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민 59%는 탈원전 반대…3명 중 1명만 찬성
"원자력이여, 안녕"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봄날인 1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문 앞에는 방사능을 나타내는 마크와 함께 '독일 원자력'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괴물이 배를 드러내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괴물의 배 위에는 칼과 '원자력? 싫어요'라고 쓰인 방패를 든 빨간 시민이 올라서서 환히 웃고 있었다.
괴물 주변에는 원자력 폐기물 저장 용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2000년 독일의 첫 탈원전 합의를 주도한 위르겐 트리틴 전 환경장관(녹색당)은 이날 집회에서 "오늘은 독일이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원자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참 좋은 날"이라며 "재생에너지 발전시설 확대에 더욱 속도를 낼 것인 만큼 기후변화를 향한 중요한 진보를 이루는 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재생에너지는 기후 보호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에너지 독립을 이루는 수단"이라며 "독일은 이미 필요한 전력의 절반 이상을, 자급자족하는 재생에너지 발전을 통해 조달 중인데, 이는 원자력 발전 절정기의 2배 이상이다.
원자력 발전은 석탄 발전보다 탄소를 적게 배출하지만, 풍력 발전보다는 탄소를 10배 이상 배출한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슈테피 리히터 전 독일 라이프치히대 일본학과 교수는 "오늘 탈원전을 축하하면서도, 또 축하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아직 전 세계에서 원전이 계속 건설되고 있고, 핵폐기물 해체 문제도 있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원자력을 사랑합니다"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위와 퍼포먼스 등을 벌였다.
덴마크 친원전 단체 대표 요한(25)은 "독일이 마지막 원전 3곳의 가동을 중단하면서 축소되는 발전량은 덴마크 전체 풍력·태양에너지 발전량에 맞먹는다"면서 "우리는 재생에너지 전환에 찬성하지만, 원전 가동 중단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은 원전 가동을 중단하는 대신 석탄발전소 발전을 늘려, 대기오염을 유발, 사람들을 목숨을 빼앗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브란덴부르크문 앞뒤의 정반대 풍경은 탈원전을 둘러싸고 분열된 독일의 여론을 반영했다.
독일 ARD 방송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 시민의 59%는 원전 가동 중단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탈원전에 찬성하는 이들의 비중은 3명 중 1명꼴인 34%에 불과했다.
다만, 18∼34세 청년층에서는 탈원전에 찬성하는 이들의 비중이 50%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대하는 이들의 비중은 39%에 그쳤다.
반면 중장년층과 노년층에서는 탈원전에 반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1961년 첫 발전용 원전을 가동한 뒤 62년 만이다.
당초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지난해 말까지 탈원전하기로 했던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위기에 남은 원전 3곳의 가동은 이날까지 연장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가동을 중단하게 된다.
이들 원전이 독일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로 줄어들었다.
/연합뉴스