 대가 상용화되기까지 드는 금액은 2조원”이라고 설명했다. 모험성이 크고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주요 주자이지만, 그만큼 자본금을 대량으로 모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 사실상 기업공개(IPO)도 필수적이다. 플라나는 지난해 10월 118억원 규모 프리시리즈A를 유치했고, 현재도 수백억원 규모의 시리즈A를 유치 중이다. 라운드마다 모아야 하는 자금이 일반 스타트업보다 월등히 커서 쉽지 않다. 시험비행 이후인 2026년 상장이 목표인데, 이 역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나머지 요소는 안전이다. 김 대표는 “사고 가능성이 10억분의 1도 없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앞서 보잉 737맥스는 추락사고 발생으로 2019년 전 세계에서 운항이 중단된 사례가 있었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생산자의 신뢰도 추락하지만, 일단 정부기관의 각종 인허가 유지도 힘들어진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대형 여객기 회사가 연간 60대의 기체를 생산하는데, 수직이착륙 항공기는 한 달에 60대를 만들 수 있는 것이 강점”이라면서도 “전체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 생산량과 안전성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이 새롭게 주어진 과제”라고 말했다.

플라나는 2024년 말까지 인력을 150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현재 인원은 60명 수준이다. 올해는 축소기를 통한 국토부 실증사업이 우선 과제다. 스타트업이 만드는 비행기를 무모하게 여기는 투자자를 여전히 존재한다. 실제로도 아직 기체는 만들지 못했다. 그는 다만 “제품 출시로 세상이 어디까지 바뀔지는 스스로도 예상을 못 하겠다”며 “특히 하이브리드형 배터리 기술은 더 복잡한 시스템을 개발해야 하지만 사업 타당성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어 기대가 크다”고 기체 효용성과 성능에 자신감을 표했다. 초기 판매 타깃은 기존 항공사다.

김 대표는 출판 작가 출신이다. “대학원 시절부터 글을 조금씩 써서, 2014년 소설책을 출판했어요. ‘이상보다 높은 향기’라고. 주인공의 꿈은 우주비행사입니다. 해외에선 우주비행사라는 꿈을 아무도 비웃지 않고, 도전에 가치를 부여해요. 플라나의 도전도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그는 “AAM 항공기의 기술은 이미 완숙 단계에 와 있고, 반드시 등장한다”며 “기술을 잘 통합해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탄생시키겠다”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