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의미 담은 상호 흔해…경기·경남의회서 마약 용어 제한 조례 시도
"마약 심각성 인식 위해 제한해야" vs "'언어의 자유' 원칙 침해 우려"
김밥·베개 등 상품명 곳곳 '마약' 남발…용어 폐지 놓고 논란도
최근 '대치동 학원가 마약 음료수 사건' 등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마약이 파고들면서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일상생활 속에서 '마약'이라는 용어가 남발되는 실정이다.

특히 중독성 있을 정도로 맛이 있거나 잠이 잘 온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식당이나 베게 등에 마약 용어를 단 상호나 상품명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상품명에 마약 용어를 제한하거나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지만, 마약이라는 명칭이 있다는 것만으로 공공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반대론도 있다.

경기도의회 박세원(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학생안전지역(학교 반경 200m 내)에서 마약류 등 사회윤리를 현격히 침해하는 상품명·상호 등의 사용 현황에 대해 교육장과 학교장이 실태점검을 해 공개하고, 개선을 권고하는 내용의 '경기도교육청 교육환경 보호에 관한 조례안'을 지난달 대표 발의했으나 상정이 보류됐다.

이 조례안에 대해 도의회 입법정책담당관실은 "소상공인들의 상표권 제한 및 영업의 자유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간판 및 제품 포장 교체에 필요한 비용 지원의 필요성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검토 의견을 냈다.

또 '마약베개' 상표등록과 관련한 재판에서 특허법원이 "상표에 마약이라는 명칭이 들어 있다는 것만으로 선량한 풍속이나 공공의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결한 내용을 첨부했다.

도교육청도 "현재 식품 등에 마약과 같은 표현을 금지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에 계류 중으로 관련 법령이 마련되기 전에 조례로 먼저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조례안이 지난달 2일 입법 예고된 이후 반대 의견이 1천166건 달리는 등 논란이 계속되자 박 의원은 조례안에 대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상정 보류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최근 미성년자가 연루된 마약 범죄가 끊이지 않는 데에는 마약김밥·마약떡볶이 등 표현을 남용하며 마약을 그저 '중독성 있는 것' 정도로 가볍게 치부하는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며 "학교 주변에서라도 마약 명칭을 제재하자는 조례안을 낸 것인데 논란이 계속돼 일단 상정 보류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음식은 맛이나 상품 가치로 승부를 보는 만큼 상호명에 마약이 들어가지 않도록 규제하더라도 소상공인의 매출 감소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추후 사회적 분위기를 살피며 관련 조례안 재발의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밥·베개 등 상품명 곳곳 '마약' 남발…용어 폐지 놓고 논란도
이러한 조례안 상정은 경남도의회에서도 시도됐다.

지난해 6월 약사 출신인 경남도의회 윤성미(국민의힘) 의원이 '경상남도 우리말 바르게 쓰기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을 대표발의해 상임위원회에서는 원안 의결됐으나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당시 윤 의원은 "청소년 마약문제가 점차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마약김밥', '마약떡볶이', '마약베게'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식품의 명칭 또는 상호를 마약의 심각성도 모른 채 쉽게 사용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인식시키려고 발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조례안은 다른 의원이 "우리말 바르게 쓰기 조례 개정으로 그 취지를 달성할 수 없다"는 반대 토론 이후 표결 끝에 부결됐다.

경기도의회와 경남도의회에서 마약 용어를 제한하는 조례를 제정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마약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쉽게 상품명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부산지역의 경우 주요 포털에서 '부산 마약'을 검색하면 맛집을 중심으로 최소 50곳 이상이 뜬다.

김치찌개, 국밥, 떡볶이, 보쌈, 칼국수, 김밥 등 상호에 '마약'이라는 수식어가 상당수 붙어있다.

전북 전주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마약 육전'을 판매 중이다.

수년 전 방송에 소개될 만큼 인기를 끈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쉽게 마약 용어가 쓰이는 데다 특히 청소년층이 별다른 거부감없이 마약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경남도의회에서 관련 조례를 발의했던 윤성미 전 의원은 "마약이라는 용어 자체를 청소년들이 접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일상생활에서 마약이라는 용어를 절대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약 용어를 제도적으로 제한하고 금지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강동호 인하대 한국어문화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마약 근절을 위한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그것을 명분으로 '마약'이라는 어휘를 금지하고 언어를 검열해야 한다는 시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심각한 문제는 언어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검열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어의 자유'라는 기본 원칙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우리 사회 언어에 내재하고 있는 문제가 있는 표현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논의와 개선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원도에서 6∼7년 전부터 상호에 마약 용어가 들어간 가게를 운영하는 한 업주도 "중독성이 있을 만큼 맛있다는 뜻으로 별다른 생각 없이 만든 건데 현재 사회 분위기상 곱지 않게 보는 사람들도 있을듯하다"면서도 "강제로 쓰지 못하게 한다고 하면 흔쾌히 바꿀 사람이 어딨겠느냐"고 마약 용어 제한에 대해 거부감을 보였다.

이러한 마약 용어 사용 논란과 관련해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마약 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부산교육청 하윤수 교육감은 "유해 약물의 위험성을 조기에 알리고 스스로 유해 약물을 멀리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밝혀 마약 오·남용 예방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신민재 박영서 나보배 김솔 김재홍 황봉규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