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민주화 동향 전하며 공동 행동 강조…"지학순 주교 죽을 각오"
고 김지하 시인이 유신 시절인 1973년 망명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은밀히 써보낸 편지가 공개됐다.

2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 따르면 이 편지는 김 시인이 유신정권 초기인 1973년 6월 4일자로 작성,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통해 김 전 대통령에게 보냈다.

같은 해 8월 '김대중 납치사건'이 벌어지기 두 달 전으로,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일본의 주요 정치인·한인과 접촉하며 유신정권을 압박하고 있었다.

김 시인은 편지에서 국내 민주화 운동의 동향을 전하며 시점을 맞춰 함께 행동에 나설 필요성을 강조한다.

편지에는 '최소한 올가을 유엔총회 전후한 시기엔 군중행동의 제1파를 일으킬 작정입니다.

힘이 닿는 한 각 계층의 연합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쪽에서의 행동도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필요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김대중도서관은 "'각 계층의 연합'이라는 표현은 민주화 운동 시기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이행 전략인 '반독재 민주총연합노선'과 일치하는 정치적 견해"라고 설명했다.

김 시인은 편지에 "5월20일자로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이 나왔습니다.

본격적인 반박(反朴) 운동의 신호탄으로 생각되는데 곧 지주교의 힘이 그쪽에 합세할 것입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지주교'는 1974년 '유신헌법 무효' 선언으로 고초를 치른 고 지학순 주교를 뜻한다.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을 시작으로 반유신 투쟁이 서서히 본격화하고 이보다 진전된 형태의 군중집회가 나올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는 뜻을 김 시인이 밝힌 것이라고 김대중도서관 측은 전했다.

김 시인은 또 "그쪽에서의 (김대중) 선생의 활동이 우리에게 퍽 고무적이고 또 내가 늘 바라는 바대로"라고 썼다.

또 "지주교는 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건투를 빕니다"라고도 했다.

편지는 200자 원고지 총 6장 분량인데 4번째 장은 전해지지 않아 5장만 공개됐다.

오는 8일은 김 시인 별세 1주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