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 월북해 음악·정치분야 활동…김일성훈장 받고 애국열사릉 안치
'북한 선율' 쌓은 작곡가 리면상…노동신문 "인민 즐기는 명곡"
오늘날 북한에서 불리는 음악들의 선율적 기반을 쌓은 대표적인 작곡가 리면상(1908∼1989).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2일 "위대한 태양의 품속에서 리면상 선생이 누려온 값높은 삶은 오늘도 우리 인민이 사랑하고 즐겨부르는 수많은 명곡들과 함께 영생하고 있다"며 리면상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1908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태어난 리면상은 함흥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원산제2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과 관련된 벌교노동조합 총회에서 반일사상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한다.

이후 일본에서 2년간 음악을 공부한 뒤 1933년 서울로 귀국해 민요를 작곡하며 활동하며 '신민요'라는 장르로 본인의 음악을 자평하기도 했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신문은 "그가 인민의 참된 작곡가로서 창작활동을 하게 된 것은 해방 후부터였다"며 1946년 5월 평양에서 열린 한 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의 연설을 계기로 "당정책을 옹호관철하는 혁명적인 작곡가로 인생의 방향 전환을 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리면상의 대표곡으로 북한체제 선전용 곡인 '빛나는 조국'을 비롯해 노동계급 기상을 노래한 '승리의 5월', 항일투쟁 정신을 담은 '조국보위의 노래' 등을 소개했다.

김일성 주석은 리면상이 작곡한 노래에 대해 "민족적이며 인민적인 정서가 풍부한 것으로 하여 인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평가하며 피아노를 선물로 보내고 인민예술가칭호를 수여했다고 신문은 언급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리면상에게 북한의 첫 김일성 상계관인(북한 문화예술 부문 최고 상훈)에 이어 북한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을 수여했다.

리면상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애국열사릉에 안치하도록 했다.

리면상은 해방 직후 함겸남도 음악동맹 위원장을 시작으로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장, 평양음악대학 총장 등을 역임하며 음악 분야뿐 아니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노동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적으로도 출세의 길을 걸었다.

그는 또 개인 음악회가 드물었던 상황에서도 사망하기 직전인 1988년 모란봉 극장에서 '리면상 음악회'를 열기도 해 북한 제일의 작곡가로서 진면목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1964년 가극대표단을 인솔해 베트남을 방문했으며 1971년 예술가대표단장 자격으로 쿠바를, 1973년에는 문화대표단을 이끌고 루마니아를 찾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남북 문화예술 교류가 활발했던 2000년대 초반에는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 같은 공연단체가 리면상의 노래 중 '산으로 바다로 가자'와 '압록강 2천리' 등 정치적 문제가 없는 서정가요나 '내 고향의 정든 집' 같은 전시가요의 관현악곡 편곡을 공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